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박: (5) 유렉 베커의 '브론슈타인의 자식들'

(앞에서 계속됩니다.)

 

8. 나오는 말

 

자아의 고유한 핵심으로 향하는 여행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것은 마치 “보덴 호수 위의 말달리기 ein Ritt über den Bodensee”처럼 죽음을 각오하는 처절한 자기반성의 과정을 거쳐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공개적 사죄를 거부하는 자의 얄팍한 자존심은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주인공, 한스 브론슈타인이 아버지의 행위에 대해 심리적으로 저항하는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이다. 어쩌면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서 자신을 성찰하도록 의도했는지 모른다. 나아가 자발적 자기반성은 궁극적으로 독일인들뿐만 아니라, 다원화된 사회에 살아가는 모든 인종들에게 공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문화 사회에서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돌이켜보고, 자신의 잘못과 오류를 찾아서 이를 스스로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는 정당방위에 관한 근본적인 법철학적 질문을 간과할 수 없다. 모든 정당방위는 무죄라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 자신의 원수를 살해하는 경우는 법에 의하면 죄의 요건이 된다. 정당한 복수 내지 보복은 법에 의하면 국가가 대행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국가가 이러한 막중한 임무를 수수방관할 경우, 과연 어느 정도의 범위 내에서 개인적 보복은 가능한가? 만약 유대인 학살에 대한 정당한 심판이 동서독에서 공히 이루어졌다면, 과연 아르노는 무력을 동원하여 유대인강제수용소의 간수를 심문했겠는가? 이를 고려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아르노의 심문 행위는 비록 실정법에 위배되지만, 그 자체 과거사에 소극적이고 냉담한 태도를 취하는 독일 국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고 말이다.

 

작가는 작품에다 왜 하필이면 “브론슈타인의 자식들”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브론슈타인”은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당한 비운의 혁명가, 레오 트로츠키 Leo Trotzki의 본명이다. 트로츠키라는 이름이 -츠베렌츠 Zwerenz가 주장한 바 있듯이-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의 “희망”의 정신을 보조해주는 “트로츠 Trotz”, 즉 저항의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 우리는 트로츠키의 영구 혁명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무조건 선하지도, 무조건 악하지도 않은, 수많은 인종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설령 이스라엘 건국의 의미가 유대인 수난사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이해된다고 하더라도, 뒤이어 나타난 팔레스티나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장 투쟁은 베커에 의하면 결코 용인될 수는 없다.

 

베커는 소설의 시점을 1973년 8월 1일 그리고 1974년 5월 6일로 설정했는데, 이는 의미심장하다. 1973년 7월 31일에는 발터 울브리히트 Walter Ulbricht가 사망하였다. 당시 동베를린에서는 청년 축제가 개최되고 있었다. 그 다음날 아르노는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1974년 5월 6일 주인공은 1년 전의 사건을 회상한다. 바로 이 날에 서독의 사민당 당수, 빌리 브란트 Willy Brandt가 사망하였다. 왜 작가는 동서독의 정치가의 죽음을 소설의 시점으로 설정하였을까? 그것은 한 세대가 어떤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그냥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아르노 브론슈타인의 말에 의하면 파시즘을 물리친 자는 독일인들이 아니라, 연합국의 군인들이며, 그것도 무력을 동원하여 가능했다고 한다. 이는 진정한 청산을 위해서 선결되어야 하는 어떤 조건을 다시 한 번 시사해준다. 스스로의 깨달음과 자의에서 비롯한 참회 그리고 두 번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단 등이 바로 그 조건들이다. 이는 타인에 의해서 강요당할 수도 없고, 타인으로부터 도움 받을 수도 없으며, 오로지 이성을 지닌 인간의 자기 의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떠한 사죄도 통석의 회한도 용서받을 수 없고, 파시즘은 자신의 흉물스러운 몰골을 미래의 어느 순간 다시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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