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핀란드에서는 정치가라고 해서 그들이 일반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국회의원이 되는 자는 대개의 경우 일반 사람들의 위에 군림한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가장 큰 근본적 차이일 것이다. 왜 많은 수의 한국 국회의원들이 안하무인(眼下無人)처럼 행세하는지 당신은 알고 있는가? 그들은 일반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게 때문에 그들의 눈앞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아래 것들을 향해 "깔"본다.
2. 핀란드 정치가들은 크든 작든 간에 법 자체를 몹시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가들은 법 자체보다는 자신의 “힘”, 세력, 입지 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실제로 핀란드의 경우 정치가들은 세부적 사항들을 미리 조목조목 법으로 만들어 둔다. 그렇기에 법 규정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지만, 규정과 규정 사이에 여백은 거의 없다. 한국의 정치가들은 처음부터 법 조항을 간략하게 정해 둔다. 형법, 민법, 소송법 등이 너무나 얄팍하게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판사가 유권 해석 내리기가 이현령 비현령이다.
3. 핀란드에서는 매사가 법에 따라 합리적으로 처리되므로, 핀란드의 정치가들은 처리된 사항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그렇지 않는지를 고려할 겨를이 없다. 법규정의 개폐 문제와 경제적 소득은 핀란드 사람들에게는 서로 별개이다. 한국에서는 매사가 아전인수 격으로 처리되므로, 한국의 정치가들은 법개정 시 “힘겨루기”를 행한다. 날치기도 때로는 커다란 효력을 발휘한다. 왜 한국의 정치가들이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무력행사를 자행하는가? 그 이유는 법규정의 개폐가 무엇보다도 그들 자신의 부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4.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사람들은 명분을 중시하는 반면에, 일본 사람들은 실리를 중시한다. 그렇기에 한국의 정치가들은 토론의 내용보다는 절차를 중시하는지 모른다. 핀란드에서는 신랄하게 토론을 벌일 때 정치가들은 절차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토론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토론할 때 정치가들은 토론 내용 대신에 절차를 따지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그들은 특히 순서 내지는 절차의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훼방을 놓고, 불리한 절차에 대해서는 명분을 내세우며 이를 차단한다.
5. 핀란드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정한 약속이라면 그것을 반드시 지킨다. 한국의 정치가들은 이른바 큰 일을 행한다고, 개인적 사적인 약속을 거의 무시한다.
6. 대다수는 아니지만, 한국의 정치가들은 대체로 술을 잘 마시고 담배를 많이 피우며, 여자 (s남자)들을 좋아한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동료들로부터 배포가 작은 졸장부라고 놀림 당한다. 이에 비하면 핀란드의 정치가들은 대체로 술, 담배, 여자 (남자) 그리고 배포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7. 한국의 정치가들이나 핀란드의 정치가들은 제각기 상대방에게 견해 차이를 드러낸다. 그런데 여기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핀란드에서는 비록 견해 차이가 온존하더라도, 상대방과의 인간 관계가 깨어지는 일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견해는 견해이고, 인간 관계는 인간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견해 차이가 발생할 경우, 정치가들은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고, 그를 오랫동안 증오한다.
8. 핀란드의 정치가들은 법 개정 자체에 관한 토론 내용에 모든 관심을 집중한다. 한국의 정치가들은 그들과는 다르다. 가령 여당의 정치가는 토론자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보다는 그 주장이 어느 편에서 나온 견해인가를 먼저 파악하려고 한다. 만약 어느 주장이 반대편 정당에서 나온 것이라면, 일단 무조건 반대하고 본다.
9. 핀란드 국회의원들이 “훌륭한 적”을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반면에,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술자리에서 “미운 우리 편”을 더욱 감싼다. 이는 보수 정당일 경우 더욱 심하다. 레이건이 독재자 “소모사”를 비밀리 회동했을 때, 보좌관에게 속삭인 말은 다름 아니라, “우리 편 X새끼”였다고 한다.
10. 핀란드의 정치가들은 지연, 혈연, 학연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넥타이 차림을 싫어하며, 가까운 길일 경우 주로 자전거를 애용한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운전사를 고용하여 중형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그리고 해외 나들이를 당연하게 여긴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대부분의 경우 세 구축을 위해서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11. 핀란드 정치가들은 “대세는 기울었다. 줄이나 잘 서라.”는 협박성 발언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헤쳐 모여" 등과 같은 원시적 정치 운동을 이미 오래 전에 철폐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사실, 진리 국민의 발언 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국회의원은 당수의 말에 누구보다도 빨리 복종한다. 그들은 까만 양복을 입고 까만 구두를 신고 까만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만, 당수 앞에서는 물먹은 쥐새끼처럼 고개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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