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흐: 유산의 세 단계 (2)

혁명의 시대는 이러한 식으로 언제나 이전 시대에 살았던 선구자들을 찬양하였다. 사람들은 이전의 사람들에게서 부분적으로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동질성을 느끼곤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반동적인 시대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가령 기사들이 고립된 성, 왕궁에 머물 때에도 건축가들이 성당을 건축할 때도 나름대로의 이상적인 인물을 떠올리곤 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갈구하는 상을 엄청난 범위에서 다르게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갈구하는 유산을 반드시 하나로 통일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시민 사회의 출발 당시부터 속출하던 페스트와 같은 질병을 제외한다면, 유산은 어떤 낯선 계급적 내용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몰론 사람들은 이전의 혁명을 다시금 기억하면서 환호하곤 하였으나, 이 경우에는 보다 신중한 행동을 취했다. 이를테면 어떤 사회가 고전적으로 정점을 이루는 시기로부터 채택하게 된 것은 정태적으로 명상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위대한 문화적 보물들이었다.

 

상기한 내용에 관한 가장 훌륭한 범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었다. 프랑스 혁명에 가담한 사람들은 자유, 평등 그리고 동지애를 부르짖으면서 무엇보다도 인권의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했던 것이다. 사실 개인의 해방은 당시에 진보를 추동하는 하나의 가장 막강한 자극제로 작용했다. 그렇지만 프랑스 부르주아들은 처음에 멋지게 행동했지만, 나중에는 추악한 방식으로 혁명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여기에는 미국에서의 경제적 파급 효과도 묘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시민의 자유는 이전에 혁명적으로, 즉 혁명으로 탄생한 아메리카 본토에서 자본의 폭정을 위한 가장 강력한 방패막이로 기능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고유한 권리를 찾으려는 인간의 모든 노력은 부르주아에 의해서 파기될 수는 없었다. 부르주아들은 어떠한 사회적 장애물에 의해 차단되지 않는, 그야말로 무조건적인 이윤을 얻기 위해서 자유를 강하게 부르짖었으며, 이를 위한 상품 소유자의 허례허식적인 슬로건으로서 평등이라는 개념을 마구잡이로 사용했다. 부르주아가 추구하는 이성의 나라는 마르크스의 표현에 의하면 부르주아에 의해서 이상적으로 미화되고 치장된 국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의 권리와 관련되는 마르크스의 비판은 어떤 일관성을 요청하고 있다. 말하자면 인간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형식적 구호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방식을 동원하여 물질적으로 무언가를 획득할 수 있는 권리,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의 관점에 입각하여 “생업에 관한 자유”를 가장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부르주아가 일하게 해달라는 자유, 즉 더 이상 진취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생업의 자유”와는 엄연히 구별되는 “생업을 둘러싼 자유”의 외침이다. 이러한 외침은 바로 인권의 외침과 직결된다. 따라서 기능적 측면에서 프랑스 혁명의 내용을 거대한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과업이 하나의 관건일 것이다. 오로지 이를 통해서만이 사람들은 혁명의 유토피아가 당시의 계급 이데올로기를 넘어 넘쳐흐르게 되는 현상을 뚜렷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연후에 비로서 혁명적 유산은 그야말로 공고히 다져질 수 있을 것이다.

 

혁명적 유산은 비유적으로 말해서 –칸트가 계몽주의에 관해서 정의 내린 바 있는 방식으로- “자기 잘못으로 인한 미성년의 상태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인간의 출구”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역주) 칸트의 글은 다음의 문헌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Immanuel Kant: 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ärung? In: Berlinische Monatsschrift, 1784, H. 12, S. 481–494.) 순수한 이성을 사용하라는 성공적인 모험은 마침내 혁명의 유토피아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이러한 감흥은 레싱의 문학으로부터 괴테의 파우스트에 이르기까지, 칸트로부터 헤겔의 현상학에 이르기까지, 모차르트의 밝은 동화와 같은 음악으로부터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과 제 9교향곡의 환희의 찬가에 이르기까지 연연히 이어지고 있다. 시민 혁명의 유산은 상기한 이유로 인하여 정태적으로 확장된 문화적 산물이라는 유산과는 분명히 구별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운동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유산은 인간이 의연하게 걸어가기 위한 움직임, 다시 말해서 물질서 내지는 불안, 이로 인한 역사적 운동의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스파르타쿠스가 자유를 위해 과감하게 지배세력에게 도전장을 던지며 싸웠던 운동이며, 프로메테우스가 반역의 자세로 신들에 대항하여 역모를 일으킨 것과 같은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