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또 다른 이유에서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그것은 장교들 사이의 경쟁 심리 때문이었다. 장교들은 알키비아데스의 명성에 대해 질투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장교들은 소크라테스의 전쟁 공로를 부추기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역시 은사의 용맹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위대한 관찰자는 아울러 위대한 실천가일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논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한다. 주인공은 신뢰할만한 아내, 크산티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자신은 조소의 대상이 되거나,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아내 앞에서 위선자로 행동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크산티페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친구 안티스테네스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더 이상 침묵을 지키지 못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고약한 소문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즉 소크라테스가 혼란 속에서 적진으로 도망쳤다는 게 바로 그 소문이었다. 이 소문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다음의 사항을 깨닫게 한다. 만약 주인공이 친구에게 사실을 알렸다면, 친구들은 이를 소크라테스에 대한 모함으로 이용할 게 틀림없었을 것이다. 이때 크산티페가 등장함으로써 주인공은 다행히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용기는 어디서 발견될 수 있는가? 만인 앞에서 웃음거리가 될지 못하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주인공은 놀랍게도 진리의 편에 서 있다.
소크라테스를 구박하는 크산티페
5.
소크라테스는 작품 속에서 어떠한 약점을 지니고 있는가? 그의 약점은 비겁함이 아니다. 주인공이 일견 비겁하게 행동하는 까닭은 남의 이익을 위한 불필요한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는 자신이 공개적으로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만약에 도주하다가 가시에 찔렸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그들은 얼마나 소크라테스를 비웃을 것인가? 따라서 주인공의 약점은 자신이 공개적으로 조롱당하는 데 대한 두려움과 관련된다. 또 한 가지 지적되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즉 소크라테스의 처 크산티페는 언쟁을 즐기는 악처가 아니라는 점이다. 소크라테스는 아내를 존중하고 있다. 또한 그는 아내의 도움으로 거짓 용기 (죽음을 불사하며 전쟁터에서 싸우려는 의지) 대신에 진정한 용기를 찾는다. 여기서 크산티페는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서 산파 역할을 맡고 있다. 왜냐하면 그미는 남편을 저버리는 대신에 그로 하여금 쓰라린 진실을 토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은 크산티페의 긍정적인 여성상이다. 그미는 아궁이에 쪼그려 앉아, “뺨을 부풀려 바람을 불어”댄다. 그미는 의심이 많고, 자주 노하며, 남편에 대해 항상 불만이다. 그렇지만 크산티페는 남편 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의 불만 그리고 남편의 약점 등을 한 번도 털어놓지 않았다. 소크라테스가 부자 집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아와 식탁에 앉았을 때, 빵과 기름 묻은 고기 조각이 놓여있지 않는 날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아무런 물질적 대가를 받지 않고, 다만 가르치는 내용의 열정 때문에 제자들을 가르쳤음을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소화할 수 없는 낯선 지식을 마음대로 집어넣지는 않았다. 오히려 제자들이 스스로 형성한 사고로부터 스스로 벗어나라고 그는 가르쳤다. 말하자면 “자신의 선입견으로부터의 일탈 (Entbindung)”이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었다. 이는 이른바 주인공의 산파법과 결코 다르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산파의 아들이었으며, 모든 무지의 자궁으로부터 인간을 일탈시키려고 해쓰지 않았던가?
소크라테스에 비하면 크산티페는 학력을 지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미는 위대한 철학자의 가장 훌륭한 친구이다. 크산티페는 주인공의 육체적 편안함 뿐 아니라, 그의 정신적 편안함을 도모하는 사람이다. 발을 씻겨주고, 가시를 빼주는 사람 역시 크산티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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