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2) 생시몽의 중앙집권의 유토피아

필자 (匹子) 2024. 1. 28. 11:06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생시몽의 산업 시스템의 유토피아 그리고 그의 문헌: 생시몽은 급변하는 시대에 한편으로는 사회 변화에 기여하려고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유토피아의 상을 집요하게 구상하였습니다. 생시몽은 농업 중심적으로 설계되는 문학 유토피아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산업적 시스템의 유토피아를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이었습니다. 생시몽은 데스튀드 드 트라시Antoine Louis Claude Destutt de Tracy의 서클에서 활동하면서 자연과학 그리고 철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학자, 데스튀드 드 트라시 (1754 - 1836)는 주지하다시피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처음으로 언급한 계몽주의 학자입니다. 그는 이 개념으로써 지식인의 눈을 가리는 불명료한 제반 반 계몽주의의 사고를 신랄하게 질타한 바 있습니다. 어쨌든 생시몽이 사회와 국가에 관한 이론서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친필 원고는 오랫동안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8. 생시몽의 사고와 오귀스트 콩트: 생시몽은 왕정복고의 시기에 서서히 자신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합니다. 맨 처음 그는 “산업L'Industrie”이라는 신문에 2년에 걸쳐 수많은 칼럼을 게재하였습니다. 생시몽이 수없이 많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저술활동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나중에 역사학자로 문명을 떨치게 되는 자크 A. 티에리Jacques Nicolas Augustin Thierry를 비서로 고용했기 때문입니다. 생시몽은 자신의 생각을 틈틈이 구술하였고, 티에리는 그의 말을 정확히 글로 옮겨 적었습니다. 1820년대에 그는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쳤습니다. 대표작 『산업 시스템에 관하여Du système industriel』(1820 - 1822), 『산업의 교리서'Catéchisme des industriels』(1823/24) 등이 간행되었을 때 몇몇 사람들은 생시몽을 마치 예언자처럼 숭배할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심혈을 기울인 그의 문헌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예컨대 우리는 1824년에 발표된 『사회조직에 관하여De l'organisation sociale』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시몽은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오귀스트 콩트를 자신의 비서로 새롭게 받아들여, 『사회조직에 관하여』(1824)라는 책을 발표하게 하였습니다. 오귀스트 콩트는 이 책에 자극을 받아서 나중에 사회학의 영역에서 실증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로 우뚝 서게 됩니다. 콩트가 개인주의를 지양하고 정신적 권위와 질서에 가치를 두었는데, 이는 생시몽의 영향으로 이해됩니다. (박호강: 46).

 

9. 유럽 공동체의 가능성을 제기한 학자: 일단 생시몽의 입장 가운데 한 가지 놀라운 사항을 지적하려 합니다. 생시몽은 19세기 초의 시점에 국가 이기주의를 떨치고, 유럽 공동체의 결성 가능성을 학문적으로 타진한 지식인입니다. 그의 논문 「유럽의 새로운 모습」은 다음의 사항을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즉 유럽의 제반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빈번하게 발발하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개별 국가들이 제각기 국수주의적인 정책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럽의 국가들은 문화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향상되기 위해서는 생시몽에 의하면 국가 중심적인 이기주의를 지양하고, 합심하여 유럽 공동체를 결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유형이든 간에 동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유럽 공동체가 결성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모든 문제를 특정 국가의 시각으로 고찰하지 않고, 유럽과 세계 전체를 광의적으로 고찰하려는 세계 시민의 자세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시몽의 시각의 원대함을 읽을 수 있습니다.

 

10. 생시몽의 산업의 개념: 생시몽의 대표작 『산업 시스템에 관하여』는 1820년부터 1821년 사이에 여러 신문과 잡지에서 발표된 문헌을 모은 것입니다. 생시몽은 처음에는 귀족 신분으로서 프랑스 혁명에 연루되었지만, 공화주의를 표방하면서, “산업”이야 말로 프랑스인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구해나가야 할 영역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유토피아 사상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농업이 아니라, 상공업에 바탕을 둔 산업적 기반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이 바로 생시몽입니다.

 

생시몽이 강조한 산업의 영역은 무척 다양합니다. 예컨대 금융 사업, 기차 선박 등을 통한 교통수단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적 간접자본의 확충, 광산 채굴의 사업 등이 산업의 영역에 포합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생시몽이 18세기말부터 놀랍게도 보험회사의 경영을 구상해내었다는 사실입니다. 보험 사업이 19세기 말 독일 비스마르크에 의해 비로소 정착되고, 사회보장 제도의 기틀이 마련하게 되었음을 감안하면, 생시몽이 보험의 사업을 구상해내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선구적인 착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11. 산업가는 누구인가? 산업가들이란 생시몽에 의하면 넓은 의미에서 사회 내에서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산업가는 “재화를 직접 생산해내기 위하여, 그리고 사회의 여러 다양한 구성원들이 자신의 필요한 것을 심리적으로 충족시키며 육체적 향유를 누릴 수 있게 하는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 수단을 제공하기 위하여 일하는 자”를 지칭합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산업가라는 개념은 크게 보아서 농부 계층, 수공업 계층 그리고 상인 계층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St. Simon: 257f). 물론 이러한 구분은 오늘날의 의미에서 말하는 사업가와 노동자 사이의 엄격한 구분과는 거리가 멉니다. 생시몽은 여기서 막연하게 농부, 대장장이, 건설 노동자, 마도로스라든가, 신발 생산자, 건축가 그리고 의복 생산자 등을 모조리 산업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은 설령 어떤 예술 제품을 창출해낸다고 하더라도 산업가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생시몽은 예술과 예술가에 대해 그다지 후한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중요한 인간군은 과학자 그리고 산업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성적인 인간이 과학자이고, 실용적 인간이 산업가라면, 예술가는 인간의 심성을 조절하는 부류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육영수: 70). 흔히 사람들은 예술가를 “대중적 선전자vularisateur”, “선동자instigateur” 그리고 “예언자révélateur”로 구분하는데, 예술가에게서 인류의 미래를 예언하는 기능을 기대하는 것은 생시몽에 의하면 무리라는 것입니다.

 

12. 귀족, 수사, 대지주, 판사들에 대한 생시몽의 비판: 산업가 계급은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며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도래하게 될 어떤 새로운 국가에서 첫 번째의 계급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국가의 안녕은 누구보다도 산업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정치적 권리를 효율적으로 행사하는가에 따라 결정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프랑스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산업의 체제라고 합니다. 개인은 사회의 유익한 구성원들로서 공동으로 일하면서 재화를 생산해야 합니다. 개개인들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며, 개개인의 노동과 노력은 결국 사회적 풍요로움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개인들은 자신이 행한 만큼의 대가를 얻게 되며,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의 구성원들 가운데에는 다른 사람의 노동의 결실을 착복하는, 마치 기생충 같은 사람들이 온존합니다. 가령 귀족, 연금생활자, 잠재적 실업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겨운 노동의 대가로 많은 재화를 획득하는 반면에, 귀족, 연금생활자 그리고 실업자들은 사회적 풍요로움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시몽은 못 박았습니다. 따라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자들은 “유한계급oisifs”이고, “말벌들frélons”이며, “국가의 흡혈귀sang sue de la nation”라고 합니다. 따라서 귀족들, 수사들, 대지주들, 판사들은 비난당해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귀족들은 앙시앵레짐을 다시 복구하려고 하고, 수사들은 교황의 결정에만 의존하며, 대지주들은 놀면서 살아가고, 판사들은 마치 법 규정이 자신의 무기인 것처럼 모든 것을 장악한다는 것입니다. (St. Simon: 262). 만약 프랑스에서 일하는 관리 3만 명이 퇴출되면, 프랑스의 사회적 불행은 어느 정도 약화될지 모릅니다. 주교, 장성, 종교 교사 그리고 빈둥빈둥 놀고먹는 자산가 등이 사라지면, 여러 유형의 산업가들은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되리라고 합니다. (Saage A: 78).

 

13. 생시몽의 세 가지 요구사항: 상기한 입장에 근거하여 생시몽은 세 가지 사항을 강력하게 요구하였습니다. 첫째의 요구사항은 귀족 계급이 점진적으로 파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의 요구사항은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당면한 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인적 자원이 투자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생산력을 신장시키기 위해서 유능한 인재들을 육성하고 이와 결부된 시설을 확충해 나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셋째의 요구사항은 학자들이 나서서 정치의 기본적인 문제점들을 제기하고 이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들은 거시 경제의 차원에서 지원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중세에 대한 생시몽의 공정한 시각입니다. 가령 콩도르세Condorcet와 같은 사람이 중세에서 기대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면서, 중세의 모든 학문으로부터 등을 돌린 바 있는데, 생시몽은 그와는 달리 중세의 학문을 미래의 혁명적인 학문을 연마하기 위한 초석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중세의 학문 가운데 일부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이는 모조리 사장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생시몽은 특히 학문 영역에 있어서 전통의 계승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3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