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5. 개별 사물, 혹은 본질로서의 실체: 우리가 물질의 개념을 이러한 카테고리로 해명할 때, 상기한 문제는 중요한 사항으로 밝혀질 것입니다. 물질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아직 아닌 현존재를 모든 존재로 변화시킵니다. 이는 바로 “형태εἶδος”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물질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가능성을 실행하는 실체 δυνάμει”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질은 불확정적인 무엇이므로, 실체일 수는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해명합니다. “‘소재 ὕλη’는 가능성에 따라 활동한다. 왜냐면 그렇게 해야 형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소재는 형태로 드러난다.” (Ari, 1989: 1050a, 10).
여기서 물질은 소재와 결착해 있는 존재로 파악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소재의 본질을 고려하면 다음의 사항을 생략할 수 없습니다. 즉 모든 것이 하나의 첫 번째 원칙, 혹은 여러 첫 번째 원칙에 의해 출현한다는 사항 말입니다. 같은 소재는 모든 것을 형성하게 하는 원칙에 기초하지만, 모든 개별적 사물을 위한 하나의 고유한 소재가 존재합니다. 말하자면 다양한 사물은 움직이는 원인에 의해서 하나의 같은 소재에서 파생된다고 합니다. “변화하는 무엇은 일부 자연적으로, 일부 인위적으로 그리고 일부 자발적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변화하는 모든 것은 어떤 무엇의 작용으로 변화한다. 여기서 말하는 어떤 무엇은 ‘모든 카테고리’를 가리킨다고 나는 생각한다.” (Ari. 1989: 1232a, 12ff). 변화하는 모든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간에 하나의 소재 (소재로서의 물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모든 것은 가능성을 지니거나, 가능성을 지니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모든 개별적 사물에 도사리고 있는 소재라고 합니다.
요약하건대 “실체οὐσία”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한편으로는 개별적 사물로서의 주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적 사물의 본질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개별적 사물의 주체를 형성하는 토대로서의 “히포카이메논ὑποκείμενον”은 기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때 기체는 형태의 원인에 기초하는, 개별적 사물 속의 소재 원인을 가리킵니다. 소재는 언어논리의 측면에서는 술어의 마지막 발언의 주체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존재론적 측면에서는 모든 실존을 관장하고 다스리는 무엇을 가리킵니다.
6. 스토아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좌파의 산출하는 자연: 자고로 본질을 구명하는 작업이야말로 모든 형이상학의 과제일 것입니다. 스토아 철학은 논리학과 존재론의 측면에서 자유에 관한 사고를 해명하려고 했습니다. 자유에 관한 근본 문제를 밝히는 일이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첩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합당한 삶을 위해서는 스토아학파에 의하면 세 가지 영역을 서로 중개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물리학, 논리학 그리고 윤리학을 지칭합니다. 이러한 세가지 학문을 천착하기 위해서는 스토아학파 사상가들은 무엇보다도 자연의 법칙성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세 아라비아의 철학자들은 스토아학파의 사상과 신플라톤주의를 수용하여, “산출하는 자연natura naturans”과 “산출되는 자연natura naturata”을 서로 구분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들 사상의 혁신적 촉수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관찰 방식에 있어서 이른바 과정의 특성이 드러나는데, 이는 스토아학파가 말하는 자유의 개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비켄나와 아베로에스는 물질적 변화의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두 가지 사항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물질의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특징이며, 다른 하나는 실체의 개념을 좌시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가능성을 지닌 존재δύνάμει ὅν”보다도 “가능성으로 향하는 존재κατά το δυνατόν”을 더욱 강조했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블로흐는 다음과 같은 물음에 봉착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재는 블로흐가 주장한 대로 수동적 관점에서 이해되는 것일까요? (Bloch LdM: 121). 블로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원래 소재는 관념 이론의 주체가 아니다. 그렇지만 주체는 물질 이론적 관점에서 고찰할 때 소재에 해당한다.” (Bloch LdM: 123). 이로써 드러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항입니다. 즉 물질은 처음에는 가능성의 기체로 이해되었지만, 가능성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 우리는 기체가 적극적 역동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개념이 블로흐에 의하면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수동적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7. 조르다노 브루노가 파악한 자연과 물질: 아베로에스는 아부 술라이만알-시지스타니 (Abu Sulayman al-Sijistani, 832 – 1000)에게서 적극적 특징을 지닌 물질 개념을 찾아내었습니다. 그의 『두 편의 물리학 해설 Commentarium in II librum physicorum』에서 산출하는 자연의 개념이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BWB: 379). 여기서 아베로에스는 스코투스 에리우게나Scotus Eriugena가 처음 언급한 창조적인 물질이라는 개념을 과감히 도입하고 있습니다. 물론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 점에 착안하여 어떤 적극적 물질을 구명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왜냐면 절대적 신의 존재가 그에게는 더욱 중요한 관건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토마스는 물질의 적극적 창조의 특징을 싫든 좋든 무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르다노 브루노는 스콜라 철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아라비아 철학자들이 추적했던 창조적 물질의 중요한 핵심 사항을 밝히려고 했습니다. 물질은 브루노에 의하면 항상 같은 존재로 그리고 항상 결실을 안겨주는 존재로 머물러야 합니다. 그것은 유일한 실체의 원칙으로서 항상 존재하는 존재로서 이해됩니다. 이에 비해 모든 형태는 오로지 물질의 다양한 개별적 특징으로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것들은 브루노에 의하면 출현한 다음에 사멸하고, 중단된 다음에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따라서 모든 형태는 하나의 원칙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몇몇 개체들은 자연 속에서의 형태적 관련성을 숙지하고 있으므로 –아리스토텔레스와 이후의 사상가들에게서 유사한 내용이 발견된 바 있듯이- 자신을 차단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형태들이 물질 가까이서 드러나는 우연적인 특성이며, 행위자 내지는 “엔텔레케이아”로서의 우선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것들은 실체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며, 오히려 실체 그리고 자연에 근접해 있는 사물들이라고 합니다. (Bruno,: 60).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 좌파에 속하는 무어 사람인 아비케브론은 이러한 것들 역시 물질이라고 천명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아비케브론에 의하면 하나의 “필연적이고 영원한 신의 원칙이고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원칙”이라고 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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