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근대독문헌

서로박: 장 파울의 거인 (2)

필자 (匹子) 2023. 1. 3. 09:16

(앞에서 이어집니다.)

 

9. 친구와 연인, 사랑과 질투 그리고 소유욕: 로크바이롤은 어느새 바람둥이 남자, 사기꾼의 면모를 여지없이 드러냅니다. 어느 날 그는 알바노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를 유혹합니다. 하녀의 희디흰 속살이 그의 마음을 완전히 설레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로크바이롤은 어느 날 밤에 하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서, 그미의 처녀성을 유린해버리고 맙니다. 나중에 그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지만, 그를 개망나니로 행동하게 했던 것은 욕정이 아니라, 젊음을 사랑하는 순수한 정념이라고 털어놓습니다. 그의 변명을 듣고 있던 주인공으로서는 로크바이롤의 행동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알바노는 그에게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말하면서 절교를 선언합니다. 다른 한편 로크바이롤의 여동생, 리안네는 설상가상으로 열병에 걸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다가, 끝내 사망하고 맙니다. 알바노는 사랑의 상실로 인한 고통으로 몸부림칩니다. 자신을 혼자 내버려두고 세상을 하직한 여자 친구가 몹시 미웠습니다. 리안네는 그의 기억 속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이도이네라는 여자가 주인공의 앞에 나타나게 되었을 때, 알바노는 그미를 평생의 반려로 삼게 되는데, 이에 대한 계기는 그미가 무엇보다도 리안네를 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10. 이리저리 이끌리는 주인공의 운명: 친애하는 P,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의 사항입니다. 즉 알바노의 청춘 시절이 체자라 백작에 의해 이리저리 조종된다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주인공은 백작을 여전히 친아버지라고 믿고 있습니다. 백작은 알바노를 로마로 보냅니다. 예술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우려면, 젊은이는 로마로 가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알바노는 이시아에서 우연히 린다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서로를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심지어 유년 시절 3년간 함께 지냈다는 사실조차 두 사람 모두 모르고 있습니다. 이때 린다는 늘름한 사내 알바노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로써 두 사람의 결혼은 부모들이 원하는 대로 거의 성공할 것 같이 보입니다. 바로 이 무렵에 알바노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공주 율리안네가 자신의 친동생이라는 게 바로 그 소식이었습니다. 알바노는 모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황급히 소 공국 “호엔플리스”로 향합니다. 린다 역시 주인공과 동행합니다. 두 사람이 소공국에 도착했을 때, 로크바이롤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연극 작품을 공연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이시아 항구. 이시아의 항구. 사랑과 열정 그리고 애환과 격정, 희열과 절망 등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 은폐되어 있다.

 

11. 시기와 질투는 당사자를 파멸로 이끈다.: 나중에 밝혀진 이야기이지만, 로크바이롤은 오래 전부터 린다를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는 술과 도박판 그리고 유흥가에서 가무를 즐기는 한량으로서 수많은 여성들과 살을 섞었지만, 그의 마음은 오로지 은밀하게 린다에게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린다는 애인 감으로, 혹은 남편감으로 그를 처음부터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로크바이롤이 경박하고 음험하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린다의 마음은 오히려 알바노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알바노와 린다는 그들 부모에 의해서 처음부터 부부가 되기로 정해진 사이였습니다. 린다는 처음에는 이를 몹시 껄끄러워 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알바노에 대한 사랑이 그미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르게 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알바노는 주어진 처지를 극복하면서, 영민한 두뇌, 따뜻한 품성을 지닌 준수한 남자로 성장했던 것입니다. 로크바이롤은 알바노에 대한 린다의 사랑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립니다. 불현 듯 그의 마음에는 알바노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벌컥 솟구치는 것을 감지합니다.

 

12. 악마의 전형인가, 아니면 유미주의자인가?: 친애하는 P, 만약 오늘날 악마가 있다면, 그는 아마도 로크바이롤과 같은 인간일 것입니다. 악마는 말 그대로 “사랑하는 두 사람을 이간질하는 자 (δια + βόλος)”입니다. 로크바이롤은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을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아니면 선과 악을 서로 구분하지 못하는 유미주의의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습니다. 사이코패스에게는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으며, 오랫동안 한 사람과 우정 관계를 맺지 못하는 특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로크바이롤은 린다를 사랑하며, 주인공에 대해 엄청난 크기의 질투심을 느낍니다. 이러한 질투심은 다시금 어떤 끔찍한 파국을 초래합니다. 이른바 가장 친하다고 하는 두 사람의 친구에게 음험한 술수를 가했던 것입니다. 로크바이롤는 알바노의 필체를 모방하여, 린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편지에는 알바노가 어느 밤 공원에서 린다와 단둘이 만나고 싶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린다는 원래 밤눈이 어두운 처녀였습니다. 이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로크바이롤은 그미를 유혹하여 살인하려고 계획했던 것입니다.

 

13. 로크바이롤, 죽음을 연습하다.: 로크바이롤은 어둠 속에서 린다를 만납니다. 그렇지만 그는 린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알바노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신이 먼저 권총으로 자살할 테니, 뒤이어 자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순간 로크바이롤은 실제 현실에서 자신의 극작품을 연기한 셈입니다. 린다는 야맹증 환자였지만, 귀마지 어두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미는 어둠 속의 남자가 알바노가 아니라는 사실을 예리하게 간파합니다. 로크바이롤은 권총으로 자살하는 흉내를 내려고 방아쇠를 당깁니다. 이때 그는 즉사하고 맙니다. 안타깝게도 육혈포에 총알이 하나 박혀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린다는 이 순간 경악에 사로잡힙니다. 친애하는 P, 설령 아무런 잘못이 없더라도 당신의 존재 때문에 한 인간이 목숨을 잃게 된 경우를 상정해 보세요. 이 경우 당신은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않겠습니까? 린다가 그러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서 애꿎은 한 인간의 생명이 사라진 데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미는 영원히 알바노의 곁을 떠납니다.

 

14. 어째서 돈과 권력은 인간을 사악하게 만드는가?: 루이기는 왕위 계승자가 되었으나, 여전히 유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심지어 하르하르의 나이 많은 공주가 그를 모욕해도, 루이기는 이를 그냥 받아들일 뿐입니다. 결국 루이기는 병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성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권력을 탐하는 어느 신하가 그를 꼬드겨 홍등가에서 여러 명의 여성들과 살을 섞게 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이 무렵 프랑스에서는 작은 무장봉기가 발발합니다. 알바노는 이에 동참하려고 프랑스로 떠나려고 합니다. 그는 가급적이면 자신의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차례로 목숨을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그는 무척 서글퍼 합니다. 이때 도서관 사서이자 주인공의 은사인 쇼페는 일부러 미친 척하고 병원에 입원합니다. 말하자면 쇼페는 알바노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차렸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아픈 척하고 병원에 입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농성진 (仮弄成真)이라고, 장난삼아 벌인 일이 정말로 끔찍한 질병으로 비화될 줄 그는 몰았습니다. 쇼페는 병원에서 정말로 정신 착란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쇼페는 마지막으로 알바노를 만난 뒤 쓸쓸히 병원에서 사망합니다. 알바노는 죽어가는 쇼페로부터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전해 듣습니다. 결국 알바노는 프랑스 여행을 포기합니다. 나중에 주인공은 소공국 호엔플리스의 권력을 계승합니다. 왕좌에 오른 알바노는 이도이네라는 조신한 처녀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바이로이트에 있는 장 파울의 동상

 

15. 사악한 거인의 술수와 음모를 비판하다. 장 파울은 편지에서 자신의 작품의 제목이 “반-거인”이어야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천국을 파괴하려고 획책하는 자는 반드시 지옥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소설을 쓰게 된 것은 두 가지 사항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작품은 한편으로는 세속적 교육과 가르침이 얼마나 오류에 빠져 있는지를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가 자신의 고유한 내면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동떨어져 있는지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장 파울의 '거인'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작품은 한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하나의 각본대로 움직일 수 있으며, 이로 인해서 인간성이 기계적 반대 세력에 의해 파괴될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둘째로 작품은 귀족 내지 제후들의 잘못된 “거인주의”를 예리하게 질타하고 있습니다. 알바노는 평생 체자라 백작의 사악한 연출에 의해 이끌려 이리저리 끌려다니지만, 결국 타인의 술수, 수동적 행위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되찾게 됩니다.

 

16. 다섯 명의 거인들 그리고 알바노 (1): 셋째로 작품은 알바노의 고매한 인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알바노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의 삶을 살아가면서, 따뜻한 감정과 현실 감각을 겸비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에 비하면 다른 작중 인물들은 자신의 편협한 판단으로 인하여 삶에서의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이를테면 작중인물들은 여러 사람들을 연상시킵니다. 첫째로 쇼페는 철학적 이기주의를 맹신하며 분열의 성격을 지닌 이상주의 철학자 피히테를 연상시킵니다. 그는 자아의 이상을 추구하다가, 동시대 사람들과의 소통을 등한시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자기 자신의 이상에 골몰하고 말았습니다. 둘째로 로크바이롤은 당시 바이마르에 머물던 괴테와 같은 인물을 떠올립니다. 그는 사회적 혁명을 간과하고 오로지 예술 지상주의를 추구했던 유미주의 작가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주어진 세상의 걔혁에 있어서 괴테는 언제나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셋째로 카스파르 체자라 백작은 냉철하고 정치적 야망을 지닌 인간형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부분적으로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를 매우 닮았습니다. 그는 냉혹하고 계산적 술수만을 품고 있기 때문에, 카스파르 백작에게는 어떠한 인간적 따뜻함 내지 중후함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17. 다섯 명의 거인들 그리고 알바노 (2) 넷째로 리안네는 열광적 신앙에 자신을 던지는 인간의 전형입니다. 그미는 이를테면 강렬한 자기 파괴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슈바벤 지방의 경건주의 신앙인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를테면 자살로 삶을 마감한 낭만주의 여성 작가, 카롤리네 귄더로데를 우리는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다섯째로 이에 비하면 린다는 정열적 여성으로서 자유롭게 살며, 많은 문인들을 도와주었던, 사를로테 폰 칼프 부인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칼프 부인은 실러 그리고 횔덜린 등에게 가정교사 직을 내어주면서 작가와 철학자들에게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후원했습니다. 린다는 모든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있지만, 그미의 진보적 입장은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미는 세계의 변화에 대해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입니다. 상기한 다섯 유형의 사람들은 장 파울의 견해에 의하면 모두 비판의 대상이 되는 시대적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건대 『거인』은 장 파울이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가장 탁월한 시대 비판의 서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18. 이중인격: 아, 한 가지 사항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문학 치료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장 파울의 작품 속에는 이중인격의 모티프가 발견됩니다. 가령 알바노와 로크바이롤을 생각해 보세요. 두 사람은 사로 다른 유형이지만, 완전무결한 무엇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몹시 닮았습니다. 주위 여건이 자유롭지 못할 때 인간은 누구든 간에 자신의 몸에 묶여 있는 보이지 않는 질곡을 끊어버리고 싶어 합니다. 알바노는 선을 추구하는 고결한 인간이지만, 친구의 모습에서 자신의 은폐 욕구 내지는 파괴 욕구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완전히 선한 사람도, 완전히 악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바노를 통해서 인지할 수 있습니다. 주위의 압박감은 심리적으로 유약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의 탈출구를 마련하도록 부추깁니다. 문신을 즐기든가 가면을 쓰는 기이한 돌출 행동 역시 외부에 대한 저항과 은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가령 작가 E. T. A. 호프만도 그러했으며, 지킬 박사도 그러했습니다.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에 나오는 창녀, 셴테도 어쩔 수 없이 파렴치한 수이타로 변장해야 했습니다. 이중인격의 현상은 심리적으로 추적되어야 하겠지만, 강력하고 살벌한 외부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피적 행동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