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정신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의리, 용기 그리고 희생정신 등이 이른바 군인 정신이라는 것이다. 핵폭탄이 터지기 직전이 아닌가? 나는 의리, 용기 그리고 희생정신을 중시하기보다는, 일단 삼십육계 줄행랑을 택하겠다.” (브레히트)
프랑스 남부의 항구 도시 라 시오타의 1년 시장 한복판에 살아 있는 군인 한 명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에 걸쳤던 청동 갑옷을 입고 있다. 그 군인은 베르뎅 전투 당시에 땅 밑에 파묻혔는데, 그 이후부터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간에- 오랫동안 버티고 서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이를 어느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비범한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그는 한마디로 동상 (銅像)이자, 인간이다. 결코 파괴되지 않는 존재로서의 그 군인은 현대 역사를 만드는 데 앞장 선 인물이다. 바로 이러한 군인 때문에 지금까지 알렉산더 대왕, 징기스칸, 시저, 루이 14세, 나폴레옹, 루덴도르프 등은 그들의 역사를 남겼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의 수하에 라 시오타의 군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 시오타의 군인은 권력자들에게 유용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에게 많은 이득을 안겨준다. 그런데 라 시오타의 군인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그들의 주인들로부터 얻은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그가 정복한 것은 자신의 재물이 아니다. 그가 죽음을 무릅쓰고 보호한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군인은 그 자체 목표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군인의 능력은 고통의 순간을 불굴의 의지로 견뎌내는 일이다. 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육체적 고통에 대해 그저 둔감한 군인을 치유하려면 어떠한 해결책이 있을까? 브레히트는 이에 대해 직접적인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병을 치유하려면 병의 원인 및 어떻게 해서 병에 걸렸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군인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성의 파괴의 희생자이다. 그러나 완전히 죄가 없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희생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를 자신의 고유한 능력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내의 전염병”은 하나의 우주적 현상이고, 일반적 병의 증상이기도 하다. 인간이 스스로 누군가에 의해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 - 바로 이것이 군인의 근본적인 착각이다.
다른 한편 군인은 오랫동안 버티고 서있는 자신의 능력을 언제나 남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런 직장을 지니지 못한 가장 (家長)”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남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청하고 있다. 이는 정말로 비극적인 아이러니가 아닌가? 왜냐하면 군인의 경우 자신의 가난이 하나의 가치로서 교묘히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권력자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정책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자는 직접 전쟁을 치르지 않는다. 전쟁을 치르는 자들은 다만 가난하고 힘없는 군인들이다. 그러니까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다른 사람이 거둔다고, 전쟁은 군인이 치르나, 전쟁의 이익을 차지하는 자들은 권력자들이다. 그럼에도 군인들은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만용을 오히려 하나의 미덕 내지는 능력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른바 미덕 그리고 능력 등을 수단으로, 어떠한 대가를 지불 받지 못한다. 그들이 얻는 것이라고는 자존심, 자만 그리고 용기의 허상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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