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좋은 곳에 숨어 사는 자는 좋은 삶을 사는 자이다. Bene qui latuit bene vixit.” 이것은 말년의 오비디우스 Ovid가 흑해 망명의 외로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시구이다. 만일 유렉 베커 Jurek Becker의 아버지, 모르데하이 베커 Mordechai Bekker가 이 구절을 접했다면, 시적 아이러니에 아마도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을 것이다.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에게 “좋은 곳”이란 이 세상에 없다. 주위에는 자기 민족에게 총을 들이대던 원수들이 일상인이 되어 살고 있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독일에서 계속 살지만, 과거의 기억을 떨치고 어느 정도 자기기만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렉 베커는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던 폴란드 소년, 예르치 베커 Jerzy Bekker였다. 그는 전후에 아버지와 극적으로 상봉한 뒤, 부친의 조심스러운 배려 속에서 동베를린에서 성장하였다. 낯선 독일어를 배우던 유대인 소년이 훗날 독일 작가로 성공을 거둘 줄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본고는 『브론슈타인의 자식들』에 나타난 동독 유대인 2세의 자기 정체성 그리고 과거 극복의 문제 등을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소설은 작가가 암으로 사망하기 9년 전에 발표된 것으로서 자신의 문학적 결산을 담은 수작 秀作이다. 그것은 독일의 역사와 문학에 관한 깊은 통찰력과 정교한 창작 구상에 의해서 직조되어 있다. 특히 베커의 소설은 작가의 과거 체험에 근거한 핵심사항을 구체적으로 건드린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서독에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영화의 주제가 다만 외국인 2세의 사회 순응과 일탈에 관한 문제점으로 현격하게 축소되었다는 사실이다. 유대인과의 평화 공존, 파시즘 청산 등에 관한 테마들은 오늘날까지 동독에서 여전히 미결 상태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과거의 모든 역사는 오로지 독일인의 시각에서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기 때문이다. 베커의 소설은 하마터면 가장 발설하기 껄끄러운 주제의 화두로 작용할 뻔하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브론슈타인의 자식들』이 발표된 직후에 독일이 통일되었다. 독일의 통일은 베커 소설의 본격적 수용에 악재로 작용하였다. 왜냐하면 독일인들은 당면한 문제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므로, 과거에서 파생된 근본적인 문제를 숙고할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파시즘에 대한 비판적 역사관은 독일 통일 이후에는 대폭 수정되었고, 상당 부분 왜곡되었다. 통일된 독일의 문화적 지형도는 나치의 범죄에 대한 “반성할 줄 모르는 무능력” (Mitscherlich)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이 와중에서 베커가 추적한 유대인과의 화해 그리고 여러 인종과의 평화 공존을 모색하는 근본적인 사안 등은 세인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상기한 맥락을 고려할 때『브론슈타인의 자식들』에 관한 본격적 연구는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나름대로의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유대인 문화와 유대인 문제는 예나 지금에나 간에 독일 문화에서 마치 하나의 맹점과 같은 난제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본고는 『브론슈타인의 자식들』의 분석을 통하여 진정한 의미의 과거 청산의 문제 그리고 다원화 사회에서 여러 인종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 등을 살펴보려고 한다. 미리 말하자면 자아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개인의 차원이든 국가의 차원이든 간에- 오로지 자발적으로 행해진 자기반성과 진정한 깨달음의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 스스로의 노력을 통한 자기반성과 깨달음이야 말로 궁극적으로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하게 해주는 전제조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소설의 분석의 과정에서 우리는 통일된 독일에서 여전히 속출하는 네오 나치 Neo-Nazi의 성향 그리고 다문화 사회 내의 인종 갈등의 경향 등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 구동독에서의 과거 청산과 반유대주의
필자는 구동독 내에서의 과거 청산 그리고 반유대주의의 극복 등에 관해서 이전의 논문에서 천착한 바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작품 분석에 필요한 내용만을 약술하려고 한다.
첫째로 독일인들은 예나 지금에나 간에 유대주의를 잘 모르며,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기야 유대주의의 제반 흐름을 정확히 꿰뚫는 자들은 랍비를 비롯한 소수에 불과하다. 흔히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관습을 중시하고, 다른 인종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취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타인에게 피해 받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의 습관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에 대한 독일인의 무지와 선입견을 강화시키도록 작용했다. 이를테면 파시스트들은 다양한 유형의 유대인들을 하나의 특성으로 단일화시키고 일반화시키는 우를 범했다. 국가사회주의자, 로젠베르크 A. Rosenberg는 『20세기의 신화 Mythus des 20. Jahrhunderts』에서 이른바 셈족을 통틀어 순수하지 못한 혈통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그리스에 침투해온 에트루리안 인종이라고 추론해냈는데, 이러한 주장은 나중에 하나의 허구적 가설로 밝혀졌다.
둘째로 사람들은 유대 출신의 공산주의자들이 세계대전 전후에 소련과 동구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고위층 사람들은 공개적으로는 반파시즘을 표방했으나, 자국 내의 유대인들을 내심으로 조롱하고 경멸하였다. 나아가 구동독에서 수미일관한 유대인 정책이 전개되지 못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즉 동독은 반파시즘의 토대에서 건립된 국가로서 응당 대학살로 고통당한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사회주의통일당 SED은 이스라엘 건립 이후부터 80년대 중엽까지 외교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항해서 싸우는 아랍 국가들을 지지해 왔다. 이러한 정책상의 모순은 국내 정책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난다. 동독은 서독의 경우와는 달리 유대인들에게 전쟁 피해 보상금을 직접 지불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작은 특혜를 부여했다. 유대인에 대한 작은 특혜가 -마치 이기주의자들이 장애인에 대한 혜택을 하나의 불필요한 자선 행위로 간주하듯이- 일부 독일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었다.
다른 한편 동독은 은밀하게 소련의 반유대주의의 정책을 답습하였다. 이는 특히 50년대 초반에 체코의 “슬란스키 재판 Slánský-Prozess”과 병행하여 출현하였다. 동독 건립 후에 나치 전범에 대한 재판은 공개적으로 개최되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주의 재건 작업을 위해서 대대적으로 발탁된 자들은 나치 전범들이었다. 이러한 조처는 미군정의 뉘른베르크 재판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점을 보여준다. 서쪽 독일 지역에서 미군정은 나치 동조자들 Mitläufer을 훈방 조처하고 중범죄자들에게 엄벌을 내린 반면에, 소련 군정의 대표, 세르게이 툴파노프 S. Tulpanow는 처음부터 전범 재판의 개최에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다. 1949년 동독 건립 직후에 발터 울브리히트 W. Ulbricht는 약 17만 명에 해당하는 독일 장교들을 아무 조건 없이 사회주의 통일당 SED의 당원으로 가입하도록 조처하였다. 사회주의의 재건을 위해서 과거의 모든 행적은 한마디로 불문에 붙여졌던 것이다. 1952년에 이르러 동독 내의 “나치 체제 하에서 박해당한 자들의 모임 Verfolgung der Verfolgten des Nazi-Regimes”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셋째로 유대인 이세로 살아가는 동독의 젊은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대전과 대학살의 참극을 직접 체험하지 못한 이들은 경험의 폭이 다른 관계로 이전 세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는 유대인 사이에 어떤 세대 간의 갈등을 초래하였다. 그렇다고 유대인 이세가 독일인으로 동화 同化되는 일 역시 수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대인 혈통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마치 하나의 커밍아웃을 선언하는 것처럼 심리적으로 껄끄러운 일이었고, 사회적으로 어떤 위험을 각오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동독에서는 오랫동안 반유대주의와 관계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나가라 Ausländer raus!”, “야수들을 절멸하라 Exterminate all the brutes!” 등의 슬로건이 유독 동독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현한 사실은 동쪽 독일 지역의 낙후한 경제 사정 그리고 구동독에서의 반유대주의의 경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2, 3, 4, 5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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