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스키피오의 꿈」: 이제 우리 『국가론』 제 6권 가운데 9장에서 29장에 실려 있는 「스키피오의 꿈」을 살펴보겠습니다. 작품은 『국가론』의 제 1권부터 제 5권에 비하면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고대 사람들의 우주론을 접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스키피오는 20년 전, 그러니까 기원전 149년에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때 그는 지금은 알제리에 있는 루미디아를 다스리는 마니시아 왕을 알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두 반째 스키피오는 그날 밤 늦게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양부인 첫 번째 스키피오가 출현하여 기이한 말을 전합니다. 즉 두 번째 스키피오는 앞으로 약 3년이 지나 카르타고를 쳐부수고, 이곳을 다스리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에스파냐의 고대 도시인 누만티아를 정벌하고, 에스파냐 전쟁을 종결시키리라고 합니다. 첫 번째 스키피오는 우주에 관해서 말을 잇습니다. 로마 제국은 우주에 비하면 점 하나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일곱 개의 혹성은 지구 주위를 회전하는데, 혹성의 궤적은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면서 천구의 화음을 들려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소리를 경청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귀는 우주의 빠른 회전 속도에서 빠져나오는 음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우주에 비해 너무나 경미하고, 다양한 기후로 분할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제 아무리 영웅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명성은 무가치하다고 합니다. 스스로 움직이는 것만이 영원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그치면 생명 또한 사라진다고 합니다.
20. 첫 번째 스키피오가 고찰한 우주: 첫 번째 스키피오의 영혼은 죽은 뒤에 피타고라스의 천문학 이론에 따라 은하수에 있는 항성의 천구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주를 내려다본 모습을 자신의 양자인 두 번째 스키피오에게 전합니다. 우주의 한 복판에는 지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원구라기보다는 원판 모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구 주위로 일곱 개의 행성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습니다. 맨 가장자리에는 원구 모양의 항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스키피오가 거주하는 지역 역시 바로 이 항성입니다.
일곱 행성은 지구로부터 제각기 다른 거리에서 지구 주위를 회전하고 있습니다. 지구로부터 가까운 것부터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달, 태양, 금성, 수성, 화성, 목성, 토성이 그것들입니다. (마크로비우스는 「스키피오의 꿈」의 주해서에서 이러한 배열을 이집트식이라고 명명하면서, 칼데아 식의 배열을 다음과 같이 첨부하였습니다. 즉 지구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행성은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그리고 토성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배열의 차이는 지구에서 관측한 각 행성의 이질적인 공전 주기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가장 가장자리에서 이러한 행성들을 싸안고 있는 것은 원구인 항성인데, 이것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일곱 행성은 원구와 반대편 방향으로 자전하고 있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천문학 이론에 의하면 행성들은 지구 주위를 공전하면서 거대한 굉음을 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 태어나면 이러한 음들을 듣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행성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인간의 귀가 이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상기한 방식으로 첫 번째 스키피오는 우주의 구조를 관망하며, 여기서 파생되는 천구의 화음을 전해 줍니다. 나중에 천구의 화음은 특히 음악과 천문학의 영역에서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이를테면 행성과 행성의 거리감은 옥타브 사이에 도사린 음으로 제각기 나누어졌으며, 이로써 천문학은 화성학의 기본 바탕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21. 첫 번째 스키피오가 고찰한 지구: 스키피오는 지구를 하나의 원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원판에는 세 개의 둥근 원의 영역이 위치하는데, 이 영역이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은 광활한 황야 아니면 넓은 대양으로 표기될 수 있습니다. 지구 위에는 점 하나가 있는데, 바로 이 점이 다름 아니라 로마 제국이라는 것입니다. 지구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북쪽에는 인간이, 서쪽에는 반-인간이, 남쪽에는 곁-인간이, 북쪽에는 인간과 반대되는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문화는 대양에 의해서 구분될 뿐 아니라, 기후에 의해서 구분되기도 합니다.
북쪽 사람들은 북풍의 영향을 받고, 동쪽 사람들은 떠오르는 태양의 영향을 받으며, 남쪽 사람들은 남풍의 영향을 받으며, 서쪽 사람들은 지는 해의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지구에는 북극과 남극이 있는데, 이 두 영역은 거대한 혁대에 의해 묶여 있다고 합니다. 남쪽 사람은 북쪽의 인간을 알지 못하며, 북쪽에서 바라보면 남쪽 사람들은 거꾸로 걸어가는 것처럼 뒤집어 보인다고 합니다. 요약하건대 스키피오는 지구를 원판으로 고찰하였습니다. 나중에 이를 뒤집은 사람은 다름 아니라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였습니다.
라파엘로가 1501년에 그린 그림. 가운데에 두 번째 스키피오가 깊이 잠들어 있는데, 왼쪽에는 "미덕 Virtu"이 오른쪽에는 "향락 voluptas"이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 두 번째 스키피오는 무엇을 선택할까?
22.『국가론』과 관련하여 「스키피오의 꿈」이 지니는 의미: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키케로는 자신의 책 『국가론』의 마지막 부분에 일견 사적으로 보이는 두 번째 스키피오의 꿈 이야기를 실었을까요? 스키피오가 꿈에서 고찰한 우주는 무엇이며, 이것이 국가를 다스리는 문제와 과연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국가를 훌륭하게 다스리는 인간의 영혼은 천구에 머물면서 영생을 누린다는 사실입니다. 기실 키케로는 책의 서두에서 인간의 두 가지 유형의 삶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도덕적 완전성을 추구하는 삶이며, 다른 하나는 “향락 voluptas” 혹은 “무위 otium”에 의해 소진되는 삶입니다.
키케로의 견해에 의하면 공동체를 위해서는 후자의 삶보다는 전자의 삶이 더욱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공동체를 위해서 자신을 철저하게 희생할 줄 아는 자이어야 합니다. 나라를 훌륭하게 다스리고,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도모한 정치가는 죽은 뒤에도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남는다는 게 키케로의 지론이었습니다.
이로써 키케로는 에피쿠로스의 향락을 추구하는 “명상적 삶 vita contemplativa”보다는 국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하는 삶 vita activa”을 더욱 중요한 것으로 강조하였습니다. 「스키피오의 꿈」은 예술적으로도 많이 형상화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르네상스의 천재화가, 라파엘로는 회화를 통해서 어떠한 삶이 진정한 영웅의 행적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모차르트 역시 1772년에 이에 관한 오페라를 남겼습니다.
23. 소크라테스와 키케로의 문헌: 소크라테스와 키케로는 제각기 최상의 국가에 관해서 모든 것을 대화체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작품에서 논의를 개진하는 톤은 서로 다릅니다. 가령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 사이의 문답이라든가 서로의 견해를 대비시킴으로써 보다 정확한 해답을 도출해내려고 했다면, 키케로는 친구와 친구 사이의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논의를 이끌어나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키케로의 문헌은 선생과 제자 사이의 철학적 대화가 아니라, 정치가와 무인 사이의 논쟁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플라톤이 국가에 관한 사항을 함께 언급하고, 여러 가지의 사항을 내세우면서 국가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시도했다면, 키케로는 최상의 국가에 관한 설계라든가 이에 도달하기 위한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방향 설정을 담은 게 아니라,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스키피오의 꿈”과 같은 기이한 신화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키케로가 스키피오의 꿈을 재구성한 까닭은 당시 그가 처했던 현실적 상황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가 하는 점은 은근히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실제로 첫 번째 스키피오는 자신의 양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로마 제국은 우주의 차원에서 고찰하면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하며, 인간의 명예 역시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사항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즉 정치적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한 인간의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어떤 불세출의 영웅이 내려다보는 우주론적인 광대무변의 시각일 수 있다는 사항 말입니다.
참고 문헌
- 키케로: 키케로의 의무론. 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허승일 역, 서광사 1997.
- 키케로, 마르쿠스 툴리우스: 국가론, 김창성 역, 한길사 2007.
- Aristoteles: Politik: Schriften zur Staatstheorie, Stuttgart 1998.
- Cicero: De re publica, Vom Staat, Lateinisch/ Deutsch, Stuttgart 2013.
- Cicero: De re publica: Kommentar. Vollständige Ausgabe (Latein) (Latein) Taschenbuch, Münster 2010.
- Jens, Walter (hrsg.): Kindlers neues Literaturlexikon, München 1982.
- http://de.wikipedia.org/wiki/Somnium_Scipio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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