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서로박: (2) 시험은 인성과 창의력을 망친다

필자 (匹子) 2024. 3. 4. 10:18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서울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시험이란 교육의 결과에 대한 테스트가 아니라, 교육의 과정에서 필요한 측정 방식입니다. 그렇기에 시험 답안지는 교육의 과정에서 자신의 교육 방법을 수정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자료일 뿐, 학생들의 최종적 능력 평가의 수단으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교사는 미리 하나의 정답을 사전에 설정해놓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의 유형이 객관식인가, 단답형인가, 주관식인가? 하는 물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시험 답안지는 교육 평가의 유일한 자료로 채택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시험은 학생들의 욕구, 문제 제기의 능력을 처음부터 무시하거나 좌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정답을 유도하는 것은 교사의 의도이지 학생들의 관심사를 파악하기 위한 평가 방식이 아닙니다. 창의력은 학생들의 궁금증에서 싹이 틉니다.

 

7.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타인에게 권하지 말라. 어쩌면 우리는 시험 제도를 통해서 자식들을 심리적으로 괴롭히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하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하기 싫었던 일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은 매우 나쁜 일입니다. 우리는 돌이켜보면 시험의 과정을 통해서 심리적으로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던가요? 그렇지만 즐거운 일을 행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뇌에는 신경전달물질이 활성화되기 시작합니다. 즐거운 경험은 기억 속에 오래 남습니다. 우리는 나쁜 기억 불쾌한 경험을 뇌리에서 지우고 싶어 합니다. 그 이유는 하기 싫은 일을 행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짜증이 나기 때문입니다.

 

교육 심리학의 대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의 즐거움 Flow. Das Geheimnis des Glücks』에서 스스로 행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게 얼마나 교육적 효과가 대단한지를 피력한 바 있습니다. 스스로 행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 - 이게 교사의 임무가 아닐까요? 따라서 교육자라면, 시험보다도 더 바람직한 교육 평가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야 할 것입니다.

 

8. 시험은 당락을 위한 수단이다. 어째서 대한민국이 이다지도 시험을 중시하게 되었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자명합니다. 시험은 누구를 당선시키고, 누구를 탈락시키기 위해서 마련된 것입니다. 그것은 응시자를 구분하고, 등수로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험은 합격자와 탈락자를 양산하기 위한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래서 시험에 합격한 자는 자신을 엘리트로 여기는 이기주의자가 되어, 사회에서 높은 직책을 차지합니다. 시험에 불합격한 자는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상처 입으면서,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자학합니다.

 

자학하든 자만하든 간에, 시험 제도는 인간성을 황폐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불어 사는 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독일의 교육자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는 교육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습니다. "교육의 진정한 평가는 '무능력했던 과거의 나'와 '능력을 지닌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능력 그리고 타인의 능력 사이의 차이가 아니라, 나의 과거의 능력과 나의 현재의 능력 사이의 차이를 깨닫는 일입니다.

 

9. 문제 해결의 능력, 그리고 자발적인 깨달음: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는 일본의 교육제도를 그대로 수용하여, 여기에다 미국식 교육제도를 혼합시킨 것입니다. 학문적 폐쇄주의는 일본 강점기에서 수용한 것이고, 무한대의 경쟁 그리고 엘리트 중심주의는 미국에서 수용한 것이지요. 두 가지 제도 모두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21세기 현실에 더이상 통용될 수 없는 제도입니다. 경쟁 대신에 오히려 협동과 배려가 더욱 중요한 덕목이라고 여겨집니다. 한국의 교육은 고등교육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국제 경쟁력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중등 과정의 교육에서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암기 능력과 계산 능력입니다. 이러한 능력에 대한 평가는 시험을 통해 가능하지만, 창의력, 비판 능력은 시험 제도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특히 문제 해결 능력은 대학에서의 토론괴 실습을 통해 비로소 발전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피교육자의 배우고 깨달으려는 의지입니다. 이러한 의지는 결코 시험을 통해서 강화될 수 없습니다.

 

미국의 학제는 시험을 중시합니다. 이에 비해 유럽의 학제는 약간 다릅니다. 인문 사회과학 대학생들은 발표와 토론을 통해서 결과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자연과학 계열의 대학생들은 실험과 실습을 거친 다음에 결과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기계공학과 학생들이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면, 새로운 기계 하나를 새롭게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게 청소기든 무엇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필자가 시험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필자는 그저 시험 외의 다른 평가의 방안을 함께 고려하자고 요구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시험을 대체하하거나 시험과 병행하는 평가의 방안을 찾는 일입니다. (1) 자신의 의견 발표, (2) 이에 대한 반론 제기 그리고 이어지는 토론, (3) 결과물로서의 하나의 제품 내지는 결과 보고서의 완성 등을 생각해 보세요. 어떤 문제의 제기,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 스스로 깨닫는 자기 인식 –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필자는 교육의 ”전체 목표의 부분pars pro toto”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