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는 그야말로 희열과 고통이라는 양극을 오가는 작업이지요. 자신의 예술적 창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희열 그리고 매일 끈덕지게 글을 써야 한다는 손가락의 아픔 (도스토예프스키는 펜으로 글을 썼습니다.)을 생각해 보세요. 희열과 아픔 - 작가의 이러한 복잡한 감정은 제 자식을 잉태하는 여자의 기쁨과 괴로움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창조의 작업은 -마치 출산이 그러하듯이- 그 과정에서 고통을 안겨주지요.
크리스토프 하인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호세 오르데카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는 아침에 일어나면 즉시 화장실로 향한다고 한다.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는 게 아니다. 책상으로 가기가 너무너무 싫어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책상에 앉으면 소설가는 어떤 신명을 느낀다. " 작가가 훌륭한 장편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오랜 고난의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시인도 그러합니다. 시인은 시 한 편을 잘 쓰기 위해서 꼬박 가을을 보냅니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기 위해서 자신의 시작품을 30년 이상을 서랍에 보존하는 시인도 있습니다.
크리스토프 하인은 주로 산문과 극작품을 집필하고 발표하였습니다. 그의 글은 비교적 간명합니다. 대학에서 논리학을 전공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비교적 수월하게 읽힙니다. 이것이 작품 세계의 특성을 드러내는 강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소설가라고 명명하지 않고, "동독의 시적 연대기 기술자 ein poetischer Chronist der DDR"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견해를 독자에게 강권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합니다.
크리스토프 하인은 1944년 구동독의 하인첸도르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목사의 아들이란 대체로 구동독에서 기이한 존재로 이해되었습니다. 나중에 크리스토프 하인은 자신이 목사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말하면서, 스스로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술회했습니다. 부모는 이곳에 잠시 머물다가 Bad Dueben 이라는 지역으로 이사했습니다. Bad Dueben은 평온한 요양지였고, 인구 10만도 채 되지 않는 소도시입니다. 크리스토프 하인은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이곳의 삶은 그의 소설, "모든 처음부터Von allem Anfang an"에 부분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모든 처음부터 Von allem Anfang an"은 1997년에 베를린에서 간행된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부터"라는 제목으로 한경희씨에 의해서 번역되어 2001년에 생각의 나무 출판사에서 간행되었습니다. 여기서는 하인의 유년 시대의 상념, 희망 그리고 불안, 서서히 눈을 뜨는 성 등이 간결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하인은 동독의 진학 고등학교 (EOS: die erweiterte Oberschule)를 다닐 수 없어서, 서베를린에 있는 김나지움을 다녔습니다. 하인은 나중에 훔볼트 대학교에서 철학, 특히 논리학을 전공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처음에는 연출가로 일하며 극작품을 집필하였습니다. 1979년에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분단 시대에 그가 남긴 대표적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설, 낯선 연인 1982, 소설, 호른의 죽음 1985, 극작품 원탁의 기사 1988, 소설 탱고 연주자 1989
나는 하인의 작품 가운데 호른의 죽음을 명작으로 꼽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인간이 사회주의 사회에서 소외되어 사람들의 밀고에 의해서 체포됩니다. 이야기 의 저변에는 비단 기존 사회주의의 비민주적 사회 분위기 뿐만 아니라,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국가 사회주의의 비극적 갈등이 깔려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과 성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 또한 배제되지 않고 있지요. 놀라운 것은 모든 이야기가 다섯 명의 화자에 의해서 서술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독자는 모든 이야기의 비밀을 모조리 접하지 않고 추론해내야 합니다. 소설 "호른의 죽음"은 1950년대의 철학자 한 사람을 연상시킵니다. 그는 요한네스 하인츠 호른으로서 에른스트 블로흐의 철학적 내용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했는데, 나중에 영문 모르게 자살한 사람입니다.
사진은 1989년 11월 3일 라이프치히 광장에서 연설하는 모습입니다. 크리스토프 하인은 동독의 민주화를 주창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당관료 공산주의자들을 척결하고 노동자들로 하여금 정치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동독의 민주화 대신에 통일을 원했습니다.
크리스토프 하인은 통독 이후에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소설 나폴레용 놀이 1993, 소설 빌렌브로크 2000, 소설 점령 2004, 소설 바이스케른의 유고 2011 등이 문학적 결실입니다. 나폴레옹 놀이는 삶을 유희 내지는 도박으로 대하는 한 인간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설 빌렌브로크는 통일된 독일에서의 재산 및 소유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소설 점령은 과거의 범죄를 묻어버리려고 애쓰는 바닥나기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설 바이스케른의 유고는 오늘날 가난하게 살아가는 인문학 사설 강사의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박설호: 오늘날 대학은 죽어가고 있는가? 실린 곳: 망각의 시대에 명작 읽기, 울력 2013, 13 - 25쪽.
서정일: 죽은 자의 삶과 살아남은 자의 기억. 크리스토프 하인의 호른의 죽음, in: 독일문학, 제 95집, 2005. 9, (125 - 144).
임홍배: 역사라는 이름의 게임. 크리스토프 하인의 『나폴레옹 놀이』, 실린 곳: 뷔히너와 현대문학, 제 33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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