24 신학이론

서로박: 뮌처가 실천한 천년왕국의 혁명 (2)

필자 (匹子) 2020. 6. 18. 11:28

 

7. 뮌처의 강인하고 짧은 삶 (5): 이때부터 6개월간 거사 준비의 시기가 시작됩니다. 뮌처는 1524년 8월 7일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고 튀링겐 지역의 뮐하우젠으로 도주합니다. 제후들 그리고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남은 것은 무장 봉기밖에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을 때가 바로 이 순간이었습니다. 뮌처는 11월에 루터의 종교개혁 반박하는 팸플릿을 제작하고 이를 배포한 다음에 남쪽 슈바르츠발트로 향합니다. 1525년 2월에 뮐하우젠으로 되돌아온 뮌처는 튀링겐 지역의 농민 전쟁에 앞장섭니다. 마르틴 루터는 1525년 「강도짓과 살인을 저지르는 농부 도둑떼들에 반박하며Wider die mörderlischen und räuberischen Rotten der Bauern」라는 글을 발표합니다. 이 글은 지극히 체제 옹호적이자 반동주의로 무장한 글이었습니다. 1525년에 거사의 시기가 도래합니다. 그해에 5월에 프랑켄하우젠에서 대대적인 전투가 발발합니다. 헤센의 제후 필립은 정규군을 풀어서 저항하는 농부들을 거의 남김없이 도륙합니다. 5월 25일 뮌처는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감당해야 합니다. 13일 후에 뮌처는 하인리히 파이퍼와 함께 뮐하우젠의 들판에서 처형당합니다.

 

8. 신비주의에 입각한 믿음: 뮌처의 사상을 요약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뮌처의 사상은 신비주의의 토대 하에 형성되었는데, 나중에 네 가지 사항과 관련성을 맺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심령주의 신앙이며, 둘째는 세례 운동이며, 셋째는 계시록에 대한 믿음이고, 넷째는 사회 혁명적 실천을 가리킵니다. 첫째로 믿음은 뮌처에 의하면 영혼의 심연 속에 도사린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됩니다. 그것은 신과의 내밀한 조우를 전제로 합니다. 그것은 신이 인간의 영혼에게 내밀하게 전해주는 말씀의 작용과 같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신앙이 형성되는가, 아닌가하는 물음은 오로지 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건드리는 신의 첫 번째 작용은 신에 대한 외경심입니다. 거기에는 오로지 성령만이 인간의 내밀한 영혼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인간의 이기심이라든가 특정 인간에 대한 두려움은 신앙과는 거리가 먼 상념일 뿐입니다. 주님의 정신을 체험하려는 영혼은 일단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상사의 근심이라든가, 사적인 욕망 등을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뮌처는 “머무름Langweyl” 그리고 “여유Gelassenheit”라는 태도를 도입합니다. 마음속에 잡념이 사라져야만, 우리는 영혼의 텅 빈 상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여유로움에 침잠하는 인간은 자신의 마음의 심층부에서 생동하는 신의 작용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신의 작용을 느끼는 인간은 더 이상 자신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며, 성령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출현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의지 사이의 만남입니다. 깊은 의미를 지닌 이러한 만남이야 말로 진정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9. 성서에 대한 뮌처의 입장: 성서는 대체로 어떤 경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빛으로 환해진 영혼이 생동하는 신과의 만남 속에서 획득한 경험입니다. 성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와 유사한 경험을 알려주는 초대장과 같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뮌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즉 성서의 내용을 접함으로써 신앙인은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요약하건대 성서는 뮌처에 의하면 그 자체 “외부의 말씀verbum externum”으로서, 개별적 인간의 마음속의 “내부의 말씀verbum internum”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그렇지만 내부의 말씀은 반드시 무조건적으로 성서에 기록된 외부의 말씀을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성서 없이도 얼마든지 자신의 고유한 경험을 통해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성서는 뮌처에게는 신앙을 위해서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매개체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성서 속에서는 “외부의 말씀” 없이 기독교 신앙을 선택한 자들의 이야기가 상당부분 실려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입장 때문에 뮌처는 루터와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10. 심령주의 신앙과 세례: 상기한 이유로 인하여 뮌처는 글과 문헌을 중요한 무엇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뮌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식자들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의 믿음의 상을 투시한 사람이야 말로 구약과 신약의 정신을 올바르게 수용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신을 두려워하는 예언자들이야 말로 현재 현실에 관여하는 신의 의지를 인지하고 인식할 뿐이라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신의 뜻을 투시한 예언자만이 신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필자는 영지주의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영지주의와 심령주의는 영혼을 인지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영지주의는 기원 후 그리스도의 영혼을 재발견하려는 그노시스 학파로서, 하나의 종파의 차원에서 이해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심령주의Spiritualism”는 기독교 외에도 불교 등 다른 종교에서도 발견되는 사상으로서 다소 거시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뮌처의 책에는 중세 신비주의의 영향이 자주 나타납니다. 그의 문헌을 연구하면, 우리는 뮌처가 14세기에 독일어로 간행된 신비주의 서적 『독일 신학Theologia deutsch』그리고 요한네스 타울러Johannes Tauler의 서적을 탐독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11. 세례의 본질적 의미: 심령주의자로서 뮌처는 유아 세례를 거부하였습니다. 진정한 세례는 뮌처에 의하면 정신의 세례를 가리킵니다. 세례란 신앙을 수용하는 내면의 과정에 대한 외적 표시라고 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일단 신앙심을 지녀야 가능하다고 뮌처는 못 박고 있습니다. 정신의 세례를 수용하는 자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신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세례의 예식이 개최되는 동안 세례 받는 자의 영혼의 깊은 심연의 물 위에서 무언가를 들려주고 자신의 움직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세례는 뮌처에게는 인간 영혼 속에서 작용하는 신의 움직임과 신의 말씀에 대한 상징,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심령주의에 바탕을 둔 기독교 신앙은 영혼의 깨달음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 신앙과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길희성: 45쪽). 정신적 영성적 측면을 고려할 때 영혼의 깨달음에 관한 뮌처의 언급은 불교의 구도적 수련을 연상시킵니다.

 

 

12. 계시록에 대한 뮌처의 입장: 성서의 계시록 가운데 뮌처는 「다니엘」 그리고 「요한 계시록」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요한 계시록」의 제 17장 4절 그리고 「루카의 복음서」 제 18장 16절에는 자주색의 화려한 옷을 걸친 바빌로니아의 창녀가 등장합니다. 뮌처는 그미를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로 비유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보석으로 감싼 창녀가 바로 부패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고위수사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뮌처는 자신의 글,「제후의 설교」에서 구약성서의 「다니엘」제 2장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네 개의 거대한 제국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를 가리킵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섯 번째 제국은 뮌처 자신이 처한 국가라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제국은 여전히 철의 시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들과 힘없는 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억압당하면서 억울하게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은 다니엘과 같은 예언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기대할 분은 이를테면 세례자 요한이라든가 엘리야와 같은 예언자라고 합니다. 만약 엘리야가 다시 세상에 출현하면, 그분은 신의 뜻에 합당하게 세계의 질서를 재정비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악한 신을 모시는 거짓 수사들은 처벌되고, 교황 중심의 종교 권력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