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사노바의 회고록: 지아코모 카사노바 (1725 – 1798)의 『회고록Mémoires』은 1790년에 프랑스어로 간행되었는데, 19세기 초에의 시점에는 전 유럽에 소개되었습니다. 독일어로 소개된 시점은 1822년에서 1828년 사이였는데, 다양한 판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카사노바는 주지하다시피 천하의 바람둥이로서 1734년에서 1774년까지 약 40년 동안 수많은 직업을 행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도저히 실행할 수 없을 정도의 방탕한 모험을 즐겼습니다. 약 65세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 그는 보헤미안의 어느 성에 머물면서 지나간 과거의 삶을 회고록에 기술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서술한 내용은 그야말로 솔직담백하게 기술한 방랑하는 자신의 편력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자전기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변명 내지 은폐 등으로 이루어진 데 비하면, 카사노바의 회고록에는 거짓이라고는 추호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회고록은 서양의 문헌에서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2. 카사노바의 역정: 카사노바는 65세의 나이에 보헤미아 지역의 성에서 조용히 고독하게 살게 됩니다. 이제 나이 들어서 더 이상 열정도, 힘도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체념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서술하기로 결심합니다. 이야기는 할머니에 의해 자란 배우 지망생의 아이가 8세가 되었을 때 파도바에 있는 학교의 기숙사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어린 시절 그는 매우 병약했습니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마음은 자신의 강인한 의지로 발전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나중에 베네치아 감옥을 탈출해야 한다는 의지로 돌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이야기는 주인공이 약 50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 베네치아 공국의 허가를 받고 출옥하여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말하자면 카사노바는 장년의 나이에 사기와 횡령이라는 죄로 베네치아의 악명 높은 납골 감방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에 걸친 그의 탈옥 시도로 인하여 수감 생활은 계속 연장됩니다. 그리하여 풍운아, 카사노바는 무려 18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원래 카사노바는 회고록의 마지막 시점을 65세의 나이에 해당하는 1797년으로 설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뼈아픈 성찰 끝에 그는 말년의 고독과 참담한 삶에 관한 이야기를 생략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3. 파란만장한 방랑 그리고 엽색행각 (1): 카사노바는 전 유럽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의 행적은 마치 로코코 시대의 미로 속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쥐 한 마리를 방불케 합니다. 카사노바는 어린 시절부터 몹시 명민한 두뇌를 지니고 있었으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학위 과정을 끝내고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카사노바는 처음에 로마에서 추기경의 비서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떤 우여곡절로 인하여 자신의 직장을 잃게 된 뒤에는 여러 직업을 전전합니다. 이를테면 카사노바는 베네치아 군대에 입대하여 열병식에서 멋진 군인의 예식을 행하기도 하고, 어느 극단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합니다. 고향의 상원의원의 도움으로 그 아래에서 허드렛일을 닥치는 대로 행합니다. 카사노바는 상원의원과 함께 때로는 여인을 유혹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박판에서 교묘한 술수로 거액을 갈취하기도 합니다.
4. 파란만장한 방랑 그리고 엽색행각 (2): 그밖에 파리의 살롱에서 시인으로 자처하면서 여성의 관심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는 연금술에 관한 놀라운 지식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를 탁월한 언변으로 소개하여 귀족들의 환심을 사곤 했습니다. 그의 일과는 바이올린 연주, 춤, 도박 그리고 여성들과의 밀회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사업에 있어서 놀라운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카사노바는 베네치아 공국의 감방에 수감되는가 하면, 프랑스 왕의 로토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할 정도였습니다.
1755년 7월 26일 카사노바는 이른바 성스러운 종교를 비아냥거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습니다. 5개월 후에 그는 두 번째 탈옥에 성공합니다. 그가 어떻게 악명 높은 감옥에서 탈출했을까요? 카사노바는 자신의 탈옥에 관하여 먼 훗날에 책으로 출간하게 하였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신용담보의 대출로 사기 행각을 벌리고, 스웨덴의 심령학자 옆에서 부자들로부터 돈을 빼돌리기도 했습니다. 1759년 파리를 떠나, 남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카사노바는 파란만장한 삶의 정점에 처해 있었습니다. 1764년 영국에 머물 때, 그는 자신의 삶에 어떤 전환점이 도래하게 된다는 것을 직감합니다.
5. 유럽 문화사의 풍경화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들: 카사노바의 회고록은 문화사의 측면에서 고찰할 때 유익한 자료를 전해줍니다. 이러한 자료들은 프랑스 혁명 이전의 시기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 많은 도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카사노바의 문헌은 당시 경제적으로 독립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삶을 조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베네치아는 귀족의 시각에서 고찰할 때 유럽에서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상, 서서히 쇠락하는 상류층의 소비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찬란한 베네치아에서는 축제가 끊임없이 개최되고, 연극 공연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매매춘은 사회의 모든 계층 사람들이 관여하는 사업이었습니다.
그밖에 카사노바는 자신의 체험담을 통해서 중소도시의 정치적 현안들, 술집의 분위기를 묘사했습니다. 카사노바가 서술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칼뱅주의를 표방하면서 돈을 벌려고 애를 쓰는 제네바의 상인들, 프랑스의 휴양지에서 지루하고 따분한 생활을 보내는 토박이들, 고리타분하고 허례허식적인 독일 남부의 제후들도 있습니다. 그가 조우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수많은 지식인 뿐 아니라, 배우, 가수, 궁정 고문관, 상류층 남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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