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박설호: (3) 희망의 원리, 제 1차 강의

필자 (匹子) 2024. 2. 23. 13:22

10. 예견하는 의식으로서의 “백일몽”: “낮꿈”은 예견하는 의식으로서 하나의 전투적 낙관주의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희망은 미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가능성, “새로운 무엇Novum”, 유토피아 등의 개념들과 유사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구체적 형상으로서의 “낮꿈”이 처음부터 희망의 소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블로흐는 희망이라는 기대정서를 명확하게 구명하기 위해서,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BC. 384 - BC. 322)의 개념인 “잠재적 역동성δυνάμειν”, 마르크스 (Karl Marx, 1818 - 1883)의 11개의 포이어바흐 테제 등을 차례로 분석합니다.

 

“잠재적 역동성”은 어떤 변모의 가능성을 미리 안고 있는 엔텔레케이아의 속성입니다. 마르크스가 제기한 11개의 포이어바흐 테제는 무엇보다도 “세계의 변화”와 관련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변화는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행위로 이해되기 때문에 필연적 관심의 대상입니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 (Ludwig Feuerbach, 1804 - 1872)의 종교 비판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기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유물론의 가능성을 해명하려 했습니다. 이로써 의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세계의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11. 살고 있는 순간의 어두움Dunkel des gelebten Augenblicks: 이러한 용어들은 계급 사회와 결부된 근본 문제에 해당합니다. 살고 있는 순간의 어두움은 직접 마주치는 현재에서 인지됩니다. 인간은 현재의 순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의 기본적 동인이 무엇보다도 배고픔 속에 차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살고 있는 순간 우리는 이해 그리고 관심에 얽혀서 자신과 세상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합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직접적인 현재는 우리에게 어둡고 흐릿하게 다가옵니다. 종용록(従容録)에 기술된 바 있듯이 참다운 물에는 향기가 없고, 참다운 빛은 환한 빛을 퍼뜨리지 않습니다. (真水無香 真光不輝) .

 

대부분 인간은 지금 여기에서 굶주림 그리고 결핍을 인지합니다. 이때 의식되는 것은 굶주림을 떨치기 위한 앞걸음이며, 여기서 진정한 미래로 향하는 전선이 형성됩니다. 이를 위해 작동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근원으로서의 지금이라는 “순간의 어두움”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객관에 합당한 배경으로서의 개방성”입니다. 후자의 개방성은 가령 어떻게 하면 실제 현실에서 굶주리지 않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관련됩니다. 이것들은 예견하는 의식의 두 개의 양극성입니다.

 

12. 구성될 수 없는 질문die unkonstruierbare Frage: 더 나은 미래를 궁급해 하는 자는 순간적으로 어떤 예견하는 상을 떠올립니다. 이러한 기이한 상은 하나의 질문 속에 느끼는 기이한 경험입니다.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구성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이때 우리는 기이한 순간의 어두움 속으로 다시 한번 침잠합니다. 현존재의 수수께끼는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매듭으로 남아 있습니다. 살고 있는 순간의 어두움은 두 가지 목표를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마치 신을 파악하려는 신비적 자세와 같은 태도를 가리키며, 다른 하나는 스스로 발전을 거듭하는 물질의 핵심을 지칭합니다. (Burghart Schmidt: Ernst Bloch, Stuttgart 1985, S. 55.)

 

신을 파악하려는 애타는 노력 그리고 물질의 핵심을 꿰뚫어보려는 직접적인 체험은 지금 여기에서는 여전히 불가능합니다. 블로흐는 이러한 상태를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나는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나를 소유하지 못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은 “오늘을 즐겨라 Carpe diem.”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오늘이라는 과일을 꺾어서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계급 사회는 우리가 직접 만드는 상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합니다. 참된 노동의 가치는 상품과 가격에 의해서 은폐되어 있으며, 노동의 가치를 돌러받지 못하게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내는 충동력을 미리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저 혁명의 순간 수직으로 내리치는 놀라운 빛만을 뒤늦게 바라볼 뿐입니다

 

13. 확장 형체 Auszugsgestalt: 구성될 수 없는 질문은 블로흐에 의하면 대답을 추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유효한 질문일 수 없습니다. 새로운 사고 그리고 새로운 갈망은 질문과 갈망의 근원을 거리낌 없이 박차고 나가야 합니다. 블로흐는 『유토피아의 정신』에서 질문과 희망을 같은 맥락에서 해명하였습니다. 즉 질문은 질문에 관한 질문으로 계속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질문은 하나의 구성적 형체로 확정될 수는 없습니다. 질문은 어떤 바람직한 구상 형체를 추구하지만, 가능성이라는 끝없는 요청에 따라 구상적 형체의 틀 속에 고착되지 않습니다.

 

구성될 수 없는 질문은 갈망과 마찬가지로 가능성, 실제의 탈 체제적 희망을 전제로 하는, 토대 없는 인식 행위입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조건이라든가 확고한 확장의 틀을 필요로 하지 않은 채 하나의 흐트러진 놀라움에 의해서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잘문은 필연적으로 객관적 가능성과 접목되어 “확장 형체”로 이어집니다. 확장 형체는 구성될 수 없는 질문이 역사 속에서 집합적으로 나타난 형체라고 정의 내려질 수 있습니다.

 

기실 역사의 기본적 카테고리로서의 확장 형체는 서로 대립하는 형체의 변증법적 변화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역사적 변화는 중간 단계에서 도출되는 결과를 연속적으로 파기하지만, 새로운 형체를 다시 도출해 내어, 그것을 확장합니다. 역사는 마치 강물처럼 끝없이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역사에는 대립과 저항이라는 순간들이 간간이 출현하기 때문입니다. 확장 형체를 고려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생산 과정을 중시할 때 생산의 결과를 망각해서는 안 되며, 생간의 결과를 중시할 때 생산의 과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14. 가능성의 카테고리: 블로흐는 예견하는 의식을 고려하면서, 전선, 새로운 무엇, 최종적인 무엇 등을 도입합니다. 이것들은 미래지향적 특징을 지닌 카테고리입니다. 뒤이어 언급되는 것은 바로 가능성이라는 카테고리입니다. 블로흐는 일차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능성 개념을 언급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다른 가능성의 개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하나는 “가능성 속에 있는 현존재das In-Möglichkeit Seiende”, 즉 “잠재적 디나미스δύνάμει ὅν”이머, 다른 하나는 “가능성으로 향하는 현존재das Nach-Möglichkeit Seiende”, 즉 “역동적 디나미스κατά το δυνατόν”를 가리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성 속에 역동적 특징과 잠재적 특징이 자리한다는 것을 예리하게 꿰뚫어보았던 것입니다. (Siehe Ernst Bloch: Das Materialismusproblem, Frankfurt a. M. 1985, S. 145.) 달리 말하자면 전자는 차가운 전류로, 후자는 따뜻한 전류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전자가 말하자면 국가 사회주의를 정치경제학적으로 냉정하게 분석하는 잠재적 디나미스의 과업이라면, 후자는 찬란한 미래를 열광적으로 선취하는 역동적 디나미스의 과업을 가리킵니다. 특히 후자는 시적이며 예술적인 작업을 통해서 진척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블로흐에 의하면 예측된 상 내지는 “선현의 상 Vorschein”이라고 합니다.

 

15. 가능성의 네 가지 계층: 블로흐는 가능성을 네 가지 계층으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형식적으로 가능한 무엇das formal Mögliche”입니다. 이는 형식 논리적 차원에서 아무런 대입이 발생하지 않는 가능성을 가리킵니다. 둘째는 “사실적으로 객관적으로 가능한 무엇das das sachlich-objektive Mögliche”입니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추론되는 인식 이론의 척도에 부합하는 가능한 무엇을 지칭합니다. 셋째로 “샤실 및 객관에 합당한 가능한 무엇das sachhaft-objektgemäß Mögliche”입니다. 이것은 사실과 객관에 근거하는 개방적인 특징을 지닌 가능성인데, 주로 대상 이론에 의해 가능한 무엇으로 확인된 것을 지칭합니다.

 

네 번째는 “객관적 현실적 가능성das objektiv-real Mögliche”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물질이 산출해내는 과정에서 작용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블로흐는 존재와 의식을 공통으로 물질이라는 거대한 개념 속에 편입하여 설명했는데, 물질 자체가 객관적 현실적 가능성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물질 속에는 잠재성과 경향성이 자리하는데, 이를 촉진하는 것이 바로 객관적 현실적 가능성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