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일 2

(명시 소개) 차주일의 시: "혀의 내장과 그 거리"

혀의 내장과 그 거리 차주일 여자가 엄지를 물고 펄펄 뛴다. 뚝배기에 박혀 있던 마포 설렁탕 다섯 글자와 아 뜨거, 쯤으로 들리는 삼십년은 족히 묵었을 월남 말 세 음절 바닥에 깨어져 있다 이곳에서 사라진 소리들 지구 한쪽에서 천둥으로 나겠다 나뒹군 내장과 선지 덩어리들 사이에서 혀 한 점이 바닥을 핥는다 서울과 하노이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혀와 내장은 가까워지지 않는다 혓바닥을 진동시켜 낸 월남여자의 황소 울음이 흑백 가족사진 한 장을 내 고막에 인화한다. 사진은 두려운 눈빛만큼 어두워진다 주인 할머니가 혀와 내장을 쓸어 담고 마포 걸레로 그 거리를 지운다 월남여자의 울음소리가 인화지처럼 마른다 할머니가 설렁탕 한 그릇을 쟁반 없이 들고 온다 펄펄 끓는 탕 속에 엄지 한마디 잠겨 있다 탕 속의 혀가 ..

19 한국 문학 2023.01.11

(명시 소개) 차주일의 시 "어떤 새는 모음으로만 운다 - 사랑"

자신을 먹이로 쫓던 새를 찾아가 그 새의 눈물을 빨아먹어야만 살아남는 나방이 있다. 천적의 맥박 소리에 맞춘 날갯짓으로 잠든 눈까풀을 젖히는 정지된 속도로 천적의 눈물샘에 긴 주둥이 밀어 넣을 수 있었던 진화는 천적의 눈 깜박이는 찰나에 있다. 천적의 눈물에 침전된 염기를 걸러 제 정낭을 채운다는 미기록종 나방이여 상사 빛 날개를 삼켜 다시 염낭을 채워야 하는 새여 날개로 비행 궤적을 지우는 고요의 동족이여 제 감정에 마음 찔려본 자만 볼 수 있는 궤적은 내가 가위눌린 몸짓으로 썼던 미기록종의 자음들 나여, 불면이 네 눈으로 날아와 살아남으려 함은 이미 제 영혼인 울음을 간수할 유일책이기 때문 나여, 새의 부리를 조용히 열고 울음통 속으로 들어가 보아라. 차마 소리로 뱉지 못할 자음이 있어 모음만으로 울..

19 한국 문학 2020.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