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박: (3) 생시몽의 중앙집권의 유토피아

(앞에서 계속됩니다.)

 

14. 시대적 상황과 생시몽의 사상: 생시몽의 상기한 요구사항은 19세기 초 복고주의의 정치적 경제적 분위기를 고려한 것입니다. 당시에 귀족과 수사 계급은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인하여 자신의 기득권과 재산을 일시적으로 상실했습니다. 그렇지만 나폴레옹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프랑스 전역에서는 신흥 군부 귀족들이 다시금 많은 재화를 되찾아서 이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당시에 출현한 낭만주의 운동은 정신사적 차원에서 복고주의적인 가톨릭 신앙에 막강한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제 계급이 다시금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혁명이 발발한 뒤에도 여전히 농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타파할 수 없었으며, 국민의 의식 구조 역시 낙후해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프랑스 국민들은 봉건 국가의 권력을 마치 천부적인 것처럼 수용했으며, 여전히 폭정을 휘두르는 왕권을 당연한 무엇으로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1830년 7월 혁명이 발발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생시몽은 당시의 정치적인 위기 현상을 하나의 과도기로 파악하였습니다.

 

15. 생시몽의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 생시몽은 한 번도 진보에 대한 낙관적 태도를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인류의 황금의 시대는 우리 이전에 도사린 게 아니라, 우리의 세대 이후에 놓여 있다. 그것은 완벽한 사회 질서를 실현함으로써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Saage B: 79f). 이상 사회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고, 미래에 존재한다는 생시몽의 발언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과거의 사회 시스템이 봉건적이고 신정주의의 토대 하에 있었다면, 프랑스 사회의 시스템은 차제에는 과학적 산업적 체제로 전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시몽은 프랑스가 계속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봉건적 농업국가로 정체되어 있지 말고, 산업의 새로운 기능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역사의 진행 방향은 자연스럽게 사회주의로 향하리라고 생시몽은 진단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즉 산업 국가에 관한 생시몽의 설계는 하나의 통합적 시스템으로서 사물의 필연적인 운동을 재현시키는 무엇이라는 점 말입니다. 산업의 시스템이 하나의 제도로 작동되면, 문명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진척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에 이르면 사회는 전체적으로 부를 얻게 되는데, 그렇게 될 경우 19세기의 주어진 현실에서 나타나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갈등과 복잡한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한 이슈가 되지 않고 진부한 지엽적 문제로 전락하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Saint-Simon: 197f).

 

16. 봉건적 소유권 그리고 연금법에 대한 생시몽의 비판: 19세기 초의 프랑스에서는 시민주의의 사업이라든가 자본주의의 경영 방식이 영국의 경우에 비해서 활발하게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초기 자본주의의 사업 경영은 그저 과거의 단체적 질서 속에서 미약할 정도로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생시몽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산업 시스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습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산업 시스템이 폭넓게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봉건적 토지경제, 소작의 특권 그리고 관세의 특권을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생시몽은 다음과 같이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즉 지금까지 유효했던 봉건적 소유권은 차제에는 자유 시민의 사유 재산권으로 바뀌어야 하며, 지금까지 사회 구조의 병폐로 자리했던 연금에 대한 잘못된 법령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시몽은 당시 프랑스의 연금제도를 강도 높게 비판하였으며, 연금과 관련되는 어떤 계획을 수립합니다. 이러한 계획은 다름 아니라 연금에 의존하던 귀족계층의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산업전선에 직접 참여하여 노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귀족들도 더 이상 빈둥거리며 놀 게 아니라, 현대의 기술적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17. 과학기술, 노동 그리고 소비에 대한 생시몽의 예찬: 생시몽은 시장의 체제를 계획적 공장의 체계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항입니다. 첫째로 생시몽은 사회적인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서 자연과학의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둘째로 생시몽은 나태함과 향락을 나쁜 생활습관으로 규정하고, 정신적 육체적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였습니다. 게으름과 나태함은 모든 악덕과 강탈의 근원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상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삶과 여흥이 더 이상 특권층만의 몫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먹여 살리는 형국이지만, 부자들 역시 자신의 남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학문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로 과거의 이상주의자들은 근검절약이 실천되면 이상적 공동체의 핵심적 기능이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생시몽은 인간의 자연적 욕구를 무작정 최소한으로 축소시키지는 않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믿었습니다. 즉 바람직한 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잘 먹고, 멋진 곳에서 거주하며, 잘 입으며, 간편하게 여행을 다닌다는 것입니다. (Saint-Simon: 317).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물질적 관점에서 최상의 사회라고 합니다. 예컨대 생시몽은 소비 욕구가 생산을 자극한다는 이유에서 소비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 멋진 의복,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거주지 등은 인간 삶의 물질적 조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8. 시민 계급, 특히 은행가의 행정 능력 찬양: 기술을 중시하는 국가를 원활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유능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생시몽은 성장하는 시민 계급이 지니고 있었던 “행정의 능력 capacité administrative”를 찬양하였습니다. 예컨대 은행가는 금융의 활성화를 도모하지만, 그밖에도 인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민이 주도하는 산업 공동체의 관리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은행가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나중에 생시몽의 제자, 아망 바자르Amand Bazard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즉 마치 기생충처럼 사회적 부를 착복하는 봉건 귀족의 돈을 빼앗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은행가들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생시몽에 의하면 국가 당국이 은행가들을 발탁하여 이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관리하게 해야 합니다. 은행가들이 존재함으로써 사회의 제반 투자금은 확정될 수 있고, 모든 것을 관망하면서 산업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9. 자유주의 경제 체제 그리고 사유재산제도에 관한 생시몽의 입장: 생시몽은 아무런 조건 없는 인간 평등을 주창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평등의 원칙이 아니라, 오히려 산업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며 자유 경쟁을 도모하는 경제체제였습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생시몽은 사회주의의 이론에 가깝다기보다는 (당시에 사회주의 사상은 아직 태동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프랑스의 고전적 사회이론가, 장 밥티스트 세Jean Baptiste Say 그리고 아담 스미스에 근친하는 이론가입니다. 가령 장 밥티스트 세는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는 국가의 권한을 최소한으로 약화시켜야 하며, 대신에 행정의 차원에서 오로지 경제 문제를 조절하고 감독하는 하나의 공적 기관을 용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생시몽은 자유주의에 입각한 장 밥티스트 세의 이러한 미래 모델을 있는 그대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Saint-Simon: 201f). 세는 생산, 생산력 그리고 자본이 완전하게 조달되는 것을 급선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의 경제적 차원에서의 수요와 공급은 지속적으로 균형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노동력 그리고 생산력은 소진되지 않으며, 경제적 시스템은 어떠한 위기 없이 작동된다고 합니다. 사회의 제반 재화들이 지속적으로 사유화되면, 그만큼 사회는 “자연의 질서ordre naturel”에 근접해진다는 것입니다.

 

생시몽은 이처럼 개개인의 사유 재산을 용인하였으며, 동시에 그것을 부분적으로 제한하였습니다. 사유재산은 생시몽의 경우 학문과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의 생각은 푸리에, 헤르츠카, 벨러미의 사고와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상기한 사항을 고려한다면 생시몽의 이론은 엄밀히 따지면 마르크스주의가 발전시킨 혁명적 사회철학의 유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마르크스 이전에 나타난 개혁을 추구하는 자유 시민들의 국가이론이며, 개혁적 자유주의 경제 이론 내지 사회 이론이라고 말하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