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 단상

(단상. 532) 시험, 미래의 목표 그리고 학문

필자 (匹子) 2022. 4. 15. 11:45

지금까지 시험은 나에게 항상 고통을 주고 답답함을 안겨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선생이 무엇을 질문할지 고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나의 자발적인 질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위로부터의 교육 내용만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시험을 치르고 당락을 결정하는 것 - 이것은 미국식 제도에서 비롯한 것으로서 사람과 사람을 경쟁하게 만들고, 무의식적으로 이기주의자로 성장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미국에 가보면, 한 가지 사항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시험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더라도 절대로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상대평가는 일본 식민주의의 잔재입니다. 한국은 미국식 경쟁 교육에다 일본식 등수 매기기를 첨가하였습니다. 묻는 데 대해 잘 대답하면, 우리는 시험에 합격합니다. 시험의 정보를 미리 알면, 시험을 잘 치게 됩니다. 유치원이든 박사학위든 마찬가지이지요. 묻는 데 대해서만 잘 대답하는 것 - 이것이 바로 시험의 특징이자 당락의 한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교육자의 자발적인 문제제기 그리고 창의력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때 내가 가르친 학생 가운데에 영리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필기시험에 능합니다. 질문에 대해 수동적으로 답하는 것은 자신이 있어요. 그런데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문제 제기하는 데 몹시 약합니다. 제가 과연 S 대에 합격할 수 있을까요?”  다행히 그는 S대 법대에 들어갔습니다. 법전을 달달 외우느라고 인문 고전작품 그리고 외국어 공부에 등한시했습니다. 그는 지금 유능한 변호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었으나, 지금까지 법만 생각하느라고, 독서를 게을리했했다고 토로합니다.

 

대학생 시절 나는 언제나 먼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걸었습니다. 학점 취득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동급생 여 학우 K는 언제나 A학점을 받았습니다. 당시 동급생 여학우는 언제나 장학금을 받았으나, 지금은 가정주부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가정주부의 삶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현재 공부와 담을 쌓은 채 살아가는 게 문제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학점 취득에 혈안이 되어 있지 않던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책을 읽고 지냅니다. 아직도 모자라는 게 많으니까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그렇지만 노력은 우리는 서서히 발전하게 합니다. 지금도 한참 모자라지만, 나중에는 학문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스스로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 당신 스스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가요? 당신은 당신의 삶을 위해서 얼마나 자주 질문을 던져보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