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푸아니의 양성구유의 유토피아 (3)

필자 (匹子) 2018. 2. 20. 09:39

11. 문제는 만인이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데 있다.: 남쪽 대륙에서는 거친 맹수들이 살고 있지만, 유럽에는 동족을 급습하여 살육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는 인간 동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유럽 민족들에게는 모든 것을 공정하게 인식하는 이성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소설의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람들은 부귀영화에 대한 갈망을 달랠 수가 없으며, 언제나 반대 의견을 내세우며, 음험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배신을 일삼으며, 피비린내 날 정도로 잔인하게 살상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유럽 사람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서로 싸우며 살아가지요. 이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성보다는 열정에 이끌려서 살아간다고 생각되지 않는가요?” (Foigny 82: 185).

 

결국 유럽인들은 궁핍함과 괴로운 삶을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억압적인 체제를 만들어야 했으며, 이로 인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끝없이 지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대중들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파멸되지 않으려고, 막강한 권력자와 그가 내세우는 강제적 질서 속에서 그저 수동적으로 몸을 내맡기면 살아가고 있습니다. 17세기 유럽에서는 비참한 정치적 상황과 병행하여 남자들이 여자들을 지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푸아니에 의하면 폭력을 자행하는 위계적 질서로 이루어진, 가부장적 수직구도의 사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가의 체제는 이 경우 불필요합니다. 이를 고려하면 푸아니가 서술한 남쪽 대륙의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 방식은 17세기 프랑스의 절대 왕권 속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현실상에 대한 반대급부의 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2. 양성의 인간: 푸아니는 남쪽 대륙의 사람들을 양성 인간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유럽인들은 남쪽 대륙의 사람들의 눈에는 아직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한 반인 半人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완전하게 발전된 이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서 남쪽 대륙의 공동체의 삶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아무런 마찰 없이 영위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이성의 힘에 의해서 이행되기 때문입니다. 남쪽 대륙의 사람들은 유연하며 매우 민첩합니다. 피부는 불그스레하며, 상당히 긴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머리카락은 까만데, 사람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턱은 길며,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몇몇 부족의 팔은 길어서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나의 것 그리고 너의 것과 같은 소유에 대한 관념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남쪽 대륙의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발가벗은 채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옷을 걸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푸아니는 이렇게 묘사함으로써, 17세기 프랑스의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이 너무나 엄격하고 편협하다는 점을 은근히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

 

13. 완전한 삶, 완전한 인간: 남쪽 대륙의 사람들은 위에서 아래로 향해 외치는 명령조의 말을 싫어합니다. 그들은 이성이 명하는 대로 자연스럽고도 당당하게 행동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성이 법이요, 규칙이며 인간 삶의 유일한 척도입니다. 완전한 인간과 반인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시고와 갈망을 가급적이면 일치시키면서 살아갑니다. (Foigny 76: 183f). 남쪽 대륙의 사람들에게는 정부와 중앙 관청이 없으며, 무언가를 명령하는 자와 이를 이행하는 윗사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이성이 자신의 힘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이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원하는 바와 행동을 일치시키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공동체는 혼란으로 인하여 엉망진창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개인적 자유와 평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런 제한 없이 조화롭게 살아가게 하고, 공동체의 동질성을 영위하게 해줍니다. 자크 사뒤르는 이를 알아차립니다. 그는 언어, 예절, 건축 그리고 그 밖의 사항에 관한, 놀라울 정도로 동일한 규칙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인공에게서 모어의 유토피아의 등장인물, 라파엘 히틀로데우스의 면모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14. 사유재산은 남쪽대륙 원주민들에게는 불필요하다.: 푸아니는 완전한 재화 공동체에 관해서 토마스 모어가 기술한 범례를 따르고 있습니다. 남쪽 대륙 사람들은 내 것과 너의 것 사이의 구분을 알지 못할 정도로 사유재산에 대한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Saage: 143). 모든 것은 만인의 소유물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필요에 따라 재화를 분배합니다. 이를테면 그들에게는 재화 생산의 과정이 불필요합니다. 온화한 기후와 자연의 혜택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필요한 모든 것은 풍족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물건들을 반드시 조달해야 한다는 필연성 자체가 처음부터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남쪽 대륙의 사람들은 탐욕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수집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면, 이는 당사자가 심리적으로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쪽 대륙의 사람들은 금과 은이 어째서 귀한 물건인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15.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자연환경: 나아가 섬의 외부적 구조 역시 어떤 목표에 합당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자연 환경 역시 그곳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편리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령 남쪽의 대륙에는 산이 하나도 없으므로 사람들은 광활한 초원을 멀리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합심하여 이곳의 땅을 평평하게 골라놓았습니다. 나아가 그들은 주거지를 기이한 방식으로 축조해놓았습니다. 집 한 채에는 제각기 네 명이 살 수 있는 네 개의 거주지가 있습니다. 25개의 집은 하나의 거주 구역으로 정해지며, 사람들은 16개의 거주 구역을 하나의 세차인Sezain”이라고 명명합니다. 남쪽 대륙에는 도합 15.000 개의 세차인이 존재합니다. 말하자면 이곳 사람들은 점성술의 합리적 이상에 의거하여, 거주지를 놀라운 기하학적 모형으로 축조한 셈입니다.

 

점성술에 조예가 깊은 이들의 집은 기하학에 바탕을 두고 축조된 것입니다. 건물들은 화려하지는 않으나, 매우 질서 잡혀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가부장적 가족의 개념을 지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남녀는 서로 만나서 일정 기간 동안 살다가 다시 헤어집니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에게는 결혼과 이혼은 물론이요, 만남과 이별이라는 개념 자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적어도 하나의 부락 내에서는 그들 자신을 한 명의 대아 (Atman, 大我)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정치적 문화적 혹은 교육적 목표에 따라 제각기 독특한 이름을 지닙니다. 학교에는 약 6만 개의 학교에서 사천육백만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활동하는 것을 고려하면, 광활한 남쪽 대륙의 전체 인구수는 약 144백만에 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