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푸아니의 양성구유의 유토피아 (4)

필자 (匹子) 2018. 2. 20. 09:40

16. 남쪽 대륙 사람들의 노동과 식사: 남쪽 대륙 사람들의 노동은 매우 단순합니다. 기후가 온화하여 1365일 과일과 곡식이 풍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들의 노동은 열매와 곡식을 채취하는 일이며, 서너 시간만 할애하면, 며칠 분량의 음식을 장만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음식을 요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생식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음식과 음료수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분에 넘치는 향연 자체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공동식사를 지양하고, 개별적으로 식사합니다. 커다란 열매 한 두 개만 먹으면 포만감을 느끼고, 개울에 흐르는 청량음료는 그야말로 신의 음료수, 넥타와 같습니다. 푸아니는 이러한 자연환경을 인류가 천국에서 추방당하기 이전의 현실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야채 위주의 식습관으로 인하여 이곳 사람들은 비만 내지 당뇨병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이는 이곳 사람들이 소식 (小食)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금과 은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17. 검소한 삶과 명상: 남쪽 대륙의 사람들은 전혀 옷을 걸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집안에 가구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주인공이 걸친 명주의 옷을 바라보고 매우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이들의 의식주를 접하면서 주인공은 이곳 사람들이 검소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푸아니는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모든 재화로부터의 거리감détachment des tous les biens”을 취함으로써 개개인들은 이기주의적 내지 사특한 마음을 저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근검절약을 생활화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재화를 아끼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이곳 사람들은 인색함l’avarice”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합니다. 나아가 남쪽 대륙의 사람들은 하루 삼분의 일의 시간을 명상으로 보냅니다. 명상의 시간에는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명상이 끝나면, 사람들은 한 가지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입니다.

 

18. 남쪽 대륙 사람들의 사랑과 출산: 남쪽 대륙의 사람들은 사생활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하나의 금기로 생각합니다. 아무도 누가 누구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습니다. 성행위는 비밀스럽게 행해집니다. 자크 사뒤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랫동안 그들을 관찰했는데도, 그들의 성행위에 관해서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저 각자가 특정 인간에 대해 연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만 알아차렸을 뿐이다. 나는 한 번도 이들이 치정으로 인한 싸움 내지 시기와 질투 등을 표출하는 것을 접하지 못했다.” (Foigny 82: 59f).

 

푸아니의 거대한 공동체에서는 결혼제도가 없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아이와 어머니의 일시적 관계입니다. 그럼에도 자식과 어머니 사이에는 깊은 관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3세의 아이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 첫 번째 교육자로부터 교육을 받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므로, 자식을 임신하고 출산할 수 있습니다. 임신한 사람은 HEB”이라는 건물의 조산소에 머물면서 출산일까지 편안하게 지냅니다. 푸아니 공동체에서 아이를 낳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의무 조항에 따르면 모두가 한 명의 자식을 낳아야 합니다. 만약 사내아이 혹은 계집아이가 태어나면, 사람들은 아이를 괴물이라고 여기며, 아이를 즉시 목 졸라 죽입니다. 모든 인간은 양성을 지녀야만,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산모는 아이를 위하여 기저귀도 사용하지도, 요람을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영아가 2살이 될 때까지 산모는 오로지 모유만을 먹입니다. 세 살이 되면, 영아들은 공동으로 키웁니다. 24개월 된 영아들은 엄마의 품을 벗어나서 8개월간 탁아소에서 자랍니다. 이때부터 이유식으로서의 열매와 곡식을 섭취합니다. 따라서 자식과 부모,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식과 어머니의 애틋한 관계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과 2년간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19. 국가적 정치 기관은 없다.: 남쪽 대륙에서는 정치 기관, 다시 말해 정치권력을 수행하는 단체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개개인은 자신의 성적 경제적 욕망을 상부에 위탁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행정 기관이 설치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어쩌면 베르네리의 주장대로 푸아니는 성에 관한 기독교의 입장을 조소하고, 비아냥거리기 위해서 작품을 집필했는지 모릅니다. (Berneri: 147). 만약 개별적 인간의 성 관계가 종족 보존을 위한 수단의 기능으로 축소화된다면, 성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정들은 양성 인간에 의해서 얼마든지 철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양성 인간들은 거대한 체제의 국가 기관을 알지 못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들은 “HAB”이라고 불리는 공동의 장소에서 모여서 특정 사안에 관하여 토론을 벌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문제점은 이러한 토론의 과정을 통해서 해결됩니다.

 

20. 남쪽 대륙 사람들의 교육: 남쪽 대륙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학교에 다닙니다. 학생들은 나이가 서른다섯이 되어서야 학교를 떠날 수 있습니다. 학교는 다섯 단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유치원, 기초학교, 중등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3세의 아이들은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3세의 아이는 어머니가 떠난 뒤에 첫 번째 교사에게 인계되는데, 이때부터 읽고 쓰는 것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학교는 3년 과정이며 두 번째 학교는 5년 과정입니다. 그 후의 학교들은 모두 5년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면, 대부분 사람들은 상당한 지식을 섭렵해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약 스물다섯의 나이에 학교를 떠나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곳 사람들은 약 10년 정도 더 오래 공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남쪽 대륙의 사람들이 결코 미개한 민족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의 높은 문화를 설립해 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5세의 나이가 될 때까지 학교를 다니는 까닭은 소수의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함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사회가 무엇보다도 평등 교육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자고로 대부분의 열등 학생은 능력이 모자라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더디게 배울 뿐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배움에 대한 인간의 열정일 뿐, 잘하고 못하고가 아닙니다. 적어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35세까지 학교에 다니면, 모든 학생들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기본적 지식을 천천히 함양할 수 있습니다.

 

21. 군인은 있으나, 군대는 없다.: 군인들은 국가의 권위에 종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식사를 개별적으로 행하고, 명령 체계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습니다. 수직 구도의 군대 조직은 없습니다. 군인들 모두가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며 자치적으로 움직이므로, 계급의 구분이 불필요합니다. 예컨대 한 군인이 놀라울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경우 다른 군인들은 그의 뜻을 따릅니다. 군인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전투에 임합니다. 그러니까 명령이나 질서, 혹은 훈련이나 계급에 따라 수동적으로 대응하지도 않습니다. (Foigny 82: 104). 군인들 간에 상명하달도 없고, 명령 불복종 죄도 없습니다. 군인 모두가 숙련된 장교들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의사소통을 행한 다음에 결정된 바를 실천합니다. 그들은 정치적 엘리트를 알지 못합니다. 군인이라고 해서 일반 사람들 앞에서 특별한 권한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물론 군인들의 수직 구도의 명령 체계가 예외적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신참병을 교육시킬 때 군인들은 전통적 방식의 수직 구도의 계급 체계를 예외적으로 용인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