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박설호: (1) 희망의 원리, 제 1차 강의

필자 (匹子) 2024. 2. 22. 11:57

1. 오늘날 희망은 어느 정도 필요한가?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사상가,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 1885 - 1977)의 『희망의 원리』:. 한반도의 가치 질서는 “책”이 아니라, “돈”인가요? 사람들은 많은 돈을 버는 재벌, 스포츠인 그리고 연예인에게 선망의 눈길을 보내지만, 지혜로운 철학자라든가 착하고 풍요로운 감정을 지닌 시인과 예술가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칼부림이 자행되고, 보이스 피싱 그리고 전세 사기가 횡행하는 이곳은 돈의 광란이 기승을 부리는 헬-조선이라고 합니다. 나아가 사람들은 과학 기술만 맹신합니다. 기술은 우리에게 포만한 삶을 안겨준다고 거짓 선전을 일삼습니다. 대부분 사회주의의 이상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역사의 마지막에서 20세기의 힘들고도 희망에 가득 찬 시기를 떠나보내고, 우울하게 밤을 지새우는지 모릅니다. 다수의 사람은 마치 로마 후기의 군인들처럼 찬란했던 이전의 문화를 망각하고, 현세의 목욕탕 속에서 아무런 상념 없이 잠을 청합니다. 그래도 소수의 사람이 미래 없는 세태를 완강하게 거부하려고 하는 것은 다행입니다. 현재 올바른 소수는 돈에 의해서, 잘못 판단하는 다수에 의해서 밀려나는 실정입니다. 그렇지만 공정하고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태도는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의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미세 먼지, 기후 변화 등의 문제는 또 다른 갈등과 난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2. 더 나은 삶에 관한 꿈”에 관한 현상적 서술: 『희망의 원리』는 비유적으로 말해서 주어진 시대의 아픔을 치료하는 데에 꼭 필요한 “당의정” 알약이 아닙니다. 그것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거름이며, 한의학에서 말하는 보약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블로흐의 명저는 특정 문제를 명징하게 건드려 해결하게 하는 지침서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진 사상적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갈망의 근원을 파악하게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떠한 사상과 감정을 견지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숙고할 수 있습니다. 원래의 책 제목은 “더 나은 삶에 관한 꿈Traum vom besseren Leben”이었는데, “희망의 원리”로 바뀌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히틀러의 파시즘 폭력을 피해 40년대 초에 미국에서 착수되어, 약 1947년경에 탈고되었습니다. 건축학을 전공한 아내, 카롤라 블로흐 (Karola Bloch, 1905 - 1994)가 밖에서 돈을 버는 동안, 블로흐는 아들을 돌보면서 키우면서 대저작의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블로흐는 아주 드물게 재미 독일인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곤 하였습니다. 언젠가 100달러의 강연료를 받았는데, 블로흐는 이를 “해외로 망명한 독일 거지에게 베푸는 적선”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Vgl. Ernst Bloch: Ins Gelingen verliebt sein, Aphorismen und Lebensweisheiten, München 2000, S. 83.) 그러나 『희망의 원리』는 탈고된 직후에 즉시 간행되지 않았습니다. 친구인 신학자 폴 틸리히 (Paul Tillich, 1886 - 1965)가 주선하여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에서 간행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1949년에야 비로소 구동독에서 세 권으로 간행되었습니다.

 

3. 유토피아의 공간은 가능한 구원의 실험실이다.: 블로흐는 주로 미래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 철학자입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학문이 주로 과거 내지는 과거지향적 방향으로 향했다고 비판합니다. “과거에 무엇이 존재하고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하는 물음은 역사학의 차원을 넘어서, 인문학 전역에 퍼져 있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태초에 진리가 존재하는데, 인간은 이를 다시 기억하면 족하다고 일갈했습니다. 이러한 “재기억ἀνάμνησις”의 이론은 블로흐에 의하면 반동적 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이후에 헤겔이 미래를 하나의 “곡피” 내지는 “뜬금없는 신기루”로 파악하고 하찮은 것으로 취급한 데 비하면, 블로흐는 인간의 갈망 속에 자리하는 미래지향적 의식, 바꾸어 말해 과거의 알파 대신에 미래지향적인 최종적 오메가에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이를테면 희망은 블로흐에 의하면 더 나은 삶에 관한 꿈입니다. 그것은 낮꿈이며, 가능성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갈망, 유토피아라는 용어로 표현됩니다. 유토피아는 블로흐에 의하면 지상에서 발견되지 않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 그리고 물질 속에 공통으로 자리하는 에너지 내지는 동인입니다. 이러한 에너지의 힘 내지는 동력이야말로 인간의 내면에 그리고 물질의 내부에서 스스로 변화하게 하고 자신을 변모하게 하는 매개체입니다. 블로흐는 인간을 갈망하는 존재로 파악했으며, 세계 자체를 한마디로 “가능한 구원의 실험실Laboratorium possibilis salutis”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마치 물질 속에 변모를 촉진하는 잠재적 동인, 즉 잠재성이 자리하고 있듯이, 인간의 내면에도 더 나은 삶을 이룩하려는 갈망의 심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화는 이러한 잠재적 에너지에 의해서 축조된 것입니다. 우리가 머무는 세상의 문 앞에는 “고난을 거쳐서per aspera”라는 팻말이 붙여져 있습니다. 세계를 변화시키도록 작용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창의적 노동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노력의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는 “찬란한 별로 향해 ad astra”, 바꾸어 말하면 마르크스가 말한 “자유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4. 『희망의 원리』의 구조, 제1장: “갈망의 백과사전”인 『희망의 원리』는 도합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보고: 작은 낮꿈들, (2) 토대 설정: 예견하는 의식, (3) 이행: 거울 속의 갈망의 상 (진열장, 동화, 여행, 영화, 연극 무대), (4) 구성: 더 나은 세계의 개요 (의학적 치료, 사회 시스템, 기술, 건축, 지리학, 예술 속의 관점, (5) 동일성: 성취된 순간의 갈망의 상 (도덕, 음악, 죽음의 상, 종교, 새로운 자연, 최고 선). 제1장은 대부분의 도입부가 그러하듯이, 작은 단상들로 구성됩니다. 여기서 블로흐는 인간의 세대마다 달리 인지되는 크고 작은 갈망을 가벼운 수필 형식으로 서술합니다. 텍스트는 얼핏 보면 산만한 것 같으나, 내적으로 흐르는 맥락은 이후의 논의에 대한 전제 조건으로 작용합니다.

 

자고로 인간은 끝없이 무언가를 갈구하는 동물입니다. 어린이는 어딘가에 자신을 숨기면서 어떤 심리적 안온함을 느낍니다. 청소년들이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는데, 이는 새로운 무엇을 접하고 싶은 내적 욕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모욕당하는 게 가장 쓰라리게 다가오고, 거대한 격정의 사랑을 꿈꿉니다. 나이가 들게 되면 인간은 마치 활기 없는 말(馬)처럼 지나간 청춘을 떠올리고 후회의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대부분은 사악한 짓을 저지르기에는 겁이 많고, 선을 베풀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공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학 그리고 주위의 미운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정서가 장년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나이든 다음에 찾아오는 마음가짐은 편안해지고 싶은 욕구입니다.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누구도 노인으로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노년기는 인간에게 통찰력을 가져다 줍니다. 볼테르가 말한 바 있듯이, 노년기는 볼테르가 말한 바 있듯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겨울처럼 황량하지만, 학자에게는 포도주를 담그는 시가입니다. 이렇듯 한평생의 갈망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욕구입니다. 이러한 욕구는 소시민의 마음속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지만, 욕구를 부추기는 사회경제적 토대를 변화시키려는 의지는 드물게 나타날 뿐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