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고대 문헌

서로박: 핀다로스의 승리가

필자 (匹子) 2021. 4. 4. 09:39

(1) 신과 영웅에 대한 찬양: 고대 그리스에서는 스포츠 경기가 빈번하게 개최되었습니다. 주로 올림피아, 피티아, 이스트미엔 등의 지역에서 경기가 개최되었는데, 대회를 통해서 용맹한 인재를 등용되었습니다. 이때 승리한 사람은 문무를 막론한 중요한 직책을 획득하곤 하였지요. 이와 관련하여 핀다로스 (BC. 522/ 518 - 446?)는 『승리가 (μελή)』를 통해서 경기 대회에서 승리한 영웅을 칭송하였습니다. 

 

그는 찬가, 디티람보스, 소녀의 노래, 윤무의 노래, 슬픔의 노래 등을 집필하였는데, 이러한 시편들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고, 오로지 『승리가 (μελή)』만이 오늘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디티람보스 (διθύραμβος)”는 “거친 열광의”라는 의미를 지닌 합창시를 가리킵니다. 이는 디오니소스 신을 경배하기 위해서 집필되었는데, 그리스 비극의 초기 형태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승리가 (Επινίκια)”는 총 45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다섯 편이 위작이라고 하지만, 오늘날 전혀 생략되지 않은 채 전해 내려오는 연작시입니다.

 

(2) 고대 그리스 시인의 두 부류: 그리스 시인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그 하나는 어느 지역에 은둔하면서 자신의 시세계를 갈고 닦는 사람들입니다. 사포 Sappho라든가 아르카이오스 등이 첫 번째 부류에 속합니다. 다른 하나는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글을 써주는 자들입니다. 가령 핀다로스, 시모니데스 Simonides, 바킬리데스 Bakchylides, 아르히로호스 Archilochos 등이 두 번째 부류에 속합니다. 이들은 사랑과 미움, 찬가와 조롱을 직접적으로 문학 작품에 담았습니다. 

 

예컨대 아르히로호스는 풍자와 비아냥거림의 시를 즐겨 썼는데, 그 때문에 스파르타에서 추방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담이지만, 독일어의 똥구멍 (Arschloch)은 아르히로호스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핀다로스의 시편은 오랜 시간에 걸쳐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 시 형식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3) 핀다로스의 후세의 영향: 핀다로스의 작품은 오랫동안 망각되었다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활발하게 수용되었습니다. 가령 종교개혁자 츠빙글리 Zwingli는 핀다로스의 도덕을 찬양하였고, 멜란히톤 (Melanchton)은 그의 시를 라틴어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칠성파 시인들이 핀다로스 시 형식을 다시 수용하였습니다. 계몽주의자들은 핀다로스를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볼테르에 의하면 분명한 묘사 대신에, “휘황찬란한 어투로 독자로 하여금 그저 경탄에 사로잡히게” 했기 때문입니다. 젊은 괴테는 핀다로스에게서 질풍과 노도의 거대한 호흡을 찾으려 했으며, 횔덜린의 찬가에서는 핀다로스의 흔적이 여실히 배어나오고 있습니다.

 

(4) 스포츠 경기의 종교적 사회적 측면: 올림피아와 네메아 경기장에서 시인은 하늘의 신 제우스를 찬양합니다. 이스트모스 경기장에서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경배를 드리고, 델피 경기장에서는 빛과 예술의 신 아폴론을 찬양합니다. 그리스인들은 달리기, 넓이 뛰기,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레슬링 경기에서 오로지 우승한 자만 찬양하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 선수, 세 번째 선수도 신이 낳은 위대한 영웅이라는 것입니다. 승리는 개인의 업적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신들의 은총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에 대한 축제의 일환으로 스포츠 경기를 활성화시켰던 것입니다. 

 

고대의 관료주의 사회에서는 경기에 승리한 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정신적 지도자 내지 정치가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올림피아 경기의 승리자가 전선에서 선봉을 맡는 경우는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전통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출신 지역을 중시하였고, 승리를 통해서 명예와 국가의 부를 약간 차지하는 데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직업 육상선수가 나타나는가 하면, 부자들 가운데 개별적으로 값비싼 경기장을 건설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트레이너, 자키, 전차 몰이꾼과 같은 직업이 생겨났습니다. 이와 상응하여 나타난 게 영웅에 대한 찬가입니다. 도시국가 사람들은 시인들로 하여금 고향의 명예와 승리를 문학적으로 표현한 시인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로써 직업 시인이 생겨나게 됩니다.

 

(5) 핀다로스 문학의 개인적 측면: 그렇지만 핀다로스는 부탁하는 사람들의 요구사항 외에도 자신의 발언을 첨가했습니다. 그에게 글을 써달라고 부탁한 자들은 테베 출신의 사람들, 아이기나 출신의 남자들, 아테네 출신의 추방당한 관료인 메가클레스, 서쪽 식민지의 영주들이었습니다. 핀다로스는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자신의 과업에 관해서도 부분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비록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노래를 바치지만, 핀다로스는 작품을 통해서 나름대로 마음속에 품은 도덕을 전파하려 했습니다. 작품 속에는 개인적 열망, 따뜻한 동정심 그리고 가벼운 유머 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6) 영웅 히에론과 그의 배경: 특히 시라쿠사의 정치가, 히에론 (Hieron)이 핀다로스에게 작품을 부탁하였습니다. 히에론은 기원전 476년에 올림피아 경기에서 경마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사실은 문학 작품으로 남겨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히에론의 동생 겔론 Gelon, 두 번째 동생 폴리찰로스 Polyzalos 등이 그리스 영웅으로서 다루어졌습니다. 시인은 신들의 찬란한 후광을 바탕으로 이러한 영웅들을 찬미했습니다. 가령 아폴론의 음에 맞추어 날아가는 독수리, 지하에서 불을 품어내는 괴물 위로 우뚝 솟은 제우스의 산 등이 시적 배경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핀다로스의 작품을 통해서 은밀히 드러나는 것은 놀랍게도 고대의 풍경이며 고대의 역사입니다. 고대의 현실이라는 찬란한 사진틀 속에 히에론과 같은 영웅들이 착석했다고나 할까요? 물론 동시대 사람들이 핀다로스를 제대로 이해했을 리 만무합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직업 시인들이 히에론으로부터 자신의 영웅담을 집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