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라스카사스, 인종 그리고 국적 (5)

필자 (匹子) 2022. 2. 3. 11:35

15.

한국인들은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피해당하고 살아왔습니다. 자고로 피해자는 자기반성을 통한 평화 공존에 관한 문제들을 완전하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비하면 일본인들은 타민족을 억압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평화와 공존을 의식할 여지가 아직도 충분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가해자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기 둥지를 더럽히기란, 드러누워 침 뱉기란 심리적으로 몹시 힘들기 때문입니다.

 

(“정신대” 내지 “종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생각해 보세요. 아니 우리는 당시에 끌려간 여자들을 “성 노예”라고 표현하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독일의 시인,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H. M. Enzenberger)도 말한 바 있듯이 유럽인들 가운데 유독 에스파냐의 학자들이 라스카사스의 책에 대해 심리적 거부감을 느끼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16.

우리는 라스카사스의 책을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대해야 합니다. 혹자는 15세기에 자행된 인디언 인구 섬멸이 현대 사회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라스카사스가 한 가지 중요한 문제로 평생 동안 고뇌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라스카사스의 삶은 우리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외국인 노동자들은 비참한 작업 환경 속에서 일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의 고통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그것을 방불케 할 정도입니다.

 

만약 당신이 16세기에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당신은 과연 라스카사스처럼 그렇게 행동을 취했을까요? 아니, 달리 질문하겠습니다. 만약 라스카사스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어떻게 생활할까요? 과연 누가 라스카사스의 제자들일까요? 성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 초지일관 일하는 여성 운동가, 환경 보호를 위해서 남태평양에서 일하는 그린피스의 운동가, 테러리즘을 일삼는 근본주의자에 대항해서 싸우는 평화주의자 등이 라스카사스의 제자들이 아닐까요?

 

17.

라스카사스는 우리와 직결됩니다. 유대교의 창시자, 모세 (Moses)의 무덤은 이 세상 어디엔가 있으나, 아무도 그 지역을 알지 못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무덤을 이 세상 전부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라스카사스의 무덤은 에스파냐에 있습니다. 이후에 태어난 에스파냐의 보수주의자들은 여러 번에 걸쳐 라스카사스에 대한 부관참시를 자행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에스파냐의 명예를 더럽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진정한 명예란 위대한 찬란한 내용을 미화시키는 작업에서 비롯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과 자신의 나라의 죄악을 솔직히 밝히고 인정하는 자세에서 발견되는 무엇입니다. 따라서 라스카사스는 에스파냐 정복자의 후손들에게는 둥지를 더럽히는 인간일지 모르나, 인류 평화의 보편적 정신에서 고찰하면 가장 명예로운 인물 가운데 한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라스카사스의 무덤을 지구의 모든 땅이라고 간주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사상은 우리, 전 지구인들에게 공히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의 무덤을 헤집고, 시신을 훼손하는 자는 인류 전체를 욕보이고 더럽히는 자나 다름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