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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귄더로데의 '꿈 속의 키스'

필자 (匹子) 2021. 10. 31. 10:57

카롤리네 귄더로데 (Karoline von Günderrode, 1780 - 1806)는 독일 문학사에서 간간히 거론되는 시인입니다. 그미는 티안 (Tian)이라는 남자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하였습니다. 19세기 초에는 여성이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한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문학이 처음부터 폄훼당할까봐 필명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미의 삶은 1806년 라인 강가에서 자결한 사실을 제외한다면, 그다지 특이한 면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극단적인 첨예함은 시와 극작품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카롤리네는 폭정에 저항하다가 서서히 광증에 사로잡힌 프리드리히 횔덜린 (Friedrich Hölderlin, 1770 - 1843)에 대해 커다란 동정심을 드러내었으며, 창작에 임할 때 인간 평등 그리고 성의 문제를 과감하고도 집요하게 구명하였습니다.

 

 

카롤리네 귄더로데 (1780 - 1806)의 거의 유일한 초상화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시인의 자살을 언급하곤 합니다. 그미의 죽음은 시대가 그미의 문학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세 명의 남자에게 이용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남자는 클레멘스 브렌타노 (Clemens Brentano, 1776 - 1842)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자유분방한 시인이었는데, 동생 친구인 카롤리네가, “티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미와 하룻밤의 연인으로 접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클레멘스는 결국 예나 대학교수 부인이자, 작가인 소피 모로 (Sophie Mereau, 1770 - 1806)와 결혼합니다. 소피는 바람기가 많은 여인으로서, 프리드리히 슐레겔과 염문을 뿌린 바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알면서도, 클레멘스는 소피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완강하고도 남성적 기질을 지닌 카롤리네보다는, 프랑스의 부드러운 열정을 지닌 유부녀가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남자는 프리드리히 칼 폰 사비니 (Friedrich Carl von Savigny, 1779 - 1861)였습니다. 사비니는 나중에 프로이센의 대표적인 법학자로 부상하는 인물로서 클레멘스의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카롤리네는 사비니를 브렌타노의 집에서 만나서, 그를 열렬한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사비니 역시 카롤리네의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몇 달 후에 시인에게 결별을 선언합니다. 이는 클레멘스의 여동생, 군다 폰 브렌타노 (Gunda von Brentano, 1779 - 1863)와 결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비니는 어느 영리하지만 가난한 여성 시인을 택하는 대신, 명망 높은 브렌타노 집안의 딸과 혼사를 치루는 게 이득이 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세 번째 남자는 하이델베르크의 고대 연구가, 프리드리히 크로이처 (Friedrich Creuzer, 1771 - 1858)였습니다. 그는 스승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 13세 연상의, 은사의 딸과 결혼한 유부남이었습니다. 크로이처는 비밀리에 카롤리네와 만나 애정을 나누곤 했습니다만, 행여나 자신의 애정행각이 알려질까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크로이처의 아내는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었고, 이혼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크로이처는 마지막으로 카롤리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결별을 선언합니다. 1806년 카롤리네 귄더로데는 라인 강 근처에서 단도로 자신의 가슴을 찌른 뒤에 강물 아래로 떨어져 죽습니다.

 

어느 키스가 나의 삶의 기운을 불어넣었어요,/ 가슴속 가장 깊은 애타는 그리움을 달래주었어요./ 어둠이여, 다가와, 나를 내밀한 밤 속에 가두세요, /그래서 내 입술이 새로운 희열을 빨아들이도록.//

그러한 삶은 꿈속으로 그만 가라앉고 말았어요,/ 그래서 영원한 꿈을 바라보려고 나는 살아요,/ 다른 모든 기쁨의 광채를 경멸할 수 있어요,/ 오직 밤이 그렇게 달콤한 위안을 속삭이기에.//

낮은 사랑의 달콤한 희열을 느끼기엔 부족해요,/ 뽐내는 낮의 빛이 나를 몹시 아프게 하고,/ 태양의 열기는 나를 활활 태워버리고 말아요.//

그러니 지상의 태양빛 앞에서 눈 감으세요!/ 밤 속에 숨으세요, 밤은 당신의 갈망을 달래주고/ 레테 강의 서늘한 물길처럼 고통을 치유하니까요.

 

(Der Kuß im Traume von Karoline Günderrode: Es hat ein Kuß mir Leben eingehaucht,/ Gestillet meines Busens tiefstes Schmachten./ Komm, Dunkelheit! mich traulich zu umnachten,/ Daß neue Wonne meine Lippe saugt.// Im Träume war solch Leben eingehaucht,/ Drum leb’ ich ewig Träume zu betrachten,/ Kann aller andern Freuden Glanz verachten,/ Weil nur die Nacht so süßen Balsam haucht.// Der Tag ist karg an liebesüßen Wonnen,/ Es schmerzt mich seines Lichtes eitles Prangen/ Und mich verzehren seiner Sonne Gluthen.// Drum birg dich Aug’ dem Glanze irrd’scher Sonnen!/ Hüll’ dich in Nacht, sie stillet dein Verlangen/ Und heilt den Schmerz, wie Lethes kühle Fluthen.)

 

이 작품은 시인이 1804년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대신에, 자신을 저버린 애인, 프리드리히 폰 사비니에게 보낸 것입니다. 겉으로는 마치 감상적인 정조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몇 번 반복해서 읽으면, 우리는 작품 속에서 어떤 놀라운 비판적 가시를 추출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시는 시적 자아가 낮의 삶보다는 “꿈속의” 삶을 더욱 낫게 여긴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 “지상의 태양 빛” 그리고 “태양의 열기” 등은 시인에게는 추악하고 경멸스러운 대상입니다. 이것들은 시민 사회 내에서 전통적 가치만을 준수하는 “고루한 속물 (homo normalis)”들의 향일성 (向日性)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프리드리히 사비니와 같은 동시대 시민들의 권력 내지는 금력 지향주의를 비판하려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의 주제는 시인이 처하고 있는 사적인 정황 속에 차단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시인은 상기한 작품에서 낮 대신에 “”을 그리고 “지상의 태양빛” 대신에 “레테 강의 서늘한 물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인의 이러한 자세는 이른바 낭만주의가 표방하는 단순한 죽음 충동 내지 낭만적 동경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른 의미에 있어서 당시 초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은밀히 퍼져 나온, 이른바 “소외”라는 사회 현상과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산업 혁명 이후에 분화된 삶의 구조가 급기야 인간 삶의 소외라는 문제점을 출현하게 한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는 에른스트 피셔 (Ernst Fischer, 1899 - 1972)의 독일 낭만주의 연구에서 핵심적으로 거론된 바 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남성 사회 내의 기능주의와 오성중심주의가 무엇보다도 강화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영혼적인 것”, “감각적인 것” 그리고 “여성적인 것”은 더욱 철저하게 무시당하게 되었습니다. 시인은 바로 이 점을 예리하게 간파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꿈속의 키스” 그리고 “내밀한 밤”의 희열은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서의 소외 현상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며, 나아가 분화되지 않은 삶에 관한 대안으로서의 어떤 문학적 이미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