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서로박: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비판 (4)

필자 (匹子) 2018. 1. 24. 11:53

16. 국가, 영토, 민족 그리고 비상사태?: 이로 인하여 출현하는 것은 개개인에 대한 전체주의 국가의 횡포입니다. 이에 대해 어떠한 민주주의도 보호 받지 못합니다. 아니 그와 반대입니다. 지금도 세계의 난민들은 억압, 폭력 그리고 테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타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기본적 인권법이라든가 자유의 법은 21세기에 이르러 거의 무용지물로 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감벤은 법 자체가 처음부터 정의로움과 폭력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담보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로써 정의로움과 폭력을 행사하는 법은 아감벤에 의하면 인간을 자유인으로 만들지 않고, 하나의 도구 내지 객체로 활용하는 수단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작가는 VP 생체 실험의 인간 그리고 국가의 인위적 정책으로 행해지는 안락사 등을 비판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감벤은 법이 무시되는 범례로서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프Abu Ghraib 감옥 그리고 쿠바의 관타나모Guantanamo 만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자행되는 기상천외한 고문과 끔찍한 살인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의 비상사태는 통치와 지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권력자는 국가, 영토 그리고 민족을 통치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로 규정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르러 권력자는 정치적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한 수단으로서 네 번째 요소, 즉 비상사태를 활용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아감벤이 권력자의 월권행위를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불가피한 필요악으로 치부하는 데 있습니다.

 

17. 아감벤 이론 비판 (1): 주권으로부터 배제된 인간 그룹으로서의 지구상의 난민 그리고 난민수용소에 대한 아감벤의 지적은 날카롭습니다. 과거에 국가의 구조가 인민, 영토 그리고 법질서에 의해 정초되었다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영토, 법질서 그리고 출생이 첨가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한 인간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가를 기술하는 일은 벌거벗은 생명체를 통솔하고 다스리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아감벤은 일부 엘리트에 의해 장악된 전-지구적 독점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이리저리 이용당하고 핍박당하는 개인 주체의 무기력한 모습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아감벤은 자신의 논리를 위해서 여러 가지 법철학적 다양한 이론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필자로서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세 가지 사항입니다. 첫째로 저자는 제반 이론들이 태동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법철학적 용어의 이중적 의미라든가 그리고 이론적 명제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항입니다. 이를테면 아감벤은 주권을 폭력과 정의 사이의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점 ()으로 설명합니다. 사실 주권은 전-지구적으로 주어진 전체주의의 폭력의 상황 속에서 심각할 정도로 악용되거나 남용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주권의 근본적 본질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감벤은 법이 바로 정의 및 폭력을 행사하는 수단이라고 규정합니다. 물론 아감벤의 주장대로 예외적으로 비상사태 내지 법적 효력이 사라진 경우가 세상에 얼마든지 예외적으로 존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한시적이고 예외적인 비상사태이며, 그 밖의 대부분의 인간 삶은 민주주의의 원칙 그리고 가급적이면 자연법의 정신을 추종하려는 법적 정의에 의해 영위되고, 또한 그래야 합니다.

 

18. 아감벤 이론 비판 (2): 둘째로 주권은 당위적 차원에서 인간 개개인에게 주어져야 하는 무엇입니다. 그런데도 아감벤은 당위성과 의향으로서의 법적 권한의 가능성을 용인하지 않고, 실정법의 차원에서 실제로 행해지고 있 법의 기능만을 고려할 뿐입니다. 이를 위해 아감벤은 역사적으로 출현한 제반 정치 철학의 이론을 결과론적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설령 이론의 틀이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고대와 현대의 현실은 제각기 다르며,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역시 이질적입니다. 예컨대 원래 고대 사회 내지 중세 사회는 계층적 신분 구조의 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고대 사람들은 계층적으로 확립된 신분 차이를 천부적인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에 비하면 오늘날 굶주리는 거지라 할지라도 민주주의와 인간의 평등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고대의 계층사회에서의 주권은 주로 통치자에게 향해 있었고, 고대의 일반 사람들이 이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면, 현대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권이 권력자가 아니라, 만인이 누릴 수 있으며, 누려야 하는 기본적 권리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경제적 차이로 인하여 일반인들의 실제 삶은 여전히 가난하고 고통스럽지만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국가의 공권력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으며, 오히려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촛불 집회에 더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감벤은 수수방관자의 자세로 과거의 호모 사케르 그리고 현대의 난민 내지 수용소의 수인들 사이의 유사성을 서로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과거에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던 벌거벗은 생명체가 존재했듯이, 현대에 고문당하고 살해당하는 벌거벗은 생명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아감벤은 고대의 법철학적 논의를 현대의 정치사상의 이론에다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현재 인간이 처한 상황이 고대인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고대와 현대의 정치사상을 마구 뒤섞어서 일원화시킬 수는 없는 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의 수인들의 참담한 정황의 유사성을 서로 비교하는 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법적 효력이 사라진 지역에서 어떤 바람직한 강력한 국제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19. 아감벤 이론 비판 (3): 셋째로 아감벤은 처음부터 어떤 대안 내지 해결책에 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현재 상태와 주권 그리고 정치권력의 기본적 속성 등에 관해서 언급했을 뿐입니다. 이를 위해서 호모 사케르라는 고대 로마의 용어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상사태 선포를 대체할 수 있는 어떤 구체적 대안에 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가령 아감벤은 실정법과 자연법의 차이에 관해서 그는 아무런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한스 켈젠과 같은 법적 이상으로서의 가설적 기본 규범을 준수하는 대부분의 법-철학자들은 다만 방법론적 차원에서 자연법을 배제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법이야 말로 실정법의 법적 하자에 대한 통렬한 마이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론의 유사성 그리고 과거와 현대에 공히 버림받고 배척당하는 인간 유형이 제각기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차라리 고대 사회와 현대 사회의 이질적 특성을 지적하고, 만인이 누려야 하는 자유와 평등의 실천에 골몰하는 게 더 나았을 것입니다.

 

20. 아감벤 이론 비판 (4): 어째서 아감벤은 법의 영향이 배제된 비상사태 속에서의 끔찍한 부자유의 상황을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일까요? 21세기까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사람들의 끝없는 노력과 헌신이 더 이상 유효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 물론 세상에는 참혹한 사건이 그치지 않고 발생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어떤 허무주의적 체념을 불러일으키는 언급 대신에,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 가능성을 찾아나서야 할 것입니다. 혹자는 테러범과의 협상이 어떻게 가능한가? 세상을 뒤흔드는 것은 언제나 지적 야수들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시킬지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인종, 국적 그리고 성별 종교 등의 차이를 이유로 어떻게 억압당하고 있는가를 밝히고 이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아감벤의 문헌은 안타깝게도 인간 세상을 하나의 눈물의 계곡으로 이해하는 가톨릭 사상가들의 숙명론적 허무주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철학자인 우베 유스투스 벤첼은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의 이론을 고상한 경악의 숙명론으로 명명한 바 있습니다. (Wenzel: 4).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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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미트, (2016): 땅과 바다, 칼 슈미트의 세계사적 고찰, 김남시 역, 꾸리에.

- 아감벤, 조르조 (2008):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박진우 역, 새물결.

- 아감벤, 조르조 (2014): 도래하는 공동체, 이경진 역, 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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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gamben, Giorgio (2002): Homo Sacer. Die souveräne Macht und das nackte Leben, Frankfurt a. M..

- Atmani (2012): Manengesang, Hirschhorn.

- Hobbes, Thomas (1997): Leviathan or The Matter, Forme and Power of a Commun Wealth Ecclesiastical and Civil,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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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rkl, Adolf (1961): Zum 80. Geburtstag Hans Kelsens: Reine Rechtslehre und Moralordnung. In: Österreichische Zeitschrift für öffentliches Recht, Band 11, Neue Folge (1961), S. 293313..

- Schmitt, Carl (1950): Der Nomos der Erde im Völkerrecht des Jus Publicum Europaeum..

- Schmitt, Carl (1993): Politische Theologie Vier Kapitel zur Lehre der Souveränität (1922), Berlin.

- Taubes, Jacob (1987): Ad Carl Schmitt. Gegenstrebige Fügung. Berlin.

- Wenzel, Uwe Justus (2013): Ein lateinisches Reich, NZZ, Nr 128/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