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5
에른스트 피셔 (1899 - 1972)는 마이어와는 달리 상아탑을 지킨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게오르크 루카치처럼 지조 있는 공산주의자로서 현실 정치에 가담했으며, -프리츠 R. 라다츠의 표현에 의하면- “변절을 거듭한 반역아”입니다. (각주:Siehe Fritz R. Raddatz: Revolte und Melancholie, Essays zur Literaturtheorie, Hamburg 1979, S. 249. ) 그러나 피셔는 50년대부터 문학과 예술에 몰두하며 자신의 독창적인 견해를 담은 책을 발표합니다. (각주: 문학과 예술에 관한 피셔의 본격적 연구는 고작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그가 탁월하고도 독창적인 문예 이론적인 입장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을 통한 사색과 독서의 결과 때문이다.). 에른스트 피셔의 생애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쓴 두 권의 회고록 기억과 성찰 (Erinnerung und Reflexion), 환상의 종말 Ende der Illusion을 바탕으로 간략히 에른스트 피셔의 생애를 요약하려고 합니다.
189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피셔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참전한 바 있으며,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그라츠에서 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일찍이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여 오스트리아 공산당에 가입하였습니다. 1927년에 그는 비엔나의 “노동자 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며 정치적 문화적 경륜을 쌓아갔습니다. 루트 폰 마이엔부르크와 결혼하였습니다. (각주: 두 사람은 1933년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하자 모스크바로 망명을 떠난다. 루트 폰 마이엔부르크는 독일과 소련을 드나들며 소련의 비밀 방송국의 요원으로 일한다. 이 일은 거의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중대한 업무였으므로 두 사람 모두 신변의 위험을 느꼈다고 한다. 피셔는 1954년에 그미와 이혼하였다. 루트 폰 마이엔부르크는 1945년 이후에 ‘모데스타’, ‘루트 비덴’이라는 가명으로 드라마를 집필, 무대에 공연하게 했다. 60년대 말에 그미는 서서히 오스트리아 공산당과 결별하였다. Siehe M. Rohrwasser: Der Stalinismus und die Renegaten. Die Literatur der Exkommunisten, Stuttgart 1991, S. 352.) 에른스트 피셔는 30년대 중엽 스탈린의 숙청 시기를 겪고서는 소련이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비판적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단정을 내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공산주의적 지조를 꺾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에른스트 피셔는 망명을 끝내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돌아옵니다. 1948년 그곳에서 그는 미국 망명을 마치고 돌아온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이 무렵 에른스트 피셔는 음악가, 한스 아이슬러의 부인이었던 루와 재혼하였습니다.

에른스트 피셔는 1947년부터 1959년까지 오스트리아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고 국회 위원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에른스트 피셔는 1968년 프라하의 봄 사건을 계기로 소련 공산당에 대해 신랄한 비난을 가했다는 이유로 결국 오스트리아 공산당에서 쫓겨났습니다. 에른스트 피셔는 1959년부터 문필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0 권의 저서를 집필합니다. 피셔의 대표작으로는 1959년에 쓴 "예술의 필연성에 관하여 Von der Notwendigkeit der Kunst", "낭만주의의 기원과 본질 Ursprung und Wesen der Romantik",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예술의 철학적 규명 작업의 일환으로 발표된 "예술과 공존 Kunst und Koexistenz", "상상력의 찬양 Lob der Phantasie", "현실의 흔적을 찾아서 Auf der Suche nach Wirklichkeit" 등이 있습니다. (각주: 피셔의 예술의 필연성에 관하여는 한국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1993년에 간행되었다. 에른스트 피셔: 문학이란 무엇인가? 한철희 옮김, 서울 1993.).
6.
피셔의 문학 이론은 루카치의 그것처럼 체계화 내지는 정돈된 틀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의 이론은 이론이라고 명명하기 곤란할 정도로 산만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피셔가 작가 개개인 그리고 개별적 작품의 분석에서 출발하여 귀납법적으로 여러 가지 결론들을 도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글을 읽으면 마치 아무런 공식 내지는 철칙을 염두에 두지 않는 평이한 문학 평론을 대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상은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 그의 글들을 차례로 집중해서 읽으면, 우리는 거기서 피셔의 수미 일관적인 독창적 예술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피셔는 50년대 초까지만 해도 루카치의 반영 이론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반영 이론에 의하면 작가의 임무란 사회의 총체성을 문학 작품에 리얼하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리얼리즘은 루카치에 의하면 현실의 모순점, 다시 말해서 현실의 현상과 본질 사이의 모순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그러니까 현실을 반영하는 문학 이론입니다. 그렇지만 에른스트 피셔는 60년대 초부터 반영 이론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독창적인 예술론을 추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예술 속에는 인간의 끝없는 잠재력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피셔는 스페인의 궁정 화가 뤼시엔테스 고야 (1746 - 1828)의 미술 작품에서 이러한 잠재력을 찾으려고 합니다. 고야는 현실에 대한 단순한 모사의 차원을 넘어서 현실의 배후에 있는 현실에 집중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가능한 현실의 비밀을 현실의 배후에서 발견하는 고야의 창작 자세에서 예술 행위의 본원적 가치가 발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각주: Siehe E. Fischer: Lob der Phantasie, Späte Schriften zur Kultur und Kunst, Frankfurt a. M. 1986, S. 28 - 35.).
예술이 추구하는 것은 주어진 현실의 제반 문제라든가 기존하는 인간상을 다루는 게 아니라, 보다 바람직한 현실을 구현하려는 예술가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예술가의 이러한 의지가 직접적으로 작품에 구현되고 있는가? 혹은 정반대로 구현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은 여기서는 논외이겠지요. 한마디로 말해 예술이 추구하는 끝없는 잠재력은 피셔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이 역사적 순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매개체”라고 합니다. (각주: E. Fischer: Kunst und Koexistenz, Beitrag zu einer modernen marxistischen Ästhetik, Reinbek 1966, S. 200.). 그렇기에 피셔에게는 현재의 질서를 초월하는 상상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예술의 미래지향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에른스트 블로흐의 예술론과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블로흐는 “선현의 상 (Vorschein)”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예술 작품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즉 훌륭한 예술 작품은 예측된 상을 관찰자에게 선사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현재 존재하는 인간과 자연의 상이 아니라, 나중에 밝혀질 보다 나은 (혹은 사악한) 상입니다.
에른스트 피셔는 예술이란 현재와 과거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오히려 예술 작업은 피셔의 견해에 의하면 현실에서 감추어져 있는 새로운 의식을 생산해내는 행위입니다. 다시 말해서 문학과 예술은 인간의 잠재력을 찾아낼 수 있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에른스트 피셔의 이러한 입장은 루카치의 이론 및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루카치가 사회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작가들은 고전적인 것, 엄밀한 형식 성, 서사 성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에른스트 피셔는 표현주의적, 수수께끼와 같은 비밀에 대한 해명, 실험 정신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루카치가 발자크, 톨스토이, 토마스 만을 모범적인 작가로 예를 들었다면, 피셔는 전혀 다른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피셔의 견해에 의하면 스탕달,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카프카 등이 탁월한 리얼리즘 작가라고 합니다. 스탕달, 클라이스트 그리고 카프카는 피셔에 의하면 현실 문제의 핵심을 축소화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국가의 단순화 작업과는 정반대가 되는, 예술의 고유한 임무나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각주: 피셔의 견해에 의하면 국가는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모순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단순화의 작업을 담당하는 반면에, 예술은 모든 것을 축소화시키는 매개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문서와는 달리 예술 작품은 상투적 의미를 지닌 명확한 표현을 지양하고, 예술적 의미를 지닌 불명확한 표현을 선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명확한 표현으로 현실의 명확한 부분을 인식시켜주는 것이 바로 카프카의 작품들이라고 한다.).
(2) 피셔의 예술론의 강점은 그가 리얼리즘을 두 가지 기능으로 구분해서 파악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각주: 50년대에 이르러 에른스트 피셔는 리얼리즘을 어떤 특정한 양식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어떤 특정한 자세라고 파악하게 된다. E. Fischer: Das Ende einer Illusion, Erinnerungen, Frankfurt a. M 1988, S. 281f.). 즉 리얼리즘이란 존재론적 차원과 방법론적 차원으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재론적 차원으로 본다면 리얼리즘이란 작가가 지향해야 할 자세로서 이해되고, 방법론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작품의 기술 방식 내지는 표현 형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이론가들이 작가의 지조 내지는 자세의 차원을 중시한 게 아니라, 후자, 그러니까 창작 방법론적인 차원에서 리얼리즘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피셔는 이 점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소위 리얼리즘 작가로 불리는 토마스 만과 헤밍웨이를 예로 들어 봅시다. 토마스 만의 소설은 세심한 상황 묘사, 수려한 문체, 다양한 어휘력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입장은 건강한 시민 정신이었고, 사회주의와는 정 반대되는 것이었지요.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라는 작품을 예로 들어 봅시다. 그의 묘사는 창작 방법론적으로 볼 때 리얼리즘적이라고 하나, 작가의 지조라든가 창작 자세의 측면에서 볼 때 고차원적인 동화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다만 독자의 판단력을 현혹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토마스 만은 신화를 소재로 하여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귄터 쿠네르트도 말한 바 있지만- 변태 성욕만 자극하는 병적인 센티멘털리즘의 극치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주: Vgl. G. Kunert: Gespräch unter anderem Realismus, in: Heide Hess u. a. (hrsg.), Arbeiten mit der Romantik heute, Berlin/ DDR 1978, 40f.).
한마디로 말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칙은 -에른스트 피셔의 견해에 의하면- 두 가지의 이유에서 의문을 남긴다고 합니다. 첫째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내용 (사회주의)과 형식 (리얼리즘)이라는 두 가지의 다른 차원을 작위적으로 조립하고 있는데, 형식의 차원에서의 리얼리즘 속에 이미 내용상의 문제가 혼융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피셔는 “사회주의 예술”이라는 용어가 더욱 합당하다고 지적합니다. (각주: E. Fischer: Von der Notwenigkeit der Kunst, Frankfurt a. M 1985, S. 119f.). 둘째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피셔에 의하면 과거의 현실에서 추론해낸 문학적 틀과 같습니다. 그것은 변화된 새로운 현실을 담을 수 없는 구태의연한 형식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새로운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형식입니다. 어찌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을 수 있을까요? 새 술은 피셔에 의하면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각주: “문학 비평가는 작품을 해명하고, 그 속에 나타난 발전들을 관찰하며, 제반 경향들을 연구해야 한다. 그러니까 경향들을 규정할 게 아니라, 추적하는 자세로 사고해야 한다.” E. Fischer: Auf den Spuren der Wirklichkeit, a. a. O., S. 51. 피셔에 의하면 방법으로써 ‘소재’를 규정할 게 아니라, ‘소재’를 천착함으로써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3) 피셔는 낭만주의 (특히 독일 낭만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 문예 이론가들은 독일 낭만주의를 파시즘을 낳게 한 건강하지 못한 과거지향적인 문예 사조로 수용하였습니다. 괴테가 낭만주의를 병적인 것으로, 고전주의를 건강한 것으로 평가한 이래로, 그들은 낭만주의라는 예술 사조를 “중세와 죽음을 동경하는 과거 지향적 퇴폐성이 담겨 있는 이데올로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독일 낭만주의는 프랑스 혁명의 의지에서 출발하였지만, 나아가서는 시대착오적인 반동주의를 표방하게 됩니다. 독일 낭만주의 작가 가운데 클레멘스 브렌타노와 아힘 폰 아르님은 1819년 칼스바트에서 개최된 유태인 박해 사건에 가담한 적도 있지요. 그렇기에 독일의 파시즘이 독일 낭만주의에서 아리아 민족의 특성을 찾으려고 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에른스트 피셔는 그의 저서 낭만주의의 기원과 본질에서 독일 낭만주의의 이러한 부정적 특성 및 후세인들의 평가를 비판하였습니다. 피셔는 독일 낭만주의가 도래한 것을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피셔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발전은 세 가지의 역사적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첫째, 르네상스, 둘째, 프랑스 혁명 그리고 셋째, 「공산당 선언」으로 촉발된 1848년 독일 혁명이 그것들입니다. 독일 낭만주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 사이에 등장한 예술 사조입니다. 바로 이 시기에 산업 혁명이 시작되었고, 자본주의 사회의 병리 현상을 낳게 된 세 가지의 필요악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분업을 통한 인간 노동의 소외, 물화 Verdinglichung, 관료주의의 등장이 바로 그것들이지요. 물론 낭만주의 독일 작가들이 추구한 예술적 분위기는 부정적이고 현실 도피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 작품은 피셔의 견해에 의하면- 이러한 사회적 병리 현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합니다. (각주: 피셔는 특히 독일의 극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를 연구하면서 자본주의의 병적인 현실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해나가고 있다. E. Fischer: Auf den Spuren der Wirklichkeit, a. a. O., S. 72 - 157; auch ders.: Aufstand der Wirklichkeit. Literarische Studien und Porträts, Frankfurt a. M. 1989, S. 71 - 174.). 이로써 피셔의 이론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얼마든지 아방가르드 운동으로서의 (세계관과는 별개의 차원인) 방법론적인 실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논의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이지만 70년대 동독 문학의 경향도 따지고 보면 피셔의 논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크리스타 볼프, 귄터 드 브륀, 하이너 뮐러 등은 19세기 동쪽 지역의 프로이센의 현실을 재구성하며, 독일 낭만주의 작가들의 삶을 추적하였습니다. 이러한 제반 작업은 두 가지의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첫째로 동독 작가들은 지금까지 활발하게 연구되지 않았던 독일 낭만주의를 재조명하고, 과거의 동쪽 독일 지역의 인간 삶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려 하였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왜 독일에서 한 번도 혁명이 성공리에 끝나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을 간접적으로 (문학 작품으로 포장하여) 제기했던 것입니다.
(4) 에른스트 피셔는 1945년 이후의 전체주의적 동구 사회 및 후기 자본주의 산업 사회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피셔의 견해에 의하면 자아와 공동체 사이의 밸런스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모순과 갈등에 의해서 언제나 다시 창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스 마이어가 현대 문학에 대해서 거의 언급을 회피한 데 비하면, 피셔는 현대의 변질된 노동자 개념과 노동자들의 나태한 삶의 방식을 누구보다도 첨예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모스크바의 노동자들은 19세기 중엽의 계급 문제로 고뇌하는 생각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관료주의적인 멍청한 개로 전락해버렸고, 워싱턴의 노동자들은 돈과 기계의 노예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입니다.
특히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피셔의 비판은 아주 격렬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사이버네틱스와 생산의 합리화 정책을 도입하여 모든 상품을 기계가 생산하게 변화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창조적 노동을 영위할 수 있는 개개인의 자발적 정신과 비판 정신이라고 피셔는 지적합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두 가지 정신이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25 문학 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설호: (4) 한스 마이어와 에른스트 피셔 (0) | 2025.04.07 |
---|---|
박설호: (2) 한스 마이어와 에른스트 피셔 (0) | 2025.04.05 |
박설호: (1) 한스 마이어와 에른스트 피셔 (0) | 2025.04.05 |
서로박: (7) 벤야민의 '역사 철학 테제' (0) | 2024.09.04 |
레오 스피처의 '문학 해석의 방법' (0) | 2024.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