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6. 부정과 결핍으로서의 아님: 자금까지 우리는 아직 아님의 개념 속에 도사린 네 가지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블로흐의 “아님” 그리고 이와 관련되는 기본 개념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아님”이란 말 그대로 거기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님”은 “거기”를 “부정”하므로, 단순히 없는 게 아니라, “거기 없다”가 실존하는 셈입니다. 블로흐는 이와 관련하여 『유토피아의 정신』에서 아님에 관한 문제를 신과 선악의 문제와 결부시켜서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Bloch, GdU 2: 445.)
“거기 없음”은 내부적으로 없음을 감당하지 않고, 오히려 어떤 무엇의 “거기 있음”과 밀접하게 연계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모든 생명체의 충동 능력은 이러한 “아님”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충동, 욕망, 추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고픔을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충동의 에너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어떤 소유하지 못한 무엇으로서의 어떤 “거기 없음”이다. 그것은 하나의 “아님”일 뿐, 무 내지는 “없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님”은 무엇으로 향한 모든 움직임의 출발이며, “없는 것” 자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7, “아님”은 “없음”과는 차원이 다르다. 블로흐는 우선 “아님”과 “없음”을 가능하면 철저하게 구분합니다. 이 두 개념 사이에는 의미 기능의 규정에 관한 모험이 모조리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아님”은 근원적으로 공허한 것, 결정되거나 정해지지 않은 것, 시작을 위한 출발 등에서 발견됩니다. 이에 반해서 “없음”이란 정해진 무엇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부단한 노력이 오랫동안 차단된 과정 그리고 결국 좌절로 인한 실패 등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없음”의 행위는 “아님”이 행하는 생산적인 충동 행위가 아니라, 어떤 파괴하는 일입니다. (희망의 원리 D: 630쪽 이하.)
“아님”이란 물론 텅 빈 상태이지만, 블로흐는 처음부터 공허함을 떨쳐 버리려는 충동으로 이해합니다. 그것은 “공간 공포 horror vacui”로서 무엇보다도 배고픔과 궁핍함에서 비롯합니다. 이 점으로 미루어 우리는 확정적 기본 개념들 (기본적 특성)이 오로지 정서 이론에 의해 서서히 해명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면 존재론의 뿌리 밑으로 깊숙이 뻗어 내려가는 것은 정취 없이 조립된 사고가 아니라, 오직 정서이기 때문입니다. “아님”, “없는 것”, “모든 것” 등과 같은 그 자체 추상적으로 보이는 단어들은 배고픔, 절망 (파멸), 확신 (구원) 등의 구분과 함께 제각기 연결되어 있습니다.
8. 존재론의 네 가지 기본 개념: 블로흐는 존재론적 기본 개념들을 “아님”, “아직 아님”, “모두 없음” 그리고 “모두 있음”으로 표기합니다. “아님”은 스스로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모든 것의 강렬한, 결국 “관여의 특성을 지닌 근원 der interessehafte Ursprung”, 다시 말해 실제 사실과 결부된 실현하는 무엇으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아직 아님 das Noch-Nicht”은 물질적 과정 속의 경향을 특징짓는데, 스스로 과정으로 화하여 그 내용을 겉으로 드러내도록 노력하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모두 없음Nichts”과 “모두 있음 Alles”은 이러한 경향의 내부에 도사린 잠재성으로 규정될 수 있는데, 제각기 부정적 긍정적 요소로서 물질적 과정의 가장 앞의 영역에 속합니다. (Bloch, PH: 357).
그러나 이러한 잠재성은 다시금 오직 강렬한 근원의 내용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것은 굶주림 속에서 의도했던 욕망의 어떤 충족 상태를, 이러한 관심사의 성취된 만족 상태와 연결됩니다. 굶주림과 가난을 통해 계속 전달되는 것은 블로흐에 의하면 “공간 공포horror vacui”로서의 텅 빈 상태입니다. 이것은 존재의 직접적 사실의 출발에 해당하는 이른바 영(零)의 시점으로 명명될 수 있습니다. “공간 공포”는 가장 강력한 실현의 동인(動因)이며, 사실을 정착하게 하는 동인입니다. 이로 인하여 세계는 움직이게 되고, 사실 내용의 분배를 위한 실험 공간으로 활용되는 셈입니다.
9. “현존재”는 아직 “존재”로 거듭나지 않고 있다.: 모든 현존재의 시작을 위한 출발은 궁극적으로 아직 중개되지 않은 어두움 내지는 지금의 (혹은 방금) 처해 있는 순간의 어두움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근원의 어두움은 어떤 중개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서, 모든 존재의 지속적인 사실 내용 혹은 가까움 속에서 불변하는 것으로 머뭅니다. 블로흐는 여기서 말하는 “사실 내용”을 매 순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무엇으로 이해합니다. 세계 역시 직접적 현존 속에서 매 순간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합니다. 이런 식으로 지속되는 창조를 통해 세계가 보존되고, 세계의 과정 역시 존속되는 것입니다. 시작을 위한 출발, 출발의 시점은 근원의 세계로서의 토대인데, 바로 지금과 여기 주어져 있습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는 바깥으로 향해 일탈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공간으로부터 무언가를 밖으로 자극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근원은 아무런 이유 없이 밖으로 돌출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님”은 역사를 충동하고 역사의 과정에 자극을 가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직 역사 자체로 변모하지는 못했습니다. 근원은 초시간적으로 작용하는, 또한 자신 바깥으로 돌출하지 못한 핵심적 “익명의 존재Inkognito”로 머물 뿐입니다. (Bloch, PH: 1385). 모든 순간은 스스로 드러나지 않은 채, 세계의 시작 앞에 서성거립니다. 시작은 순간 속에서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사실 내용의 토대에는 불확정적인 “아님”이 버티고 있습니다. 모든 순간은 이로써 잠재적으로 세계가 완성되는 날짜 그리고 세계의 내용을 담은 나날을 생생하게 담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불로흐는 세계를 하나의 가능한 구원의 실험실이라고 명명했습니다.
(3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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