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3.
한스 마이어 (1907 - )는 독일이 낳은 가장 탁월한 문예 이론가, 문학사가 그리고 문학 비평가입니다. 특히 그의 강점은 문예 이론을 문학사 및 현장 비평으로 확장시켰을 뿐 아니라, 문학사와 문학 이론의 상호 유기적 관계 그리고 문학 비평을 상기한 다른 영역을 통해서 보완하는 학문적 성과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서독 쾰른에서 태어난 그는 쾰른,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법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였고, 수많은 독일 문인들과 교우하였습니다.
1935년부터 1945년까지 마이어는 프랑스, 스위스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보냈습니다. 당시에 그는 "게오르크 뷔히너와 그의 시대 Georg Büchner und seine Zeit"를 집필하였는데, 지금까지 외면되었던 뷔히너 문학의 시대정신을 사회사적으로 규명하였습니다. 마이어의 뷔히너 연구는 1945년 이후 서독에서 가장 권위 있는 뷔히너 문학상을 발족하는 데에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마이어는 해방 이후에는 프랑크푸르트 방송국에서 잠깐 일했습니다. (각주: Inge Jens (hrsg.): Über Hans Mayer, Frankfurt a. M. 1977, S. 19 -24.) 1945년부터 1963년까지 마이어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독문학을 가르쳤습니다. 이때 그는 에른스트 블로흐와 교우했으며, "레싱에서 토마스 만에 이르기까지 Von Lessing bis Thomas Mann"라는 대표적 저작물을 집필하게 됩니다.
마이어는 1956년에 자신의 글에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였습니다. 과연 어째서 동독은 소련 사회주의 문학 작품만을 탁월하다고 인정하고 있는가? 하는 도전적인 견해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스 마이어는 1961년 베를린 장벽이 건설된 뒤부터 간접적으로 고초를 겪게 됩니다. 드디어 그는 알프레트 칸토로비치, 에른스트 블로흐를 뒤이어 1965년에 구동독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 후부터 1973년까지 하노버 대학 독어 독문학과에서 교수로서 일합니다. 정년퇴임 후에는 튀빙겐 대학 등 여러 곳에서 초청 강연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한스 마이어는 직접적으로 정치에 가담하지는 않았습니다. 학문적 열정과 성실성으로 수많은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1985년 마이어는 뮌헨 대학에 초빙되어 강연을 한 바 있습니다.
1987년에 마이어는 22년 만에 동독의 예술 아카데미의 초대를 받고 동베를린에 갈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마이어는 칼 크라우스의 문학에 관해 연설하였습니다. (각주: 왜 하필이면 유미주의자로 알려진 오스트리아 작가 카를 크라우스 Karl Krauss를 언급했을까? 이에 관해서 우리는 경색된 구동독의 문화 풍토를 고려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카를 크라우스는 -오스트리아 비인의 신인상주의 작가들, 아르투르 슈니츨러, 후고 폰 호프만슈탈 등과 함께- 구동독에서는 퇴폐적 작가들로 매도당했다.) 그는 두 권의 산문집 "저항하는 독일인, 회고록 Ein Deutscher auf Widerruf. Erinnerungen", "바벨 탑. 독일 인민 공화국에 대한 회고 Der Turm von Babel. Erinnerungen an die DDR" 그리고, "전환의 시대 Wendezeiten" 등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로써 그는 문예 비평가 뿐 아니라, 산문 작가 내지는 수필가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미 한스 마이어는 "독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관하여 Zur deutschen Klassik und Romantik", "뷔히너와 그의 시대 Georg Büchner und seine Zeit", "국외자 Der Außenseiter", "불행한 의식 Das unglückliche Bewußtsein", "토마스 만 연구", "브레히트와 문학적 전통" 등 20여권의 책을 집필, 발표하였습니다" (각주: 이 책에서 마이어는 “자기표현으로서의 역사적 시각”이라는 독자적인 이론을 정립하였는데, 여기서는 작품 해석에 있어서의 역사성과 현재성 사이의 관계가 특히 강조되고 있다.)
4.
인물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 그치고, 지금부터 마이어의 문학적 입장을 간략하게 언급할까 합니다.
(1) 마이어에 의하면 문학은 하나의 철칙에 의해 규격화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사회의 변화 및 역사의 변전을 낳는 인간 삶은 하나의 철칙이나 틀에 규격화되면, 그것은 역사적 변증법과 무관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의 이론이란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어떤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국한시킬 때만 정당성을 지닙니다. 만약 시대적 여건이 변화되면, 그 이론 역시 변모되어야 합니다. 마이어의 관심사는 문학의 역사와 실제 역사 사이의 변증법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과연 문학과 문학 이론은 실제 역사의 변화에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 또한 그것들은 주어진 현재 현실을 고려할 때 장차 어떻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가? 등의 문제는 마이어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문학은 하나의 틀이 아니라, 꿈틀거리며 변화하는 인간 삶이며, 서서히 새롭게 변화되는 정신적인 새로운 사상과 감정을 드러내는 그림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문학은 마이어의 견해에 의하면 오직 현실의 순간적 단면으로 이해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연속적 순간 konsequente Augenblicken”의 진행입니다. 그렇기에 문학 작품은 새롭게 변한 현실 속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을 직시하게 하는, 새로운 미래의 보다 나은 삶을 투영하게 하는 매개체입니다. 따라서 문학은 -유토피아의 장르 변천사 내지는 유토피아의 영향 사 내지는 기능 변천사로 국한될 게 아니라- 그 자체 유토피아입니다. (각주: Vgl. Gert Ueding: Literatur ist Utopie, Frankfurt a. M. 1978. 특히 Burghart Schmidt의 「서문 Vorwort」을 고려하라.) 마이어의 이러한 입장은 루카치의 이론에 대립되고, 에른스트 블로흐의 이론에 근친하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2) 문학 작품은 한스 마이어의 견해에 의하면 새로운 시대정신을 형상화시키는 모태입니다. 무릇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은 어떤 특정한 시대정신을 창출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제반 상황의 변화는 어떤 새로운 시대정신의 변화를 잉태시킵니다. (각주: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사고에 해당하는 것이다.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의식적인 변화를 동반한다. 중세의 라티푼디움이라는 생산 양식이 몰락하자,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동반되는 예를 생각해 보라.) 훌륭한 문학 작품은 사회의 제반 모순점을 비판적으로 반영함으로써,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는 문제들을 예리하게 지적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새로운 세계관 및 삶의 양식을 은근히 제기합니다. 마이어는 작가의 후세에 대한 영향력을 가장 중시합니다. (문학은 사회에 얼마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가요? 그러나 문학의 영향력은 간접적입니다. 그것은 정치적 성명서에 비해 미약하기 이를 데 없으나, (은근하지만) 끈질긴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3) 마이어의 견해에 의하면 문학은 사회 및 역사의 함수 관계 속에서 이해된다고 합니다. 문학 작품은 과거의 시대정신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변모될 때를 포착합니다. 마이어에게는 역사의 시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역사의 단계 내지 과정이 중요합니다. (각주: 마이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모든 정신적으로 생동하는 것이 역사이며, 또한 역사란 모든 정신적으로 생동하는 것이다 (Alles geistig Lebendige ist Geschichte, und Geschichte ist zugleich alles geistig Lebendige).” H. Mayer: Von Lessig bis Th. Mann. Die Wandlungen der bürgerlichen Literatur in Deutschland, Pfullingen 1959, S. 119f.) 문학 작품을 해석할 때 마이어는 집필 시기 및 작가가 처해 있는 사회적 환경을 무엇보다도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마이어의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역사주의란 연구자가 아무런 선입견 없이 오로지 가치중립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해나가는 작업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가령 우리는 프리드리히 마이네케 Friedrich Meinecke의 괴테 연구를 예로 들 수 있겠지요. 아닌 게 아니라 역사는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개인적 사실에서부터 역사책에 기술된 것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게 역사적 사실들입니다. 역사적 자료들 가운데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도 있고, 때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역사적 내용들을 “선별적으로 selektiv” 평가하는가요?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견해 및 세계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평가가 옳은지 그른지 하는 물음은 여기서 별개의 문제입니다. 때로는 우리는 그릇된 견해를 지니며 혹은 빗나간 사실에 관심을 두는 경향을 지닐 수 있습니다.
가령 이 점이 인식된다면, 우리는 다시 새로운 입장을 다시 정립시키게 되지요. 그런데 만약 우리가 어떠한 사항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여하한 견해를 미리 견지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어떠한 비판 의식도 형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이어는 연구자 및 독자의 선험적 판단, 즉 선입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선입견 Vor-Urteil”은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이어는 어떠한 선입견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경험주의에 입각한 문학 연구 방법론을 부인합니다. (각주: 이러한 입장은 앞에서 거론한 레싱에서 토마스 만에 이르기까지. 독일 내에서 시민 문학의 변모 (Von Lessing bis Th. Mann. Wandlungen der bürgerlichen Literatur in Deutschland)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이어는 텍스트 자체를 중시하는 신비평 (뉴 크리티시즘)의 입장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마이어는 역사적 사실을 선별적으로 채택하는 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4) “자기표현으로서의 역사적 시각 der geschichtlicher Blick als Selbst- darstellung”은 한스 마이어의 이론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작가의 창작 행위와 독자의 수용의 입장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마이어는 작가가 처한 실제 현실과 문학적으로 형상화되는 가상적 현실을 별개의 차원으로 이해합니다. 작가는 문학적 소재를 과거에서 찾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비록 작가가 과거의 현실을 묘사하고 있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가 처하고 있는 당대의 현실입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적 삶의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역사를 응시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태도에 자기표현으로서의 역사적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둘째로 독자 혹은 연구자가 어떤 특정한 문학 작품을 선택할 때 자신의 관심사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합니다. 또한 작품을 평가할 때에도 독자의 견해 혹은 세계관은 은밀히 영향을 끼칩니다. 특정한 문학 작품에 대한 작가 혹은 연구자의 평가 행위 속에는 자기표현으로서의 역사적 시각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작가가 자신이 처한 현실의 문제점을 과거의 소재에서 찾으려 하듯이, 독자와 연구자 마찬가지로 자신이 처하고 있는 실제 현실의 문제점을 재확인하기 위하여 특정한 작품을 선택하여 읽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독자 또한 자신의 관심사에 근거하여 특정한 문학 작품을 선정하며, 독서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견해를 스스로 확인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문제를 밝히고 싶은 욕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창작 행위 시 작가의 뇌리에서 떠올리는 것은 보다 나은 혹은 보다 나쁜 가상적 현실상입니다. 이는 작가가 처한 실제적 현실과 교차되는 것으로서 작가가 바라는, 좋은 가상적 삶, 혹은 작가가 부정하는, 나쁜 가상적 삶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실상은 작품 속에 그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작가는 자신의 고유한 상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창작 기술적인 문제와 갈등을 겪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타협이 형성되고, 이로써 원래의 가상적 현실상은 은폐되거나 변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술 작품은 향수의 과정에서 정반대로 기능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독자 내지는 예술 감상자는 무언가 제한되고 제한된 것 같은 예술 작품 속에서 보다 큰, 어떤 예술적 내용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술 작품은 그것이 적절하게 향수되는 순간 스스로의 존재 가치보다도 더 큰 존재 가치로 기능합니다. (각주: 이에 관해 루카치는 이미 1910년대에 기술한 바 있다. G. Lukacs: Heidelberger Philosophie der Kunst (1912 - 1914), Werke Bd. 16, 특히 제 2장 (Schöpferisches und rezeptives Verhalten)을 참고하라. S. 68 - S. 74.)
이러한 과정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마이어의 견해에 의하면) 작가가 처한 실제 현실과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현실상을 두 가지 별개의 차원으로 구분해서 향수 (享受)해야 합니다. (각주: Siehe M. Jurgensen: Deutsche Literaturtheorie der Gegenwart, München 1973, 59 - 64.) 바꾸어 말하면 작가가 다루는 가상적 현실상은 자신이 처한 실제의 현실적 상황과의 변증법적 관련성 속에서 파악되어야 합니다. 이로써 작가가 갈구하는 바람직한 현실상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이어의 견해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은 등장인물과 상호 구분되어야 합니다. 등장인물의 견해는 결코 작가의 견해와 동일시될 수 없습니다. 작가의 견해는 대체로 실제 인물의 집단적 삶과 등장인물의 집단적 삶 사이를 서로 비교하는 가운데 발견될 수 있습니다.
(5) 한스 마이어는 구동독의 문화 정책이 작가들에게 하나의 이데올로기 내지는 검열로서 작용하고 있음을 일찍이 간파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그는 1945년 이후의 동독 문학에 관해 적극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50년대와 60년대 전반에는 19세기의 문학 내지는 바이마르 시대의 문학만을 주 연구 대상으로 삼았을 뿐입니다. 동독 문화 정책에 대한 마이어의 혐오감은 크리스타 볼프의 산문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구동독의 여류 소설가 크리스타 볼프는 50년대 초에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했는데, 마이어 교수의 지도 하에서 석사 학위 논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볼프는 에두아르트 클라우디우스 E. Claudius, 안나 제거스 A. Seghers, 에어빈 폰 슈트리트마터 E. v. Strittmatter와 같은 구동독의 초창기의 작가에 관해서 논문을 쓰려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전하자 마이어는 “그들의 문학은 벌겋게 색칠한 초가집에 불과 해”하고 말했습니다. (각주:Chr. Wolf: Ansprachen, Darmstadt 1988, S. 49. ) 그러니까 이들의 문학은 대체로 거짓된 공산주의적 지조로 무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각주: 이는 마이어의 편견일 수 있다. 안나 제거스의 망명 소설들은 독자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슈트리트마터의 농촌 소설들 ("올레 빈코프" 이후에 간행된 작품들)은 문화 정책과의 관련성만으로 획일적으로 평가될 수는 없다.). 이 에피소드는 동독 문화 정책이 얼마나 편협한 문학 이론을 작가와 독자에게 강요하고 있는가? 에 대한 마이어의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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