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박설호: (3) 미국 문명 비판과 흙의 권리

필자 (匹子) 2023. 12. 8. 10:06

(앞에서 계속됩니다.)

 

14.

판도라의 상자는 인간에 의해 열리고 말았다. 핵분열을 통한 방사능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도 인간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생태 의식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루돌프 바로Rudolf Bahro도 말한 바 있듯이-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의 마음을 통해 되찾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은 자신의 교만 그리고 자연과 여성에 대한 무조건적 정복 욕구를 떨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방향은 지상에서 가장 먼 길일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힘든 여정은 얼마나 휘황찬란할까요? 필자는 다음의 시에서 유토피아의 마지막 가능성을 읽습니다.

 

너는 나에게 땅을 경작하라고 명령한다

내 어찌 나의 어머니인 자연에 칼을 들이대며

가슴을 도려낼 수 있는가?

내가 죽으면, 자연은 나를 보듬지 않으리라

 

너는 나에게 황금을 캐라고 명령한다

내 어찌 어머니인 자연의 뼈를

마구 헤집을 수 있는가?

내가 죽으면, 자연은 나를 재생시키지 않으리라

 

너는 나에게 식물을 베어 팔라고 명령한다

내 어찌 어머님의 머리칼을

함부로 잘라낼 수 있는가?

내가 죽으면 나를 동여매고 말리라

 

Du forderst mich auf, das Lans zu roden/ Wie kann ich mich mit dem Messer/ das Herz meiner Mutter abschneiden?/ Wenn ich sterbe, so umarmt sie mich nicht// Du forderst mich auf, Gold zu graben./ Wie kann ich robust/ die Knochen meiner Mutter durchwühlen?/ Wenn ich sterbe, bringt sie mich nicht wieder zur Welt.// Du forderst mich auf, Pflanzen zu schneiden und zu verkaufen./ Wie kann ich einfach/ die Haare meiner Mutter abschneiden?/ Wenn ich sterbe, fesselt sie mich damit. (Werner Müller: Indianische Welterfahrung, 5 Aufl. Stuttgart 1992, S. 92.)

 

상기한 문구는 어느 인디언 추장이 미국의 백인 정복자, 머큐리에게 들려준 말입니다. 자연은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처녀지가 아닙니다. 자연은 더 이상 낯선 객체가 아니라, 존재의 자궁입니다. 그것은 언젠가 더욱 커다란 영역인 죽음 속으로 안내하는 어머니의 앞섶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머큐리가 생전에 이를 깨달았을까요?

 

15

토본주의는 남성적 수직적 요소론에 입각한 서양의 휴머니즘과 반대되는 사고입니다. 그것은 신유물론자들이 주장한 물질이라는, 흙에 관한 철학적 사고를 지향합니다. 휴머니즘의 본질은 미국 문명에서 그대로 속출했습니다. 미국의 문명은 가장 저열하고도 실용주의적 요소를 토대로 건립된 것입니다. 미국 문명의 토대에는 수많은 인디언의 유골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1776년 임마누엘 칸트는 아메리카 합중국이 탄생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세계 국가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세계 국가가 탄생하면, 국가 간의 갈등은 줄어들거나 차단되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라스 카사스처럼 미래의 삶의 상황을 과거의 역사에서 찾으려고 시도했더라면,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착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 에스파냐의 후예들은 교활한 방식으로 인디언의 추장에게서 미국 땅을 빼앗았습니다. 처음에는 무력으로, 나중에는 돈으로 땅을 매수하였습니다. 황금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인디언의 추장은 푼돈을 받고 굳건한 땅, 맨해튼을 백인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문제는 여성으로서의 자연을 깨닫고 체감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Ego”의 개념은 바깥 개념과 구분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와 타인, 나와 자연, 나와 세계 사이에는 하나의 단절이 형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이 삶의 일부이며, 삶 또한 죽음의 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부질없는 식욕, 성욕, 명예욕은 지금도 자신을 세계의 우위에 놓겠다는 전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을까요? 적어도 현재의 세상에는 어떠한 계율도, 종교도, 사상도 그 하나만으로 절대적인 척도가 되지 못합니다. 인간은 -도나 해러웨이기 주장한 바 있듯이- 퇴비와 다를 바 없습니다.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