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나의 시

박설호의 시, '선생님 로빈 선생님 2'

필자 (匹子) 2024. 12. 1. 10:29

선생님 로빈 선생님 2

박설호

 

서로 자네의 라 보에시 번역은

엉터리야 말의 뜻을 무심코

다른 언어로 슬쩍 건너뛰는 게

능사가 아니지 않나 자네의

글발은 음절과 어휘로 어설프게

연결하는 인위적인 너무나 인위적인

가교일까 바느질 수선일까 다시금

숙고해 보게 그런데 뭐라고

 

자네 독일 문화원 초청으로

한반도를 떠나게 되었다고 변방의

부산에서 살아있는 독일어를 습득할

기회가 별로 없었을 텐데 무슨

뒷배로 시험에 붙었을까 그래도 나만은

알고 있어 자네를 키운 건

팔 할이 잡지라는 사실 말이야 설마

잘 먹고 잘 살려고 서양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는 건

아니겠지 혹시 한 알의 밀알로

한반도 통일에 몸 던지지 않을 텐가

공부해서 남 주어야 한다는

사유(思惟)는 사유(私有)가 아니라는 *

내 강의를 잊지는 않았을 테지

글쎄 배우려는 각오는 갸륵하지만 다른

무지렁이들은 제 살기 바빠서

 

자네 뜻을 직수굿이 따를까 학문이

항문으로 취급되는 세상에 양치기

소년으로 오해당할 거야 괜스레

가족들 고생시키지 말고 함께

야경꾼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때 자네 역시

막힘없이 피어나는 우주의 꽃

물론 눈 위의 호랑이 포효(咆哮)하며

유라시아의 벌판을 마구 헤집는

 

노여움의 열정 모르는 바 아니야

세상은 사시사철 얼어붙은 감방 서로는

남쪽의 푸른 나무토막 들고 나는

북쪽의 붉은 나무토막 들고

깨어나라고 거듭 일어나라고 마치

성배와 같은 딱딱이 두드리면서

세계의 유치장에서 통방(通房)하는

야경꾼으로 재회할 수 있을까

 

...........................

 

 

* 윤노빈: 신생 철학, 학민사, 증보판 2003, 262쪽을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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