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브레히트의 코이너씨의 이야기 (4)

필자 (匹子) 2019. 1. 25. 10:54

(4) 현자의 방식은 그 자세에 있다:

 

K씨는 어느 철학 교수를 만나 “지혜”에 관해서 듣고 있습니다. 이때 K씨는 대꾸합니다. “당신은 불편하게 앉아 있고, 불편하게 말하며, 불편하게 생각하는군요.” 그러자 철학 교수는 화내면서 말합니다. 지금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내용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이에 대해 K씨는 철학자의 자세가 불편하기 때문에, 스스로 그의 사고에 관해 전혀 알고 싶지 않으며, 그의 목표 역시 흥미롭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친애하는 M, 이는 무엇을 말할까요? 철학 교수는 이른바 산만한 교수로서, 자신의 사고에 함몰해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일상생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머릿속에서 자아낸 추상적 관념론을 논리적으로 밝히려고 시도합니다. 그렇기에 강단 철학자의 태도는 불편하게 보입니다. 강단 철학자의 사고는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는 무엇입니다. 그것이 도출해내는 결론은 해명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무엇입니다. 그 철학자는 주어진 현실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과는 무관한 상아탑만을 쌓아올리고 있습니다. 이로써 드러나는 것은 철학자 자신이 현실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할 게 없다는 사실입니다.

 

(5) K씨가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

 

K씨는 한 사람을 사랑할 때, 무슨 일을 하겠는가? 하고 질문을 받습니다. K씨는 그 사람에 대한 상(像)을 만들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상과 닮도록 노력한다고 말합니다. “상이 실물과 닮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답변하는 게 통례이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K씨의 입에서 예기치 못한 대답이 튀어나온 것입니다.

 

브레히트는 사랑을 소유의 관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공동의 사고를 함께 나누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누가 누구에게 속한다.”라는 애정의 관계 설정은 브레히트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어느 누구에게도 소유당할 수 없으며, 소유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브레히트에게는 시민주의의 결혼 제도는 별반 의미가 없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타인을 감정적으로 소유하려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친애하는 M, 임은 소유당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떻게 우리가 임을 소유할 수 있단 말입니까? 브레히트에 의하면 임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데, 우리가 임이 마치 타인, 매력적인 이성 속에 도사리고 있다고 착각한다고 합니다. 브레히트에 의하면 사랑의 감정은 기껏해야 함께 무언가를 창조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할 뿐이라고 합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임을 소유하기 위해서 어리석게 발버둥치고, 질투심에 사로잡히곤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브레히트는 사랑을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의 능력으로써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기술이다. Liebe ist die Kunst, etwas zu produzieren mit den Fähigkeiten des anderen.”

 

(6) 독창성:

 

친애하는 M, 인간이 공유의 존재라면, 사고 역시 사유물일 수 없습니다. 사고는 여러 사람의 협동적 작업으로 개진될 수도 있습니다. 브레히트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방대한 책을 쓸 수 있다고 자랑합니다. K씨는 이에 대해 안타까워합니다. 장자는 나이 들어서 10만 단어로 이루어진 책을 집필하였는데, 그 가운데 90%가 인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전해집니다.

 

친애하는 M, 다른 책을 맹목적으로 베껴 쓰거나 인용하는 태도는 그 자체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선대의 사람들이 남긴 문헌을 무시하는 처사가 바람직할까요? 썩은 머리와 빈약한 상상력에만 의존하여, 마치 자신의 작업이 과거에 한 번도 거론되지 않은 것이라고 쾌재를 부르는 태도가 올바른 것일까요? 가령 방대한 장편 소설을 집필한답시고 수개월 칩거하면서, 어떠한 다른 책도 참고하지 않은 채 자판기만을 두드리는 어느 어리석은 소설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특히 인용은 다른 맥락에서 어떤 창조적인 효과를 발휘할 때도 있습니다. 가령 똑같은 명제라고 하더라도, 다른 맥락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드러내곤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몇몇 표현과 몇몇 유사한 문장만을 찾아내어, “누가 누구의 글을 표절했다.”고 시비를 걸곤 합니다.

 

브레히트는 이러한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해서 아예 처음부터 “누구의 책을 참고했다.”고 공언했습니다. 나아가 브레히트는 자신의 극작품 집필을 자동차 제조에 비유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여러 도구 그리고 수많은 부속물 등을 사용하여, 공동으로 제작하는 것을 자동차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친애하는 M, 독창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어떠한 것일까요?

 

(7) 성공:

 

어느 여배우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누군가 말합니다. “그미는 예쁘기 때문에 성공을 거두었어.” 이때 K씨는 대꾸합니다. “그미는 성공했기 때문에 예뻐.” 여자의 아름다움은 지극히 주관적 취향에 의해서 인지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눈에 안경이다.”라는 속담이 생겨나지 않았습니까? 독일에 가면, 지저분하게 보이는 동양인의 까만 머리는 유럽 인들에게 이국적 아름다움을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마찬가지로 젊은 흑인 여성의 피부는 윤기로 인하여 눈이 부십니다. 한국 여자들은 하얀 피부를 동경하여, 여름에 파라솔을 쓰고 다니지만, 북구의 여성들은 검게 살결을 거슬리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각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주관적 취향은 인간의 선입견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성공한 사람의 모습은 누구든 아름답게 보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여자는 속된 말로 임의 소피보는 모습조차도 아름답게 비치지요. ^^ 친애하는 M,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외양은 인간을 현혹시킵니다. (Der Schein trügt)”. 외모란 겉껍질에 불과하다는 것을, 진정한 아름다움의 보석은 마음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인이든 간에, 모두 몸속에 붉은 피가 흐른다는 것을. 그래서 중국의 현인들은 항상 “무감어수 감어인 無鑑於水, 鑑於人”을 강조했습니다. 물에 비친 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 타인의 마음을 통해서 판단하라. 그게 자신이든 사물이든 간에...

 

(8) 고대: 브레히트는 작위적인 형식을 강조하다가 주어진 현실을 왜곡하는 예술적 자세를 자주 비판했습니다. 예술가가 형식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소재를 망치게 되는 법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다른 작품 「형식과 소재」에서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고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K씨는 어느 비구상의 그림을 대합니다. 몇 개의 물병이 그려진 그림입니다. K씨는 누가 그렸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림은 실물과는 전혀 다르게 그려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핍진 (逼真)하지 않습니다. 가령 우리는 그림 속의 물병이 물을 따라 마시는 그릇이라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힘듭니다. 그만큼 대상이 왜곡되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K씨에 의하면 시민주의의 기교 내지 작위성을 담은 야만의 문화라고 합니다. K씨가 “고대는 정말 야만적인 시대”라고 논평했을 때, 누군가 룬트스트룀이라는 현대 화가의 작품이라고 언질을 줍니다. 이때 K씨는 대답합니다. “아니오. 고대의 그림입니다.” 여기서 고대란 시간적으로 오래 전의 시대를 뜻하는 게 아니라, 지나간 시대, 극복되어야 하는 시대를 의미합니다. 현대의 예술가는 브레히트에 의하면 지나간 시대의 형식주의라는 왜곡된 특성을 극복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