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 체자르 스칼리거 (J. C. Scaliger, 1484 - 1558)의 시학에 관한 일곱권의 책 (Poetices libri septem)은 1561년 리용에서 라틴어로 처음 간행되었다. 스칼리거의 사후에 간행된 본서는 규범적 시학 그룹들 가운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규범적 시학 그룹들은 이태리 후기 르네상스의 휴머니즘 정신에서 출현했는데, 당시대 작가들의 필요성 및 요청에 의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검토하였다.
스칼리거 시학 이론은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당시에 제각기 따로 간행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서 번역 작업 및 주해서 등과 함께- 유럽의 의-고전주의에 대한 이론적 토대에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스칼리거의 책은 엄격한 조직적인 틀 내에서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고, 의문점들을 세밀하게 건드리고 있다. 가령 르네상스 시대에 경쟁적으로 나타난 각양각색의 다른 이론을 선택하여 논하고 있는 것도 본서의 특징이라 할 것이다. 현대 작가들은 스칼리거에 의하면 고대의 선구자들의 흔적 속에서 여러 가지 규칙과 창작적 제안을 찾아내야 하며 (imitatio), 로마 시대 고전 작가들의 높은 예술적 수준에 도달하거나, 이들보다 더 훌륭한 문학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aemulatio).
그렇다고 스칼리거가 전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론의 영역에 있어서 “다른 사람으로 대치될 수 없는 탁월한 독재자”라고 한다. 스칼리거는 자신의 시학을 독창적으로 창조하는 대신에,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시학적 전통들을 많이 참고하였다. 그는 플라톤의 대화집 「파이드로스 (Φαίδρος)」 「이온 (Ion)」에서 작가의 신적 영감에 관한 가르침을 인용하며, 호라티우스의 시학에서 문학 작품의 윤리적 유용성을 수용하고 있다. 그밖에 고전 수사학 -특히 (문장의) “표현 이론 (elocutio)”의 거대한 부분 등이 스칼리거의 시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스칼리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중시하되, 그 외의 다른 시학의 특성을 혼융시켰다. 따라서 종래의 이질적 전통을 조화롭게 결합하려는 스칼리거의 의도는 무조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는 없었다.
예컨대 운문의 형태는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반대로- 문학 작품의 특징에 따라 각각 파기되고 있다. 스칼리거는 이른바 비극작품에서 작용해야 하는 “순화 (Κάθαρσις)”를 도덕적 가르침으로 전환하여 해석한다. 다시 말해 순화, 즉 카다르시스란 -스칼리거에 의하여- 단순히 독자나 관객의 정서적 감동과 결부되는 게 아니라, 윤리적 도덕적 깨달음의 결과로서 경직화되어 있다. 또한 스칼리거는 (문학 작품의 궁극적 목표로 알려진) 미메시스 (Μίμησις)를 문학 기술의 단순한 수단으로 격하시킨다.
게다가 문학의 시대 정신과의 관련성에 있어서 스칼리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부인한다. 가령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는 비극이 아니라, 서사시라고 한다. 이는 다음의 사항과 관련된다. 즉 이탈리아 후기 르네상스 시대의 학자들은 (기원전 19년에서 7년 사이에 집필된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가장 훌륭한 고전으로 손꼽고 있었다. 스칼리거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 걸맞게 로마의 라틴 문학을 고대 그리스 문학의 우위에 설정하고 있다. 이를테면 풍요로운 내용을 담은 세네카 (Seneca)의 격언은 이후 젊은 작가들의 마음을 완전히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스칼리거는 당시 신-라틴 문학 운동의 구심점으로서의 시학을 창조하였다. 특히 스칼리거의 시학은 17세기 18세기의 문중 문학에 영향을 끼쳤다. 가령 수도원장 도비냑 (d’Aubignac)의 극장의 실제 (La Pratique du théâtre)라든가 필립 시드니 (P. Sidney) 경의 포에지의 옹호 (The Defence of Poesie) 그리고 사뮈엘 존슨 등에 영향을 끼쳤다. 스칼리거의 시학은 독일에서도 바로크 문학 및 초기 고전주의 문학 이론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마르틴 오피츠, 토마스 고트셰트 그리고 시인 클롭슈토크 등의 문학은 스칼리거의 문학 이론의 도움이 없이는 찬란하게 만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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