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서로박: 윤노빈의 한울 사상 (2)

필자 (匹子) 2020. 9. 9. 17:57

5. 거짓말과 흑색선전: 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생명을 이어주는 2의 피입니다. 그러나 악마는 참말을 거짓으로 왜곡시키며, 거짓을 참이라고 전달합니다. 악마가 사용하는 무기는 거짓말과 흑색선전입니다. 윤노빈은 인간의 언어에 관하여 놀라운 사상을 피력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언어의 여백의 공간을 가리킵니다. 이로써 형성되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여백 내지 틈 ()이 형성됩니다. 바로 이러한 여백과 틈이 악마가 돌아다니는 통로와 같습니다. 언어 여백의 공간에는 금지된 언어, 강요된 침묵과 발언되지 못한 언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이 결코 인내천의 혁명 사상을 쉽사리 깨닫지 못하는 것도 바로 사악한 자들의 간계 때문입니다.

 

사람이 한울이다. 人乃天이라는 혁명적 명제는 사람이 지렁이다. 人乃蚕또는 사람은 천박하다 人乃賎이라는 현실적 명제와 정반대됩니다. 악마의 영향은 참으로 큽니다. 그는 사람을 한울처럼 모시기는커녕 (事人之天) 아예 인간을 지렁이처럼 취급하는 (事人之蚕) 현실에 태어나 인내천 (人乃蚕)의 현실에서 일생동안 천대받고 살며, 인내천 (人乃賎)의 현실 속에서 사람을 천대하는 교육만 받느라 평생을 보낸 사람은 인내천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작용합니다. (윤노빈 73: 358). 악마의 영향에 사로잡힌 인간들에게서 드러나는 특성은 두 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무관심이며, 다른 하나는 신경질입니다. “무관심은 큰 것과 작은 것에 대한 동일한 반응이며, 중대한 것과 사소한 것의 구별을 무시하는 심리상태라면, 신경질은 큰 것과 작은 것을 혼동하는 반응이며, 중대한 것과 사소한 것을 뒤바꿔서 보며, 사소한 것을 중대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심리상태를 가리킵니다. (윤노빈 73: 240).

 

6. 분석언어철학의 허구성: 서구의 분석언어철학은 사악한 인간군의 이러한 인위적 人為的이고 인위적 人偽的인 날조를 처음부터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가령 비트겐슈타인 Wittgenstein 등의 분석 언어철학은 언어의 자유로운 사용이 허용된 공간을 전제로 한 것이며, 거짓과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현실의 상황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윤노빈에 의하면 억압 이데올로기와 한계상황의 현실적 제반 조건을 전제로 하지 않은 의미 없는 이론, 다시 말해서 통일적인 견해를 갖지 않은 언어 과학이라고 합니다. (윤노빈 73: 170). 왜냐하면 분석언어철학은 언어의 왜곡되는 조작 내지 이데올로기 등을 좌시한다는 점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추상적 형이상학적 이론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은 사람들로 하여금 침묵하게 강요하는 비상사태의 유신 체제, 돈을 벌기 위해서 서로 싸우고 물어뜯는 아비규환의 전쟁터에다 언어적 공간을 설정한 게 아니라, 아무런 갈등도 투쟁도 없는 추상적 빈 공간 Tabula rasa에다 언어의 행위를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7. 분단은 세계사의 비극이며, 통일은 해방의 최종적 의미와 같다.: 배달민족에게 가장 처절한 극한 상황은 무엇보다도 분단 상태입니다. 윤노빈은 한반도의 피맺힌 분단 상태를 거짓 이데올로기와 사기 그리고 기만으로 가득 찬 갈등과 지배의 결과라고 단언합니다.남북의 분단 상태는 윤노빈에 의하면 두 개의 분단국가 사이에 그어진 단순한 국경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한반도는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허리가 두 동강 난 채 신음하는 병든 아담 카드몬 Adam Kadmon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세상 전체가 분단의 아픔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북한의 분단 상태는 갈등 그리고 모순 등으로 얽혀 있는 서양의 세계관 속의 투쟁적인 전투적 지배논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 범례입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온 차단, 감금, 억압, 굴종, 부자유 그리고 거짓된 삶의 표본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가해자의 범죄에 대한 응징으로서 형성된 독일 분단의 경우와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한반도의 분단은 식민지와 제 2차 세계대전에 의해서 피해당한 배달민족의 연속적인 수난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인 일본이 분단되지 않고, 냉전 이데올로기가 고려된 지정학적 이유에서 핍박당한 한반도가 다시 분단되었기 때문입니다. (박설호: 20). 렇기에 분단의 극복은 악마들에 의해서 수없이 자행된 피해의 고리를 끊고 마침내 새로운 삶을 찾는다는 점에서 정치적 통일 뿐 아니라, 메시아사상에서 말하는 해방의 최종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방은 인위적으로 형성된 막힘, 침묵, 차단 그리고 모든 유형의 부자유 등에 대한 투쟁 내지 극복으로 이해됩니다.

 

8. 인간은 한울 속에서 생존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분단 상태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윤노빈은 동학사상에서 말하는 사람이 한울이다 人乃天라는 거룩한 명제에서 어떤 해답의 촉수를 발견합니다. 여기서 사람이란 서양의 이른바 나누어지지 않는 아톰” 그리고 “개인 Individuum” 등의 개념이 아니라, 동양의 이른바 대아 (大我, Atman)의 개념과 결부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윤노빈의 인간 개념은 개별적 사람들, 추상적 종 ()으로서의 인간 그리고 너와 나 사이의 고리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마르틴 부버 Martin Buber, 에마누엘 레비나스 Emmanuel Lévinas 등이 그토록 찾으려 하던 더 큰 나를 임신한 나와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윤노빈에 의하면 나와 너는 서로 타자로 대하는 상대적 대상이 아닙니다. “는 비록 실제 현실에서 너와는 다른, 별개의 존재이지만, 사고에 있어서 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는 사고 및 감정에 있어서 동일한 사항을 지니고 있으므로, 얼마든지 와 함께 교감을 나눌 수 있습니다. “더 큰 나를 임신한 나는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임산부의 상을 가리킵니다. 임산부는 뱃속의 아이를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살아갑니다.

 

예컨대 생명의 탄생은 생성의 전체적 프락스 flux 와 관련되는 순간으로서 이 경우 생명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不一不二무엇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더 큰 나를 임신한 나는 를 다만 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분신이라고 여깁니다. 그렇기에 두 사람 사이에는 보다 큰 자아로서 우리 내지는 한울타리로서의 한울이라는 존재가 자리할 수 있습니다. 이는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를 포괄하는 사고로서 너는 나와 육체적으로는 다르지만, 너의 안녕은 심리적 차원에서 나의 안녕과 동일하다.”라는 식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