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1. 죄의식이 오틸리에를 죽음으로 몰아가다.: 모든 것은 에두아르트의 의지대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친애하는 C, 사랑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타주의 내지는 죄의식을 저버려야 한다고 누가 말했던가요? 오틸리에는 그와의 결혼을 끝내 포기합니다. 아이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가 죽은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 탓이니, 스스로 끔찍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미는 에두아르트와 결혼을 포기하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에두아르트는 그미의 이러한 결심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간에 오틸리에의 의사를 되돌려야 했습니다. 불같은 성격의 에두아르트는 그미를 어느 여관에 감금해버립니다. 그렇게 해야만 사랑하는 임이 마음을 돌릴 것 같았습니다. 오틸리에는 바로 그 순간부터 말문을 닫으면서 식음을 전폐합니다. (박광자: 42). 그미는 결국 굶주림을 참다가 아사(餓死)하고 맙니다. 자신에게 파고드는 거대한 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면 성자가 되어야 한다는 게 그미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죽은 뒤에 오틸리에는 성녀로 추앙받습니다. 몇 달 후에 에두아르트 역시 사망하고 맙니다. 두 사람의 시신은 성의 예배당 옆에 안치됩니다.
12.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상: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 가운데에는 긍정적 인물이 많습니다. 첫째로 샤를로테는 집안의 모든 일을 관장하고 판단하는 영리한 여성으로 등장합니다. 이성적으로 자신을 억제하는 샤를로테는 가장의 역할을 담당하는 여성이며,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여성입니다. (임홍배: 6). 이는 성 역할에 있어서 새로운 역할을 시사해줍니다. 샤를로테는 여성이 남성들보다 더 뒤떨어진 존재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그렇기에 그미는 여성들이 힘을 모아서 여성들의 권익을 도모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샤를로테의 딸, 루치아네에게서돟 너타납니다. 루치아네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루치아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집사와 같이 행동합니다.
둘째로 스스로 발전하면서 독자적인 주체로 행동합니다. 그미는 죽음마저 스스로 선택하며, 성녀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미는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자신의 정직성을 드러내며, 결국 자신이 추구해야 할 것은 일시적 안일이 아니라, 희생을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렇기에 오틸리에는 오늘날 여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슬기롭게 살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좋은 본보기를 전해주는 인물입니다. (김용민 133). 이 점에 있어서 오틸리에 그리고 샤를로테는 특히 에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인물들입니다.
13. 사랑의 열정을 주어진 현실에서 실현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의 사항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즉 문화적 질서 그리고 인간의 기본적인 격정 사이의 갈등은 도저히 해결될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괴테는 오틸리에의 운명을 통해서 다음의 사항을 독자에게 전합니다. 즉 오틸리에의 도덕적인 지조는 결코 에두아르트에 대한 지속적 사랑의 열정과 하나로 결합하지 못한다는 사항 말입니다. 그렇지만 괴테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내세웁니다. 인간은 최소한 자신의 열망과 열정을 포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벗어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는 마치 책임 회피 내지는 변명같이 느껴집니다만, 어쨌든 괴테는 최소한 그렇게 믿었습니다.
친애하는 C, 화학적 요소에 반영된 자연법칙은 인간의 애정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즉 인간의 도덕적인 지조는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열정과 결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화학의 경우 모든 것은 자연법칙에 의해서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지만, 인간의 애정의 경우는 과감한 포기를 통해서 어떤 정신적 자유를 실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체념과 포기의 원칙은 괴테의 후기 작품에서 중요한 자세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그리고 「서출의 딸」 등에서 나타나듯이 열정과 갈망의 힘과는 대비되는 생산적인 모델이라고 합니다.
14. 도덕적 질서와 주관적 열정: 그렇다면 우리는 도덕적 질서를 위하여 주관적인 열정을 마냥 포기하면서 살아가야 할까요? 루소는 이 질문에 대해서 단호한 어조로 그럴 수 없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괴테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열정이라는 자연법칙과 도덕성의 계명은 괴테의 문학에서 동등한 무엇입니다. 괴테에게는 도덕적 질서 그리고 주관적 열정 모두 중요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괴테 문학이 지니는 “균형으로서의 형식” 내지 양비론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습니다.
15. 친화력 극복될 수 없는 영원한 비밀: 이와 관련하여 샤를로테가 도덕적 질서라는 이유로 사랑을 포기하는 태도는 열정의 힘만큼이나 끔찍하게 작용합니다. 친화력이라는 자연법칙의 강요는 오틸리에가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완전히 극복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미와 에두아르트 사이의 마력적인 결합의 힘은 그미의 결심으로 인하여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C., 우리가 중시해야 하는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사랑의 열정은 괴테의 문학에서는 항상 마력적인 것 악령과 유사한 무엇으로 나타난다는 사항 말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벌컥 뒤집는 혁명적 사건과 관련되지요. 가령 프랑스 혁명 그리고 나폴레옹의 전쟁 등은 괴테의 눈에는 바로 열정이라는 자연법칙 속에 도사린 악령의 사건으로 비쳤습니다. 악령은 한마디로 괴테 문학의 영원한 비밀일지 모릅니다.
참고 문헌
- Walter Benjamin: Goethes Wahlverwandtschaften. In: Rolf Tiedemann, Hermann Schweppenhäuser (Hrsg.):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Bd. I, 1. Frankfurt 1974, S. 125–201.
- Goethe, Johann Wolfgang von: Die Die Wahlverwandtschaften, Stuttgart 2021.
-- Jens, Walter (hrsg.): Kindlers Literaturlexikon, Bd. 6, München 2001, S. 520 – 524.
- 괴테, 요한 볼프강 폰: 친화력, 오순희 역,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3.
- 김용민: 생태주의자 괴테, 문학동네 2019, 119 – 168쪽.
- 박광자: 친화력의 오틸리에, 괴테 연구 제15권, 2003, 31 – 51쪽.
- 서송석: 괴테의 친화력에 나타난 매체로서의 사랑, in: 외국문학 연구, 75권, 2019, 177 - 202.
- 임홍배: 사회 소설로서의 괴테의 친화력 (2), 이상화된 여성성?, 괴테 연구, 22권, 20.
'40 근대독문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박: (2) 장 파울의 '거인' (0) | 2024.10.19 |
---|---|
서로박: (1) 장 파울의 '거인' (0) | 2024.10.19 |
서로박: (2) 괴테의 '친화력' (0) | 2024.10.14 |
서로박: (1) 괴테의 '친화력' (0) | 2024.10.14 |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 배 Das Narrenschiff' (0) | 2024.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