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5. 부자 사이의 의견 대립
주인공, 한스는 스스로 합리적으로 사고한다고 믿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인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다. 이를테면 엘레는 첫 번째 편지에서 동생의 무책임하고도 도피적인 성격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파시즘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드러내기를 몹시 혐오한다. 과거사는 과거사일 뿐,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유대인과 독일 간수 사이에서 그저 중립을 취하는 방관자에 불과하다. 유대인 자녀라는 사실을 밝히면 대학 입학에 유리한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의도적으로 은폐한다. 게다가 주인공은 자신이 유대인임을 부끄럽게 여긴다. 다시 말해서 한스는 자신의 잘못이라든가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가장 창피하게 생각한다. 주인공의 바로 이러한 태도는 나중에 언급되겠지만 마르타의 애정 관계에서 하나의 악재로 작용한다.
한스는 처음에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회피한다. 왜냐하면 그는 마르타와의 애정행각을 위해서 별장을 찾았으며 이를 위해서 열쇠를 마련했음을 은폐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르노는 아들의 집요한 거짓말에 언성을 높인다. 아들은 나름대로 헤프너에 대한 아버지의 노여움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납득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아르노는 왜 자신이 헤프너를 가두고 문초해야 하는가를 아들에게 해명한다. 그러나 한스는 아버지의 행위가 처음부터 법에 저촉된다고 항변한다. 가령 아버지와의 대화 도중에 “서른 살에 얻어맞은 자가 예순의 나이에 이르러 주먹으로 이를 되갚아주어도 좋은가?” 하고 묻는다. (Bronstein: 33).
모든 것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에 의해 이성적으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부자간에는 격론이 벌어진다. 아르노는 아들에게서 유대인으로서의 동질감을 조금도 발견하지 못한다. 아들의 마음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신뢰감 또한 추호도 없다. 아르노는 순간적으로 분개한다. 어쩌면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아들의 입장을 일일이 반박한다는 자체가 번거롭고도 짜증났는지 모른다. 한스의 눈에는 아버지가 평소와는 달리 몹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처럼 비친다. 그는 나중에 아버지의 친구인 음악가, 고르돈 크바르트를 찾아가서 조언을 구한다. 그러나 온유한 성품의 크바르트가 주인공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세대 사이에는 경험의 폭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 뿐이다.
주인공은 엘레에게서 심리적으로 어떤 동의를 구하려 한다. 엘레는 처음에는 사건에 대해 무관심한 반응을 드러낸다. 이로써 그미와 어떤 심리적 “삼각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의 태도의 정당성을 찾으려던 주인공의 의도는 수포로 돌아간다. 그 이후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보낸 엘레의 편지를 읽고, 아들을 극도로 증오한다. 소설 속에는 엘레가 주인공에게 보낸 세 통의 편지가 각 장을 이루고 있다. 엘레는 두 번째 편지에서 주인공이 아버지의 문제에 절대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왜냐하면 과거 유대인수용소의 간수는 동정 받을 가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따위 인간이 한번쯤은 두려움 내지 끔찍한 공포를 느끼도록 해야 해. 설령 그가 아버지와 친구들에 의해서 죽음을 당하더라도, 그건 경미한 사건에 불과할 뿐이야.” (Bronstein: 192).
세 번째의 편지에서 엘레는 아버지에게 대항하지 말라고 다시 한 번 경고한다. “이 낯선 파렴치한 인간, 혹은 우리 아버지/ 여기에 제 삼자는 없어.” (Bronstein: 282). 요약하건대 엘레는 모든 잘못이 유대인수용소 간수 헤프너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고, 부자 사이의 갈등이 심화된 것은 누구보다도 주인공에게 책임이 있음을 단호히 밝힌다. 게다가 주인공이 태어났을 때, 동생에게 순수한 독일 이름인 “한스”를 부여한 사람도 누나인 자신이라고 한다. 따라서 엘레는 근본적 문제에 충고할 수 있는 자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Bronstein: 284).
6. 엘레의 질병과 한스의 성욕
엘레는 주인공에게 어머니를 대리하는 인물이다. 가령 한스는 꿈에서 자주 어머니와 만나는데, 어머니의 얼굴은 항상 엘레의 그것과 거의 동일하다. (Bronstein: 61). 이는 어머니가 주인공의 기억에 추호도 남아 있지 않음을 시사해준다. 엘레는 소설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의견 대립에서 중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엘레는 정신병동에 머무는 환자이다. 엘레의 증세는 소설 속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그미는 이유 없이 낯선 사람들에게 달려가 때리고, 얼굴을 할퀴거나, 손가락으로 그들의 눈을 찔렀다.” (Bronstein: 37). 엘레는 몇 년 전에 간호사 한 명이 자신을 독살시키려고 한다고 주장하여, 해당 간호사를 병원에서 퇴출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엘레의 병증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아르노는 엘레가 파시즘 폭력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엘레가 심리적 질환에 시달리는 까닭은 전쟁의 충격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스는 이와는 달리 생각한다. 엘레의 발작은 자기 방어를 위한 공격성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엘레는 혼자 있을 때 유독 사악하고도 기이하게 행동한다. 이를 고려할 때 엘레의 행동은 사랑과 관심을 끌기 위한 교태에 불과하다고 한다. (Bronstein: 231ff). 마르타는 또 다른 견해를 내세운다. 즉 엘레는 정신질환이 아니라, 하나의 신경증에 시달릴 뿐이라고 한다. 마르타는 이전에 이미 엘레와 편지를 교환한 적이 있는데,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이렇게 의식이 분명한 인간이 정신병원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저 기이할 뿐이야.” (Bronstein: 36f.).
소설의 주제를 고려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파시즘 폭력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엘레가 병자로서 주인공에게 어떤 핵심적 사항을 조언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고려할 때 우리는 엘레를 소설의 주변 인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근본적인 실마리를 엘레의 편지 그리고 그미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우리는 엘레를 통해서 주인공의 인성에 도사린 어떤 결함을 추출해낼 수 있다. 이를테면 주인공, 한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주인공이 자신의 견해를 정당화시키는 일에 골몰하는 까닭은 주인공에게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이를 자발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어지는 장에서 다시 논의될 것이다.
다른 한편 주인공의 자기 방어적 태도는 마르타와의 애정 관계에서 백일하에 드러난다. 주인공은 마르타에게 헤프너의 심문 사건을 알려주지도 않고,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지도 않는다. 그는 한편으로는 마르타의 성을 탐하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자신이 마르타를 성적으로 만족시켜줄 수 있을까? 하고 전전긍긍한다. 하기야 성 경험이 없는 청소년들은 대체로 성적 오르가슴을 마치 슈퍼맨의 위력으로 착각하지 않는가? 다음과 같은 구절은 주인공의 성에 대한 불안을 그대로 보여준다. “전차는 젊은 여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 내가 여자들을 응시할 때마다, 그들은 마치 공격 대형을 갖춘 듯이 나에게 밀쳐왔다. 여자의 얼굴이 차례로 다가왔으므로, 나의 시선은 마치 송로버섯을 찾는 돼지주둥이처럼 바닥으로 향해야 했다.” (Bronstein: 141f).
자고로 남녀 관계에서 육체적 결합도 중요하겠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신뢰와 배려의 자세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오로지 성행위를 통하여 마르타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에 대해 겸연쩍어 한다. 게다가 아버지의 문제 그리고 마르타에 대한 사랑의 감정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옳았는데도, 주인공은 사태의 본질에 관해서 침묵으로 일관한다. 오히려 마르타가 “마치 아줌마처럼 꼬치꼬치 따지는 데 대해 짜증을 낼” 뿐이다. (Bronstein: 208).
가장 커다란 문제는 주인공이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마저 창피하게 여긴다는 사실에 있다. 마르타는 제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려고 결심한다. 그미는 자신의 삶의 처지를 분명하게 간파하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미의 이러한 계획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소설의 진행되는 동안에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즉 주인공이 자신의 심리적 편협함 속에 차단되고 안주해 있는 동안에, 마르타는 서서히 자의식을 지닌 독립적 여성으로 변해나간다는 사실 말이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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