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박: 에릭 에릭슨과 루돌프 슈타이너의 교육 심리 이론 (5)

 

(앞에서 계속됩니다.)

 

23. 네 번째 단계, 균형 감각 (1): 슈타이너가 언급하는 초기 감각론의 네 번째 단계는 균형 감각입니다. 균형 감각이란 말 그대로 전후, 좌우, 상하의 균형을 잡기 위한 감각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방향성의 감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균형 감각은 주어진 자연과의 조화로움이라는 슈타이너의 “인지학”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입니다. 위와 아래를 인지하는 것은 시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몸속의 균형 감각에 기인합니다. 우주인들은 우주에서 수직으로 똑바로 서려는 성향을 드러내는데, 이는 시각적 판단이 우주의 현실에서착오를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세상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시각, 청각 그리고 촉각 등을 모조리 활용해야 합니다. 갓 태어난 영유아를 생각해 보세요.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무중력의 상태에 처해 있었듯이, 영유아 역시 외부 중력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처음에 영아는 외부의 기압에 대해 어느 정도 압박감을 느끼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적응해나갑니다. 동물은 (날짐승 그리고 해양 식물을 제외하면) 대체로 네 발을 사용하여 땅 위에 균형을 잡습니다. 그러나 호모 에렉투스는 두 발을 사용해야 하므로 처음에는 위태롭습니다.

 

24. 네 번째 단계, 균형 감각 (2): 사실 인간은 슈타이너에 의하면 세계에 대한 균형의 감각 없이 태어납니다. 이에 비하면 동물들은 처음부터 균형 감각을 지닌 채 태어나므로, 하루 이틀만 지나면 바로 움지이면서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과 달라서, 운동 능력을 발전시킨 다음에 균형 감각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균형 감각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은 귀의 달팽이관입니다. 그것은 측두골의 추체부로 복잡한 모양의 미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귓구멍은 페리 림프액에 둘러싸여 있는데, 피부로 된 미로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3개의 반원 모양의 터널에서 생성되는 엔도페리 림프액은 고여 있는 게 아니라 계속 유동합니다. 동공 실에서 이 액체는 사라지고, 새로운 엔도페리 림프액이 유동하도록 조처합니다. 물론 신체의 제반 기관이 균형을 잡는데 도움을 주지만, 달팽이관이 주도적으로 기능한다고 말하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놀라운 것은 오로지 척추동물만이 이러한 기관을 지닌다는 사실입니다. 달팽이관은 인간의 신체 속의 림프액을 순환시키면서 인간의 몸이 외부의 중력과 조화를 이루도록 도와줍니다.

 

25. 네 번째 단계, 균형 감각 (2): 달팽이관의 기능은 인간의 운동을 관장하는 소뇌와 연결되어 기능하게 되는데, 소뇌가 운동 장애를 일으키게 되면, 경련성 간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가운데 소뇌가 발달되지 않으면 소아 운동장애를 겪을 수 있으며, 신체 발달 역시 이와 병행하여 늦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운동 신경이 둔화되고 균형 감각이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신체 내부의 중력이 외부의 중력을 더 이상 수용하지 못한 채 차단되면, 여러 가지의 질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간질과 경련의 증세는 평형 기관이 손상을 입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입니다. 나아가 이명, 이석 증 그리고 메니메르 등과 같은 질명도 균형감각과 관련되는 질병입니다. 그밖에 몰골 족의 아이들은 수의 개념이 현저하게 뒤떨어져 있는데, 이는 유년기에 근육 기관의 발달이 더디고, 느슨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몸 자세를 바르게 하는 데 필요한 운동은 걷기, 달리기, 뛰기 그리고 계단 오르기 등입니다. 이러한 운동을 자유자재로 행할 때 아이들의 사고 역시 현저하게 발달될 수 있습니다. 이를 고려할 때 인간의 감각기관은 운동 능력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두뇌를 사용하는 일이 아니라, 스포츠 댄스 그리고 수영과 걷기 등의 운동이 치매환자에게 오히려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26. 다섯 번째 단계: 슈타이너는 영유아의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네 가지 감각으로서 촉각, 생명 감각, 운동 감각 그리고 평형감각을 예시하며, 이를 개별적으로 해명하였습니다. 뒤이어 두 번째 단계에서 발달하는 감각으로서 온도 감각, 시각, 미각 그리고 후각을 언급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의 신체에 가장 강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온도일 것입니다. 너무 춥거나 더우면, 인간의 신체는 가장 급격하게 반응합니다. 시각, 미각 그리고 후각의 발달은 두 번째 단계에서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본능과 지적 판단이 공히 이러한 감각이 발달할 때 영향을 끼칩니다. 영유아 발달의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슈타이너에 의하면 자아감각, 사고 감각, 언어 감각 그리고 청각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슈타이너가 청각을 사고와 언어 감각에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깊이 사고하는 사람일수록 청각이 발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청각은 외부의 현실을 지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언어 능력으로 되돌려주기 위한 토대로 작용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를 지배하는 것은 지금까지 소홀했던 대뇌의 기능과 능력입니다. 인간은 상기한 다섯 단계를 거쳐서 지혜로운 인간으로서 거듭날 수 있다는 게 슈타이너의 지론입니다.

 

27. 요약: 친애하는 S, 지금까지 우리는 영유아의 신체 및 심리 발달 그리고 두뇌 발달이 이후의 인간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에릭 에릭슨의 경우 0세에서 6세에 해당하는 영유아들의 심리적 발달의 차이점과 특성을 구명하는 데 주력했다면, 슈타이너는 인간의 기본적 감각의 발전 과정을 기술하며, 육체와 정신이 상호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촉각을 통해서 대상을 인식하고, 자신의 신경 기능을 활성화시킵니다. 생후 9개월이 된 영아는 생명 감각을 통해서 내면을 인식합니다. 이때 활발하게 기능하는 것은 자율 신경으로서 영유아는 쾌감과 불쾌감을 외부로 알립니다. 수치심과 공포감을 인지하는 것도 바로 생명 감각을 통해서입니다. 인간이 영유아의 시기에 기본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세 번째 감각은 운동 감각입니다. 인간의 신체 기능의 발달은 바로 정서의 발달과 비례해서 수행되고 있습니다, 네 번째 감각은 균형 감각입니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생후에 비로소 균형 감각을 익혀나갑니다. 이러한 균형 감각은 운동 감각의 토대가 없으면 발전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균형 감각을 발전시킴으로써 외부 세계와의 조화를 이루고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반듯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28.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물론 나는 현재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우울증 치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당신의 정신과 주치의는 많은 도움을 주리라고 믿습니다. 이를테면 감기 걸린 환자가 병에 적절한 감기약을 복용하면 차제에 완쾌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는 약물 치료를 통해서만 자신의 병을 치유하지는 못합니다. 약물 외에도 주어진 여건이 환자에게 우호적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남편, 가족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뒤따라야 당신의 심리적 질병은 호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 당신 삶의 구체적인 정황을 접하게 되면, 더욱 구체적인 말씀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문제는 딸의 교육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랑을 듬뿍 받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남편의 사랑과 자상한 보살핌이며, 주위에 있는 가족들의 도움이라고 생각됩니다. 당분간 부모가 딸의 교육을 담당하는 것도 한 가지 방편일 수 있습니다. 부디 당신에게 주어진 난관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끝)

 

 

 

 

 

참고 문헌

 

 

 

- 슈타이너, 루돌프: 교육은 치료다, 김성숙 역, 물병자리 2004.

 

- 슈타이너, 루돌프: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 교육, 이정희 역, 섬돌 2008.

 

- 이종영: 내면으로. 라깡, 융, 밀턴 에릭슨을 거쳐서, 울력 2012.

 

- 쾨니히, 카를: 치료 교육과 R. 슈타이너의 감각론, 정정순 역, 특수교육 2006.

 

- Erikson, Erik H.: Identity, Youth and Crisis. New York: Norton 1968.

 

- Erikson, Erik H.: Childhood and Society. New York 1993.

 

- Kugler, Walter (Hrsg.): Rudolf Steiner. Selbstzeugnisse. Autobiographische Dokumente. Steiner, Dornach 2007.

 

- Norbert Klatt: Theosophie und Anthroposophie. Neue Aspekte zu ihrer Geschichte. Göttingen 1993.

 

- Steiner, Rudolf: Anthroposophische Leitsätze. Der Erkenntnisweg der Anthroposophie 1924/25. http://www.anthroweb.info/rudolf-steiner-werke/ga26_leitsaetze.html

 

- Traub, Hartmut: Philosophie und Anthroposophie. Die philosophische Weltanschauung Rudolf Steiners – Grundlegung und Kritik. Kohlhammer, Stuttgart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