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Bloch 저술

박설호: (2) 희망의 원리, 제 1차 강의

필자 (匹子) 2024. 2. 22. 12:02

(앞에서 계속됩니다.)

 

5. 작은 낮꿈들: 제 2장에서 블로흐는 논의를 본격적으로 개진합니다. 인간의 기대 정서인 희망을 언급하기 위하여, 내면에 도사린 여러 가지의 충동을 추적합니다. 인간은 넓은 의미에서 충동적 존재입니다. “충동은 마치 손수건을 물들이는 것처럼 우리의 얼굴에다 화날 때는 붉게, 질투할 때는 노랗게, 짜증 날 때에는 초록으로” 색깔을 입힙니다. 외로움과 슬픔은 우리의 마음을 새파랗게 질리게 하지 않습니까? 분노, 우울, 불안 그리고 미움은 인간의 네 가지 감정의 유형이지요. (박설호: 호모 아만스. 치유를 위한 문학 사회심리학, 울력 2017, 8쪽 이하.)

 

“노여움mania”은 건조한 열기의 특징을 지니는데, 명상, 복식 호흡 그리고 약물로 어느 정도 다스려질 수 있습니다. “우울melancholie”은 습한 냉기의 특징을 지니는데, 자살 충동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위험합니다. 우울 증세를 떨치기 위해서는 요가, 산책 그리고 예술 작업 등이 도움이 됩니다. (최문규: 감정의 인문학적 해부학, 북코리아 2017, 43쪽 이하.) “미움hysteria”은 습한 열기의 성질에서 비롯하는데, 마사지, 사랑과 성을 충족시킴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불안hypercondria”은 건조한 냉기의 특성으로 나타나는데, 마사지, 근육 이완, 승마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치료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정상적인 신드롬을 치료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주위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6. 성 충동, 권력 충동: 블로흐는 프로이트 (S. Freud, 1856 - 1939)의 “성충동”, 아들러 (A. Adler, 1870 - 1937)의 “개인적인 권력 충동”, “반동적 파시스트”, 융 (C. G. Jung, 1875 - 1961)의 “도취 충동” 등을 비판적으로 언급합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꿈에서 “성 충동Libido”의 흔적을 찾으려 합니다. 성 충동은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습니다. 가령 근엄한 처녀는 성 충동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 경우 도덕적 자아는 성적 욕구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프로이트에 의하면 예술적 창조의 힘에도 리비도가 직간접적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성 충동이 승화되고 순화된 에너지입니다. 이는 예술 작품의 수용하는 사람들의 성 충동을 대리 만족시키는 승화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합니다.

 

알프레트 아들러는 개인 심리학의 차원에서 인간의 욕망을 권력과 결부된 콤플렉스로 구명하려고 합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은 아들러에 의하면 개인적 성공과 권력을 충족시키려는 욕구에서 비롯한다고 합니다. 만약 권력 충동이 원래 의도한 것과는 달리 성취되지 못하면, 이로써 생겨나는 것은 열등 의식이라는 뒤엉킨 감정, 즉 열등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아들러는 인간의 모든 충동을 열등의식과 연결했습니다. 마치 콩팥 하나가 없으면, 다른 콩팥이 몸속에서 두 배로 커져서 기능하듯이, 인간의 충동 역시 억압이나 결핍 속에서 어떤 배가된 형체로 기대 이상의 기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Alfred Adler: Studie über Minderwertigkeit von Organen. Urban & Schwarzenberg, Berlin/ Wien 1907, S. 32.)

 

7. 도취 충동과 자아보존 충동: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의 심리 속에는 심원한 원형이 자리하는데, 이는 원시인들의 의식에서 발견되는 열광과 도취의 특징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이러한 열광과 도취는 원시인들의 토속 문화 내지는 광란의 춤에서 하나의 공통의 무의식으로서의 “원형Archetyp”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원초적 갈망 그리고 그 근원은 원시인들의 문화적 원형 속에 보존되어 있다는 게 카를 구스타프 융의 지론입니다. 그런데 카를 구스타프 융이 추구하는 과거지향적 동경은 내적으로 “피와 토양Blut und Boden”의 정신을 부추기게 합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같은 장소 그리고 같은 혈통에 집중하는 카를 구스타프 융은 블로흐의 견해에 의하면 반동적 파시스트와 다름이 없다고 합니다. 사실 융의 문헌에는 반유대주의의 문장들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블로흐가 고찰하는 충동은 정신분석학의 내용보다 더 포괄적입니다. 블로흐는 성 충동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원초적 충동 가운데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굶주림을 해결하려는 자아 보존 충동입니다. 가령 “배고파 죽겠다.”라는 말은 가난한 자의 탄식 가운데에서 가장 강렬한 것입니다. “인간의 위(胃)는 비유적으로 말하면 빨리 기름을 채워 넣어야 하는 첫 번째 램프”와 같습니다. 가령 20세기 초 빈의 정신분석 연구소 앞에는 “거지는 출입을 금지함”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식욕의 해결은 당연지사일까요? 인간의 욕망은 굶주림을 떨치려는 욕구에서 시작되는데, 이는 사회 변혁에 대한 관심사와 직결됩니다. 굶주리는 자는 자신의 사회적 처지 그리고 배고픔을 떨칠 수 있는 해결 방안 등을 숙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8. 낮꿈의 네 가지 특징: 인간은 산책하면서, 혹은 벤치에 앉아서 꿈을 꿉니다. 이것이 바로 백일몽이라고 하는 낮꿈입니다. 낮꿈은 블로흐에 의하면 네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로 낮꿈은 밤꿈의 전-단계가 아닙니다. 밤에 꾸는 꿈에는 정태적 심리적 정서가 자리하지만, 낮에 꾸는 꿈속에는 미래에 대한 갈망과 기대감이 가득 차 있습니다. 블로흐는 이러한 특징을 “예견Antizipation”이라고 표현합니다. 둘째로 낮꿈을 꾸는 자는 의식을 떨치고 무의식에 침잠하지 않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백일몽을 꾸는 자의 자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블로흐는 밤꿈을 아편에 비유하고, 낮꿈을 대마초에 비유합니다. 대마초를 피우면 자아의 의식은 그대로 생동합니다.

 

셋째로 낮꿈 속에는 세상을 개혁하려는 크고 작은 의지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허기와 결핍은 굶주리지 않은 채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더 나은 현실적 조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기에 밤꿈이 정신 분열증으로 비유될 수 있다면, 낮꿈은 편집 광증과 궤를 같이합니다. 넷째로 낮꿈은 때로는 하나의 “착상Aperçu”으로 사라지미나, 때로는 최종적인 상을 불러일으킵니다. 백일몽의 최종적인 상은 예술 작품 그리고 종교적 믿음을 통해서 나타나는데, 가상의 상 내지는 환상으로 발현될 수 있습니다.

 

9. 백일몽, 세계의 변화: 마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알려고 하듯이, 굶주리는 자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궁핍함은 사고를 이끕니다. (Ernst Bloch: Tübinger Einleitung in die Philosophie, Frankfurt a. M. 1985, S. 14.) 문제는 “굶주림”이라는 주요 충동이 어떻게 희망으로 향하는가?”하는 물음입니다. 이는 “인간의 백일몽” 내지는 “낮꿈”의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경우 “꿈”은 밤의 영역에 속합니다. 그곳은 밤과 꿈의 신, 모르페우스Morpheus가 거주하는 어두운 세계입니다. 지옥의 아헤론 강 (江)과 같습니다. “자유주의자”, 프로이트는 환자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그들이 꿈꾸었던 과거의 “밤꿈” 속으로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블로흐의 “낮꿈”은 이와는 다릅니다. 굶주리는 자의 백일몽에는 경제적 상황 내지 계급 처지라는 사회적 구조가 문제 되고 있습니다. 포만한 자는 꿈을 꾸지 않습니다. 갈망이란 항상 어떤 결핍에서 비롯합니다. 갈망하는 자는 바로 그 결핍된 무엇을 얻으려 합니다. 인간의 낮꿈은 사적인 욕구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세상의 변혁을 추구합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 의식되지 않는 무엇”에 대한 명확한 기록입니다. “아직 의식되지 않은 것”은 망각된 무엇이라든가, 억압되거나 잠재의식 속에 가라앉은 억압된 성이 아닙니다. 인간은 “아직 아님”이라는 결핍 상태를 인지하기 시작합니다. (김진: 피지스와 존재 사유, 문예출판사 2003, 566쪽) 이로써 궁핍함을 극복하기 위한 모티프로서, 주어진 사회에서 어떤 미래지향적 동력을 불러일으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