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신학이론

서로박: 골드만의 숨은 신

필자 (匹子) 2021. 9. 1. 10:56

뤼시앙 골드만 (Lucien Goldmann, 1913 - 1970)의 "숨은 신. 파스칼의 팡세 그리고 라신의 연극에 나타난 비극적 세계관 연구 (Le Dieu caché. Étude sur la vision tragique dans le Pensées de Pascal et dans le théâtre de Racine)"는 1955년 파리에서 간행되었다. 골드만은 17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인 파스칼과 라시느의 문학을 문학사적으로 연구하면서, 어떤 공통적인 형식 그리고 사고 방법을 문학 이론적으로 찾으려고 한다. 그는 이들 작품에 나타난 철학적 미적 특수성을 한마디로 “비극적 세계관”으로 명명한다.

 

골드만에게는 “세계관”이란 인간의 행위에 형식을 부여하고 행위의 관련성을 보장하는 하나의 구조이다. 그것은 어떤 사회적 역사적 실천의 성찰 도구 내지는 행위 도구이다. 모든 동시대인이 세계관의 완전성과 일치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경우 상징적 (이를테면 글쓰기) 혹은 사회적 행위를 무작정 어떤 일치되는 구조의 바깥에서 발전시킬 위험을 무릅쓰기도 한다. 이러한 오류는 인간의 행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골드만은 작가의 지위와 그의 주관성을 이러한 전체적으로 형성된 사고 형태와의 관련 속에서 규정한다. 위대한 예술 작품은 [“심리적 교육 (organisation)”속에서 그것을 추론해낸 형식, 사회적 실천으로써 창출한 세계관 등에 합당하게] “주관적 관심사 (préoccupations)”의 일치성을 포괄하고 있다. 재능이란 골드만에게는 [상기한 의미의 세계관에 완전한 폐쇄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개인적인 요소들을 세계관과 일치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하여 작품은 주어진 문화적 환경과 결부되며, 세계관의 구조에 의해 주어진 의사소통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어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 답하는] 세계관 역시 -골드만에 의하면- 반역사적으로, 다시 말해 불변적이고 우주적인 형식으로서 고찰될 수 있다. 이로써 골드만은 자신의 입장을  칸트의 견해와 연결시키고 있다. 여기서 칸트의 견해는 세상, 인간 그리고 선험적 원칙의 '선험성에 합당한 (aporiorisch)’ 형식에 관한 것이다.

 

골드만은 루카치의 초기 작품 "영혼과 형식", "소설의 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는데, 이로써 소위 대립되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예술 원칙을 결합시키고 있다. 그 하나는 보편적 형식의 이론 (칸트)이요, 다른 하나는 문화 현상들의 역사적 성격 (헤겔과 마르크스)이다. 두 가지 전통을 일치시키기 위해서 골드만은 피아제 (Piaget)의 발생기원적인 인식 이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골드만은 피아제에게서 [“발생기원적 구조주의 (structuralisme génetique)”라는 이름으로 사회학적으로 변형시킨] 구성주의의 원칙을 빌리고 있다.

 

"숨은 신"은 -이론적인 핵심 사항 외에도- 루이 14세의 시대에 활약했던 작가들 [장 라신 (Jean Racine), 블레즈 파스칼 (Blaise Pascal), 마르탱 드 바르코 (Martin de Barcos)]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미를 지닌다. 골드만에 의하면 새로운 왕도 정치에 실망한 [“왕실파 친구”라고 불리던] 작가들은 쟝세니즘에 추종하는 등, 세상으로부터 결별하였으며, 자신의 희망과 환멸을 나름대로의 이론적 근거를 지닌 사고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장세니즘은 네덜란드의 신학자 코르넬리우스 얀센 (1585 - 1638)에 의해 창안되었다. 장세니스트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를 무시하고, 주로 프랑스에서 방랑 생활로 살아가면서 형제애를 나누었다고 한다. 골드만은 바로 상기한 작가들에게 주어진 “(권력자의) 친구”라는 개념에서 “비극적 세계관”을 발견하고, 여기에 문학적 형태를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숨은 신"은 야권 세력의 장세니즘을 추종하는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그물같이 얽힌) 친구 관계 그리고 상호 영향 등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로써 골드만은 루이 14세 치하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던 야권 세력의 사회학을 관련시키며, 당시의 중요 작가였던 파스칼과 라신의 문학적 특성을 재조명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미학과 사회학을 동시에 접합시키고 있다.

 

"숨은 신"은 이전에 견지했던 자신의 학문적 구상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골드만은 이전 문헌 "칸트에게 나타난 인간적 공동체와 우주 (La communauté humaine et l’universum bei Kant)" (1945), 그리고 이후 1959년에 논문, 「변증법의 연구 (Recherches dialectique)」에서는 파스칼과 라신의 문학적 철학적 사고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중에 "소설의 사회학 (Pour une sociologie du roman)"에서 골드만은 현대 소설과 관련하여 자신의 입장을 약간 수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