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푸아니의 양성구유의 유토피아 (5)

필자 (匹子) 2018. 2. 20. 09:41

22. 종교와 신앙의 문제: 푸아니는 종교 문제에 있어서 놀라운 사항을 도입합니다. 가령 젊은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전지전능한 보이지 않는 신적 존재를 맹신하지 않습니다. 몇몇 교사들은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방식으로 기도 드릴 것을 연습시킬 뿐입니다. 게다가 성스러운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에 관해서 형이상학적 토론을 벌이게 하지 않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로 신의 존재 여부에 관한 논증 및 의견 대립은 푸아니에 의하면 신앙생활과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신에 관한 논쟁 내지 교리에 관한 제반 규정에 관한 논박은 16세기 내지 17세기 유럽에서 피비린내 나는 종교 전쟁을 촉발하는 도화선으로 작용했습니다. 푸아니 역시 자신의 삶에서 이를 뼈저리게 체험한 바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 관해서 발설하지 않는 게 오히려 그들의 종요인 셈입니다. (Foigny 82: 89). 젊은 사람들은 “HAB”에 모여서 스스로 자신의 마음가짐을 정결히 하는 대상을 설정하여 기도하는 등 명상에 잠깁니다.

 

23. 전쟁 그리고 잔악한 공동체 이기주의: 고립된 국가 공동체의 취약점은 어떻게 외부로부터의 전쟁의 위협에 대응하는가? 하는 물음과 관련됩니다. 이곳 사람들이 처하고 있는 당면한 문제 역시 외부의 다른 지역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12장에서 남쪽 대륙에서의 삶에 관한 서술은 갑자기 중단되고, 외부의 적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폰딘스라고 명명되는 거대한 적과 오랜 기간 동안 싸워왔습니다. 물론 이곳 사람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그렇지만 낯선 국가가 이곳을 침공했을 경우, 자신의 삶의 터전과 동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전쟁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들은 적의 마지막 잔당들이 궤멸되기 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 투쟁하였습니다. 남쪽 대륙 사람들의 이러한, 합리적이지만, 파괴적인 충동은 토마스 모어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이 경우 이성은 효과적인 공격과 파괴의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주인공, 자크 사뒤르 역시 방어를 위한 전쟁에 참가하기로 결심합니다.

 

24. 자크의 범죄: 그런데 전쟁터에서의 주인공이 저지른 여러 가지 행동은 이곳 사람들의 눈에는 엄청난 범행으로 비칩니다. 그의 죄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지 않고 치고 빠지는 식으로 싸웠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중상을 입은 적군 포로에 대해 자크가 어떤 동정심을 표명했다는 점입니다. 세 번째는 성적 욕망에 사로잡혀서 적국의 여인의 성을 취하려고 포옹하였다는 점입니다. 네 번째는 정벌을 위한 주둔지에서 육류 고기를 아귀아귀 먹어치웠다는 사실입니다. 다섯 번째 죄목은 승리의 순간에 적국의 여자들을 모조리 죽이지 않고, 성 노리개로 데리고 놀았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그는 전쟁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주인공의 죄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적군에 대한 동정심이며, 다른 하나는 성적 욕망을 참아내지 못하는 인간적 약점이었습니다.

 

자고로 중상을 입은 적군의 포로를 인간적으로 대하라는 국제 적십자사의 슬로건은 때로는 군인 정신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한계 상황 속에서 내팽개쳐져 있는 여성의 성을 유린하는 행위는 역시 군인으로서의 금기사항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자크는 군인으로서의 올곧은 태도를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푸아니가 이렇게 서술한 데에는 작가로서의 한 가지 의향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이 이성을 신뢰하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지만, 이성을 과도하게 맹신하게 되면, 얼마든지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항,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자크는 전쟁의 와중에서 어쩌면 자신이 머나먼 타향에서 객사할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자크 사뒤르는 자신의 선원들과 함께 도주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때 거대한 발톱을 지닌 새가 다시 나타나 그와 그의 선원들을 망망대해로 데리고 갑니다. 바다에 빠지 그들을 구출한 것은 프랑스의 범선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선원들은 이들을 구조하여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데리고 갑니다.

 

25. 개개인 속에 담겨 있는 집단적 오성: 주인공 자크 사뒤르의 잘못은 궁극적으로 그의 내면에 담긴 동정심 그리고 이성에 대한 약점에 비롯합니다. 어쩌면 작가는 다음의 사항을 경고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즉 사회의 구성원들이 오로지 독단적인 이성만을 실천하게 되면, 어떤 참혹한 비인간적 결과가 초래하게 된다는 사항 말입니다. 남쪽 대륙의 사람들은 침투한 적과 피치 못할 전쟁을 치를 때 적을 한 명도 빠짐없이 궤멸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회적 조화로움을 완성시키고, 개별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의 철칙 속에서 전쟁을 치르게 하는 것은 절대적 이성입니다. 국가의 체제 내지 기관은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개개인 속에 오롯이 담긴 집단적 이성의 목소리는 아나키즘의 사회적 모델을 제대로 기능하게 하는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어스베르거는 푸아니의 문헌을 진정한 의미의 유토피아 문헌이라고 명명한 바 있습니다. (Girsberger: 190). 그 까닭은 푸아니의 유토피아가 이러한 방식으로 개개인 속에 처음부터 도사리고 있는 오로지 절대적 오성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푸아니는 주권의 권력 구성과 배치에 관한 어려운 문제를 제거했으며, 법과 제도라는 논리적 체계를 배척할 수 있었습니다.

 

26. 푸아니의 시대 비판 (1): 작품은 어떠한 이유로 남쪽 대륙 사람들의 기상천외한 사회에 관하여 그토록 상세하게 서술했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푸아니의 삶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푸아니는 17세기 프랑스의 기독교 체제가 인간의 영혼을 해방시켜주는 게 아니라, 권력과 결탁하여 여전히 인간 삶을 구속하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푸아니의 비판은 기독교 체제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종교의 모든 기본적 토대로 향하는지 모릅니다. 이를테면 남쪽 대륙 사람들은 계시의 신앙을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께서 자신의 피조물 가운데 몇몇을 선별하여 특히 선호했다는 가설을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남쪽 대륙 사람들은 영혼불멸설을 비난합니다. 죽은 자는 살아 있는 자가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죽음 이후의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는 가설은 논리적으로 불합리하다고 합니다.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들보다 더 자유로운 이전의 자유를 지닌다는 생각 자체가 한마디로 자가당착이라는 것입니다. 남쪽 대륙 사람들은 기도를 하나의 아무런 생각 없는 행위라고 규정합니다. 그들은 신이 기도하는 자의 갈망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신이 신자들의 애타는 기도를 듣고 이를 모른 체 한다면, 이는 기도하는 자의 마음이 경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남쪽 대륙 사람들이 처음부터 신의 냉담성과 인간에 대한 외면을 강조한다면, 이는 신을 모독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27. 푸아니의 시대 비판 (2): 물론 남쪽 대륙 사람들 역시 신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을 거론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역설적인 말입니다만 신앙에 관해서 언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사제도 없으며, 사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쪽 대륙의 사람들은 제각기 혼자서 참선하기 위해서 한 자리에 모이지만, 공동으로 기도하기 위해서 한 자리에 모이지 않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분명하게 확정할 수 있습니다. 즉 종교는 지금까지의 통상적인 기능과는 달리, 오로지 인성 속에 내재한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을 연마하게 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푸아니에 의하면 기독교의 교리대로 죄지은 존재로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라, 자유롭게, 이성과 선을 지닌 채 탄생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원죄설은 푸아니의 유토피아에서는 용납되지 않고, 체제로서의 국가, 체제로서의 신앙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유롭게, 선하게 그리고 이성적으로 태어났으므로, 확정된 법도 없고, 지배자도 없으며, 사유 재산도 없고, 소유에 대한 구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