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브레히트의 코이너씨의 이야기 (3)

필자 (匹子) 2019. 1. 25. 10:53

친애하는 M, 이제 개별 작품에 관해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1) K씨와 자연:

 

브레히트는 자연 풍경을 몹시 좋아했습니다. 집주위의 아름다운 백양나무들을 관망하기를 매우 즐겼지요. 이때 누군가 “나무를 보려면, 왜 야외로 차를 타고 나가지 않는가?”하고 묻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코이너씨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나는 집에서 나올 때, 나무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브레히트는 자신이 일하면서, 아울러 즐기기를 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삭막한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휴식 시간에 인적이 드문 자연을 찾곤 합니다. 인간과 자연은 브레히트에 의하면 상호 보조적이며, 서로 동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자연에는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게 브레히트의 지론이었습니다. 만약 사람이 없으면, 자연은 그야말로 공허한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자연과 노동을 구분해서 고찰합니다.

 

가령 일주일 내내 먼지 날리는 복잡한 대도시에서 일하다가, 인적이 드문 시골의 산골짜기를 찾는 현대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브레히트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의 작업실에는 항상 꽃이 활짝 피어있어야 하고, 아름다운 여성이 자신의 집필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업 공간은 거주지와 마찬가지로 넓고, 아름다워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인적이 드문 자연 속에서 오랫동안 빈둥거리는 행위는 브레히트에게는 한마디로 “병적”으로 비쳤습니다. 이제 당신은 어째서 브레히트가 작업실을 드나들 때마다 아름다운 나무를 관망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2) 신뢰성:

 

친애하는 M, 이것은 인간관계에 관한 질서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친구는 K씨를 위해서 외투를 빌려줍니다. 그것도 타인과의 약속을 파기하면서, K씨와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그런데 K씨는 친구와 만나기 몇 시간 전에 외투가 필요 없게 된 것을 알아차립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K씨는 친구를 만나서 외투를 받아옵니다. 만약 K씨가 “외투가 이제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에 만나지 말자.” 하고 친구에게 말한다면, 친구는 얼마나 실망하겠습니까?

 

이러한 이야기는 브레히트의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연상시킵니다. “브레히트는 50년대 초에 동독의 운터덴 린덴 가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에 귀했던 아스파라거스와 수송아지 고기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테이블에 놓인 것은 양이 적은, 그것도 머리 없고 딱딱한 아스파라거스였지요. 브레히트는 불만에 가득 차서, 웨이터에게 항의록을 요구했습니다. 원래 유럽에는 식당마다 항의록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 책에 기재 사항이 없는 식당일수록, 유명한 음식점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웨이터는 그 책 대신에 식당 주인을 데리고 왔지요. 식당 주인은 즉시 사과하면서, 머리 달린 풍성한 아스파라거스를 갖다 주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에 브레히트는 다시 항의록을 요구했습니다. ‘맛이 없었나요?’ 하고 웨이터가 물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훌륭했소. 그러나 내가 맛있는 요리를 얻었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이 맨 처음의 나쁜 그 아스파라거스 요리를 얻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책을 갖다 주세요’. 그리고 난 뒤에 브레히트는 거기다 무언가 적었다고 합니다.”

 

(3) 손님 접대:

 

이것은 손님과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로서 앞에서 언급한 「신뢰성」의 주제와 비슷합니다. K씨는 손님으로 초대받았을 때, 그곳의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거기에 적응하며 지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주인에 의해서 꾸며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곳의 나쁜 (불편한?) 환경으로 인하여 K씨의 어떤 계획이 지장을 받게 될 경우는 예외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K씨가 입장을 바꾸어 손님을 맞이할 경우에는 전혀 달리 행동합니다. 그는 식탁의 배열 등 세부적 사항에 대해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친애하는 M, 여기서 우리는 전자를 국민들의 태도로, 후자를 위정자의 태도로 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들은 사회에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손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주인에 의해 극진히 대접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모든 정책, 위정자에 의해서 새로이 설정된 모든 환경 등을 처음부터 무조건 배격하고 이를 거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이로 인해서 그들의 중요한 일이 방해 당한다면 이는 예외이지요. 위정자는 이와는 반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국민들의 취향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