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세계 문화

디드로와 상상력 (2)

필자 (匹子) 2022. 12. 9. 09:14

드니 디드로 (Denis Dederot, 1713 – 1784)의 철학적 대화의 기록인 『부갱빌 여행기 보유』만큼 후세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작품은 없습니다. 그의 원고는 그가 죽은 뒤에 1796년 유작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작품이 발표된 다음에 수많은 사람들은 “저열한 본능”을 예찬하는 디드로를 비난하였습니다. 사실 예수회의 수사였던 편집자 한 사람은 자신의 발문에서 디드로의 작품을 신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디드로는 자코뱅주의자의 선동자, 체제개혁자 그리고 사회의 도덕을 더럽히는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회의 도덕적인 토대를 파괴하고, 제어할 수 없는 동물적 충동 내지 성적 욕망을 부추긴다는 것이었습니다. 디드로는 폭동을 선동하고, 도덕을 더럽히며, 혁명을 부추기는 원흉이라고 했습니다.

 

타히티는 온화한 기후의 영향으로 많은 과일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곳 사람들은 굶주림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좋은 것은 모두 소유하고 있다. 분에 넘칠 정도로 풍요로운 욕망을 추구하며 이를 실현시키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경멸스러운 민족일까? 배고프면 우리에게 먹을 것이 주어진다. 추우면, 우리는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옷과 이불들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나아가 타이티에서 최고의 미덕으로 간주되는 것은 건강 외에도 부지런함, 아름다움, 체력 그리고 용기 등입니다. 그런데 부지런함의 덕목은 원주민들의 생존에 필수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연적으로 자라나는 과일들이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지런히 노력하여 분에 넘치는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타히티에서는 결혼 제도가 있으나, 혼음의 풍습이 존재합니다. 원주민은 이곳을 찾는 손님이 하룻밤을 보내도록 자신의 아내를 빌려줍니다. 아니,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뜻에 따라 손님과 하룻밤을 즐기려고 한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입니다. 여성들은 결혼하게 되면, 남편에게 복종하지만, 외간 남자와 외도할 의향이 있으면, 남편에게 미리 언질을 던집니다. 이때 남편은 특별한 사유가 없을 경우, 이를 대체로 허락합니다. 이때 부부 사이에는 어떠한 질투심도 자리하지 않습니다.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여성들이 마음이 가는대로 성적 본능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해도 사회는 이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플라톤과 캄파넬라는 성을 위생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종족번식의 수단으로 이해합니다. 이는 타히티의 여성 공동체의 경우와 거의 동일합니다. 그렇지만 플라톤과 캄파넬라는 인구의 무조건적인 증가가 공동체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타히티 사람들은 인구가 무조건적으로 증가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타히티 공동체는 남녀의 에로틱한 성관계를 최대한 권장하고 있습니다. 출산의 대신에 출산 능력이 없는 자라든가 미성년의 경우 성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과 관련된 모든 사항들은 출산을 권장하기 위한 조처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타히티 공동체는 결혼시 여성의 지참금 문제 그리고 이혼시 자녀 양육에 관한 권한 등을 분명하게 규정합니다.

 

타히티 사회는 성에 있어서는 관대하지만, 다른 몇 가지 사항에 있어서 기이한 면이 온존합니다. 첫째로 야만의 사회가 그러하듯이, 그들은 이따금 인접 섬의 사람들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릅니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온 남자와 사내아이들은 언제나 살육의 대상입니다. 타히티 사람들은 포로들을 죽여서 수염과 턱의 가죽을 벗겨내어 전리품으로 삼습니다. 둘째로 타히티 사람들은 해와 달 그리고 천체의 항성들을 신으로 숭배하는데, 그들을 위해서 살아있는 인간을 희생물로 바칩니다. 이로써 무고한 인간의 목숨은 신의 제물로 활용됩니다. 셋째로 타히티는 철저한 계층사회로서 사람들 사이에 계급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제 1계급이 왕족이고, 제 2계급은 부자들입니다. 제 3계급은 일반 사람들이고, 제 4계급은 포로 내지 노예들입니다.

 

그렇다면 절반의 문명과 절반의 자연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가능할까요? 작품의 등장인물, 오루는 어떤 가상적인 인물, “크레올”을 하나의 구체적인 범례로 들고 있습니다. 크레올은 유럽의 피를 이어받은 백인 남자이지만, 유년 시절에는 유럽에서, 청년 시절에는 신대륙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개의 이질적인 문화로부터 지적, 심리적 자양을 공급받은 셈입니다.

 

디드로는 다른 책을 집필할 때 종의 교배, 종교의 다양성 그리고 문화적 이질성 등에 관한 문제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책 『달랑베르의 꿈』에서 자세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인종이 자식을 낳으면, 혼혈아가 태어나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접한 인간의 경우 문화적 혼종이라는 절충적인 면모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두 개의 문화적 자양을 동시에 받아들인 사람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문화가 뒤섞인 아말감으로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이중적인 코드를 지니게 됩니다. 이 경우 그의 판단력은 서로 다른 기준을 지니는 두 개의 잣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디드로는 두 개의 잣대로서의 이중적 코드를 지닌 인간을 “염소의 발을 지닌 인간”으로 비유했습니다. 물론 인간이 염소의 발을 지녔다면, 이는 실제 현실에서는 괴물로 인지되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염소의 발을 지닌 인간”은 우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문명사회의 삶 그리고 타히티와 같은 곳에서의 자연친화적인 삶을 동시에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염소의 발을 지닌 인간”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염소는 힘이 세고, 놀라운 지구력을 드러내며, 민첩합니다. 이러한 육체적 기능에 인간의 총명한 두뇌가 첨가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제 1세계와 제 3세계 사이의 갈등과 착취구조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디드로는 자본주의의 이윤추구 및 식민지 쟁탈 이전의 시대에 살았습니다. 디드로의 책은 자연 친화적인 삶과 유럽 문명 속의 삶은 서로 우월을 가릴 수 없으며, 그 자체 제각기 다른 사회적 코드에 의해서 영위된다는 점을 가르쳐줍니다. 또 한 가지 사항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제국주의의 잔인한 착취와 사디즘의 폭력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이는 부갱빌 여행기 부록의 두 번째 단락, “노인의 작별 인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프란츠 파농의 발언처럼 처절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요약하건대 모든 사회적 제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주어진 현실적 제반 조건의 영향을 받고 수렴된 상대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 문화의 어떤 풍습이 좋으냐, 싫으냐를 따지기 전에, 주어진 구체적 현실적 조건이 어떠한가를 파악해야 하며, 사랑과 성의 관습 역시 이와 관련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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