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보에시 2

박설호: "자발적 복종". 번역의 문제점

흔히 번역 행위는 하나의 텍스트를 다른 언어의 텍스트로 옮겨놓는 일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원전과 번역 텍스트는 언어의 측면에서 고스란히 겹쳐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단어, 문장, 문단 그리고 문맥 등은 동일한 의미로 옮겨질 수 없다. 왜냐하면 두 개의 특정한 언어 체계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탄생 시점의 시대와 역사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번역 작업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첫 번째 사항은 원전의 역사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번역자는 일차적으로 원전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진정한 번역은 관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번역자는 순수한 언어를 자기 자신의 매체를 통해서 가장 강력한 ..

32 근대불문헌 2022.11.19

서로박: 부마항쟁과 라보에시 (1)

“자네 번역은 엉터리야.” 윤노빈 선생님은 1981년 초 부산에서 출국을 앞둔 제자에게 그렇게 일갈하였다. 1980년 5월에 부산의 어느 출판사는 나의 번역서, “보에시, 노예근성에 대하여”를 간행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그 소책자를 거의 잊고 살았다. 1989년 여름, 마치 오디세우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10년간의 방랑을 끝내고 귀국하여 낙향하였다.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까까머리 제자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때 그 소책자가 흩어진 서가에 그대로 꽂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러나 반가움은 하나의 순간적 감정에 불과했다. 소책자를 다시 읽었을 때, 거기서 많은 오역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윤 선생님의 말씀은 엄연한 사실로 확인되고 있었다. 나의 얼굴은..

2 나의 글 2021.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