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2) 유렉 베커의 '브론슈타인의 자식들'

필자 (匹子) 2023. 5. 17. 09:57

(앞에서 계속됩니다.)

 

3.『브론슈타인의 자식들』의 내용

 

지금까지 우리는 베커 소설의 이해를 위한 전제조건을 약술하였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어떤 교훈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갈등의 내적인 구조를 강조함으로써 독자에게 어떤 판단을 유보한다는 사실이다. 소설 속의 갈등 구조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그 하나는 아버지 아르노와 주인공 사이의 갈등이며, 다른 하나는 여자 친구, 마르타와 주인공 사이의 갈등이다. 전자는 유대인포로수용소 간수의 처벌에 관한 정치적 사회적 갈등과 관계되며, 후자는 남녀 사이의 애정 내지 소통이라는 심리적 갈등을 다루고 있다. 두 가지 갈등은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서서히 증폭된다.

 

일인칭 소설은 도합 36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소설의 화자는 유대인 2세, 한스 브론슈타인이다. 이야기는 1974년 주인공이 대학 입학 후에 자신의 거주 공간을 찾는 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하여 내적 위기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건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비투어 시험을 끝낸 주인공은 여자 친구와 동베를린 근교의 별장으로 가서 사랑을 나누려고 한다. 별장에 도착했을 때, 별장 안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가 두 친구와 함께 어느 낯선 자를 침대에 묶어둔 채 심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문당하는 자는 아르놀트 헤프너인데, 노이엔감메 Neuengamme의 유대인강제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하던 독일인이었다. 강제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아버지와 두 친구는 이전에 헤프너와 조우한 적이 없었다. 놀라운 사건은 주인공의 데이트를 방해한다. 다음날 주인공은 아버지와 언쟁을 벌인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폭력 행위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마르타는 유대인 박해를 다룬 영화에 출연하려고 한다. 이때 주인공은 왜 하필이면 유대인 신분을 밝히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가? 하고 따진다. (Bronstein: 107, 213). 마르타는 주인공의 태도에 몹시 실망한다. 주인공은 여전히 마르타에 대한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며, 행여나 그미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한다. 다른 한편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뒤늦게 해명한다. 즉 구동독은 나치들에 대한 심판을 행하지 않으므로, 자신이 직접 헤프너를 문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헤프너의 문제로 당국에 익명의 편지를 보낼까, 아니면 변호사를 찾아가서 상의할까 고민한다. 결국 주인공은 헤프너를 찾아가서, 그와 대화를 나눈다. 헤프너는 비굴한 태도를 취하면서, 사례금을 줄 테니 풀어달라고 사정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냥 집으로 돌아온다. 마르타는 영화와 관련되는 직업을 지닌 나이든 남자, 론을 사귀기 시작한다.

 

아버지와의 격론을 통해서 비밀 하나가 백일하에 드러난다. 부모는 1938년에 나치의 탄압을 피하려고 세 살 난 딸, 엘레를 어느 독일 농부에게 맡겼다. 거의 방치되어 지낸 엘레는 간헐적으로 심각한 피해망상의 증세를 드러낸다. 이로 인해 엘레는 수십 년 동안 정신 요양원에서 살아야 했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부모는 다시 출산을 계획하였고, 이로써 태어난 아이가 한스였다. 주인공의 탄생은 한마디로 부모의 과거 삶과 직결되어 있다. 정작 주인공은 이를 깨닫지 못한다. 엘레는 주인공에게 편지를 보내어 아버지의 뜻을 꺾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충고를 받아들이기는커녕, 19세 많은 누나가 자기편이 아니라는 데 대해 실망감을 느낄 뿐이다. 결국 아버지는 주인공을 자신의 “적”이라고 몰아세운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공은 헤프너를 구출하려고 계획을 세운다.

 

주인공이 별장에 갔을 때, 아버지는 싸늘한 시신으로 바닥에 누워있다. 아버지, 아르노는 심문 도중에 극도로 흥분하여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이로 인해 즉사했던 것이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침대에 묶인 헤프너를 풀어준다. 나중에 헤프너는 서독에서 연금을 받으며 편안하게 살아간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해 하지 않는다. 자신의 눈에는 아버지가 육체적 기능 장애 내지는 하나의 사고 事故로 인해 유명을 달리했을 뿐이다. 주인공은 마르타의 부모 집에서 잠시 기거한다. 마르타의 부모, 리프쉬츠 부부는 주인공을 미래의 사윗감으로 생각하지만, 마르타는 주인공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4. 역사적 범죄에 대한 개인의 보복

 

아르노 브론슈타인은 이전의 작품 『권투 선수 Der Boxer』의 주인공, 아르노 블랑크와 흡사한 인물이다. 그는 동베를린에서 사진관을 경영하지만, 왕년에는 제철업으로 약간의 재산을 축적하였다. 전쟁 직후에 서독의 엠바고 정책으로 동독에서 철강의 품귀 현상이 나타났을 때 아르노는 동유럽에서 철강 제품을 불법적으로 구입하여, 그것을 동독으로 유입했다. 그는 이때 벌어들인 거액을 정신 병동에서 생활하는 엘레의 병원비로 지출하였고, 나머지 금액으로 숲의 별장을 구입하였다. (Bronstein: 37).

 

아르노는 아들을 혼자서 힘들게 키웠다. 그는 처음부터 유대인의 풍습을 고수하지 않았다. 예컨대 그는 이디시어 Jiddisch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아들이 태어난 뒤에도 할례 받지 않게 조처하였다. 이는 아르노가 아들을 독일인으로 키우려 했음을 반증해준다. 아르노는 적어도 아들만큼은 동독에서 “극도로 슬픈 생존의 욕구”를 지닌 채 살아가기를 처음부터 원했다. 그렇다고 아들이 유대인의 정체성을 포기하라고 가르친 것은 아니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아르노는 힘든 일상으로 인하여 (그는 돈을 벌어야 하고, 동시에 집안 살림을 도맡아 처리해야 했다), 아들에게 책임감, 어떤 신념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힘 등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논리를 중시하는 인간으로 각인되었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아버지로부터 “차가운 오성이 따뜻한 심장보다 유익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아르노의 냉정함은 유대인에 대한 입장 표명에서도 드러난다. 반유대주의는 아르노에 의하면 정치와 경제 문제에 집착하는 히틀러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하자가 있다면, 그것은 반유대주의라는 심리적 태도가 아니라, 반유대주의를 조장한 파시즘 이데올로기라고 한다. 동독은 반파시즘의 기치로 건설된 국가이기 때문에, 유대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팔레스티나로 떠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러한 입장은 한스의 고백에서도 나타난다. “아버지는 자신이 피해자로 취급당하는 것을 혐오하였다.” (Bronstein: 52). 가령 아르노는 레프쉬츠 부부와는 정반대로 “유대인의 빵 Matze”을 규칙적으로 먹지도 않았다. 예컨대 아르노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아들과의 갈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 “유대인은 없어. 그건 인간이 상상해낸 인종이야. (...) 거짓을 지어낸 자들은 자신의 신념을 믿으면서 끈덕지게 거짓을 퍼뜨렸어. 그래서 유대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들은 희생되고 말았어.” (Bronstein: 48).

 

그러나 아르노는 유대인수용소 간수인 헤프너와 조우한 뒤부터 지금까지 고수한 입장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독일인이 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준 사람은 바로 헤프너였던 것이다. 아르노는 평소에 동독이 유대인에 대한 피해 보상과 과거 청산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데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의 소중한 딸, 엘레가 정신병원에서 허송해야 하는 데 대해 뼈아픈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동베를린에 정착한 까닭은 아들의 교육 때문이었다.

 

그러나 헤프너와 만난 뒤에 아르노는 아들과 함께 독일인으로 살려는 자신의 태도가 잘못된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아르노는 동독 관리들에 대한 증오심을 다음과 같이 표출한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막강한 힘을 지닌 자는 히틀러든 누구든 간에 이 나라와 저 나라의 정치 깡패들로 하여금 자신의 일 (독일인으로 하여금 유대인 박해를 진심으로 뉘우치게 하는 일 - 역주)을 실행에 옮기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진정으로 과거 청산을 추진하는 법정이 동독에서 하나라도 존재한다면, 자신이 직접 헤프너를 심문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Bronstein: 80). 여기서 아르노는 과거 청산을 회피하는 동서독의 정치가들을 극도로 저주하고 있다. 국가가 예나 지금에나 간에 과거 청산에 계속 팔짱을 끼고 있으므로, 자신이 직접 나서서 나치 범법자를 심문함으로써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할 수밖에 없다고 아르노는 다짐한다.

 

심문의 과정 동안 헤프너는 조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과거에는 다른 법이 유효했다.”고 항변한다. 바로 이 점이 아르노를 더욱더 흥분하게 한다. 그러나 헤프너는 끝내 유대인들을 총살시키는 모습을 보았노라고 실토한다. 이때 아르노는 큰소리로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너털웃음은 자신의 귀에는 동족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통곡하는 울음으로 들릴 뿐이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