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감각적 향유를 즐기고 행한다는 것 - 그것은: 자고로 인간은 누구든 간에 장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살인자의 내면에는 자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자리하며, 도덕군자의 내면에는 이기적 탐욕이 은밀하게 도사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별 인간을 선과 악이라는 잣대로 매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카사노바는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감각적 향유를 즐기고 행한다는 것 – 그것은 내 모든 삶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어떠한 무엇도 내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볼테르가 절대적 신앙의 권위주의에 대항하여 평생 투쟁하였듯이, 카사노바는 자신의 감각주의를 용납하지 않는 모든 심령주의의 사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물론 그가 두 세 번에 걸쳐 자신을 거부하는 여성을 끝까지 괴롭히면서 성폭력을 행한 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매혹적인 여성에 대한 자신의 유혹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카사노바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그 자리를 훌훌 떠나곤 했습니다.
7. 카사노바는 냉혈한 동 쥐앙 그리고 변태성욕자 사드와는 분명히 다르다.: 상기한 사항을 고려할 때 우리는 그의 방종한 삶 자체만 고려하면서 그를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단죄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의 애정 행각은 그를 사랑했던 한 여성의 입장에서 고찰하면 “난잡한 짓거리의 배신”으로 매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카사노바가 동 쥐앙이라든가 동시대인이었던 젊은 사드와는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동 쥐앙은 종교 개혁을 반대하는 안티크리스트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으며, 여성의 몸을 취한 다음 매정하게 그미를 저버리는 냉혈한이었습니다. 마르키 드 사드는 온갖 변태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였습니다. 이들에 반해서 카사노바는 어디서도 성도착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한 번도 냉소적 태도를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여성들에게 거의 폭력을 행하지도 않았고 성적으로 음험함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비록 자신에게 몸과 마음을 바친 정인들과 헤어졌지만, 자주 그들을 기억하면서 정인들의 불행한 삶을 안쓰럽게 여기곤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힘들게 사는 옛 애인과 아이들을 위해 경제적 도움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8. 최상의 쾌락 추구: 카사노바는 아무런 조건 없이 본능적으로 여성들을 사랑했습니다. 그에게는 여성들을 유혹하여 그들의 성을 탐함으로써 최상의 쾌락을 맛보려 했던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카사노바는 다양한 계층의 섹스 파트너를 수없이 교체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와중에서 그의 『회고록』은 이야기의 배경, 다시 말해 문화적 측면에서 아무런 제한 없이 18세기 유럽 전역의 문화사적 내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 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카사노바가 지속적으로 갈구한 것이 놀랍게도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완전한 조화를 이룬 사랑이었다는 사항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사랑을 갈구하고 실제 현실에서 소극적으로 성 생활을 행하는 데 비해, 카사노바는 실제로 수많은 난교 (亂交)를 행하면서 사랑을 갈구했던 것입니다. 이에 관한 예를 우리는 특히 프로방스의 고상한 처녀 앙리에, 로마 여인 루크레치아, 여배우 테레사, C. C.라는 이름을 지닌 고혹적인 처녀 등과의 만남과 사랑에서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9. 카사노바는 성범죄자인가, 아니면 여성을 애호하는 남창인가?: 심지어 카사노바는 M. M. 이라는 이름을 지닌 수녀의 몸을 격렬하게 탐하여, 그미로 하여금 신앙심을 송두리째 저버리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카사노바는 네덜란드의 은행장의 딸 에스터를 유혹하였고, 탁월한 두뇌를 자랑하는 XCV 양과 저녁 무렵부터 동이 틀 때까지 살을 섞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회고록에서 “경천동지의 방아 찧기”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는 여성들과 얼마나 오래 성행위를 행할 수 있는지를 놓고 어느 바람둥이와 내기를 벌인 적도 있었습니다.
카사노바는 심지어 로마에 거주하는 여인인 루크레치아의 딸, 레오닐다와도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는데, 이로써 모녀를 차례로 범했다는 점에서 패륜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카사노바의 밀회의 수는 서서히 줄어듭니다. “이제 축복받은 순간들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에 관한 귀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마 죽음만이 이러한 기억으로부터 혼란스러운 나를 완전히 해방시켜줄 것입니다.” 이 모든 사랑의 체험은 주인공에게 온갖 즐거움과 탐닉을 모조리 안겨주었으며, 이로 인하여 주어진 삶에서 조우하는 괴로움과 슬픔을 때로는 일시적으로 때로는 오랫동안 가시게 해주었다고 카사노바는 술회하였습니다.
10. 자유로운 정신, 혹은 세계 시민으로서의 카사노바: 카사노바의 『회고록』은 방해당하지 않는 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루소, 보마르셰 그리고 레티프 드 라 브르톤의 문학 작품과 근친합니다. 카사노바의 일대기는 건강한 성을 예찬하고,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성과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레티프의 문학적 경향과 매우 유사합니다. 나아가 작품은 문학사의 측면에서 고찰할 때 에스파냐의 “악한 소설Schelmenroman” 속의 피카레스크의 특성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피카레스크의 특성이란 말하자면 “반-영웅주의”, “반-이상주의” 그리고 “우연성의 강조” 등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카사노바라는 인물은 어쩌면 시민사회에 속하지 않는 국외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카사노바는 주어진 관습 도덕 그리고 법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 내지 “세계시민”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카사노바는 앙시엥 레짐의 시대에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거부하고 수미일관 자신의 사상과 감정에 충실하게 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볼테르가 평생 견지했던 “자유로운 정신” 그리고 돈과 권력을 무조건적으로 맹신하지 않은 “세계 시민”의 면모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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