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산 3

(명시 소개) 백무산의 시, '영천 장터'

영천 장터 백무산 장꾼들 틈에 끼여 마음도 왁자하게 열어두고 어딘가 구겨지고 귀퉁배기 하나씩 허물어진 사람들과 섞여 애가 타고 목이 쉬게 장돌림을 하다가 아버지들처럼 쇠전거리 국밥집에서 두어잔 탁배기 들이키고 가야지 못 잊고 못 간 그 길 타는 자갈길 능금꽃 피고 지면 보리가 따라 익고 뻐꾸기 한나절 울음에 문둥이 따라 울던 곳 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 완산 대보둑길 노고지리 둥지틀던 여울 건너 버덩 목화밭 타는 밀밭 남상남상 봇물 위로 날으던 물새 혹부리 영감 나룻배 타고 푸른 바람을 타고 못 잊고 못 간 그 길 타는 자갈길 짙푸른 금호강에 몸을 던진 여인이 벗어놓은 하얀 코고무신 한 켤레 눈이 시리던 청석바위 벼랑길 따라 비탈을 지나 초가집 하나 그가 떠난 날은 콩잎이 누렇게 익을 무렵이었다지 칙간 거..

19 한국 문학 2024.01.24

(명시 소개) 백무산의 시 '유허비(遺墟碑)'

백무산의 시 유허비를 다시 읽습니다. 아래의 글은 정지창 교수의 명문장입니다. 필자가 첨언할 것은 하나도 없어서 글을 그냥 인용해봅니다. .................. “그 (백무산)는 탁발승처럼 이곳저곳을 떠돌며 새로운 길을 찾아 헤맨다. 고향 영천에는 웬지 돌아가고 싶지 않고, 정처 없는 발길은 방어진과 장생포, 선불산, 토함산, 경주 남산, 운문사 등지로 그를 데려간다. 그리고 순례하듯 폐사지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다가 예전에 살았던 울주군의 산골짜기 허름한 마을을 찾아가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웬 비석이 세워져 있다. 최제우 선생의 처가가 있던 동네(여시바윗골)라고 유허비를 요란하게 만들어 놓은 것. 수운 선생은 젊었을 적에 형편이 어려워 처가살이를 하며 장사를 다녔다고 한다. 그도 나처럼 실..

19 한국 문학 2023.10.27

정지창: 안삼환의 소설 『도동 사람』을 읽고

경애하는 정지창 교수님의 글을 허락 없이 함부로 퍼왔습니다. 이해 부탁드리면서 OTL .................. 안삼환 교수의 『도동 사람』을 이틀에 걸쳐 다 읽었다. 6백 30쪽에 이르는 두툼한 소설을 이렇게 빨리 읽은 것은 나로서도 놀라운 일이다. 어금니가 탈이 나 치과에 다니느라 오른쪽 볼이 무지근하게 부어오르고 “멀리서 들리는 은은한 포성처럼”(염무웅 선생의 표현) 치통이 지속되는 가운데, 연일 35도를 오르내리는 염천에 머리는 지끈거리고 눈은 침침한데 이 두꺼운 책을 독파하다니! “진정한 학자, 위대한 학자는 그 학술이 반드시 ‘학술의 틀’을 깨고 나와 시적 정취와 통해야 한다.”(真学者、大学者,其学术必能突破“学术套子”,打通诗意。) 『시간의 압력』이라는 에세이로 유명한 중국의 소설가이자 ..

2a 남의 글 2023.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