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라스카사스, 인종 그리고 국적 (2)

필자 (匹子) 2022. 1. 30. 09:17

4.

라스카사스가 유럽 사람들의 행동 가운데에서 가장 부끄럽게 생각한 것은 인디언들에게 가한 끔찍한 범죄의 은폐였습니다. 범죄의 은폐에 관한 내용은 앎 (Wissen)과 양심 (Gewissen)이 서로 엉켜 있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당신과 같은 인문학도는 이러한 관련성에 관하여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입니다.

 

가령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드러내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가령 선조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공개하는 일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자신의 선조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백일하에 공개하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공로, 혹은 범죄를 드러내느냐, 숨기느냐 하는 문제가 핵심적 물음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브레히트는 40년대에 「상처 입은 소크라테스 (Der verwundete Sokrates)」라는 단편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장년의 나이에 징집되어 전선에 배치되었는데, 일단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습니다. 도망치다가 선인장 가시가 그의 발바닥에 푹 박힙니다. 그는 고통의 비명을 지릅니다. 문제는 자신이 뛰지도 걷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몇몇 군인들과 그냥 땅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페르시아 군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행히 주위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었습니다.

 

주인공은 기지를 발휘하여 힘껏 고함소리를 지르며, 창과 방패를 마구 두드립니다. “대대 앞으로!”, “둥둥!”, “연대 좌우로!”, “둥둥!” 그의 목소리는 안개 속에서 엄청난 굉음으로 메아리칩니다. 페르시아 군대는 수많은 그리스 군인들이 매복해 있다고 여기고, 퇴각합니다. 이를 계기로 알키비아데스가 이끄는 그리스 군대는 대대적인 승리를 구가합니다. 주인공은 창졸지간에 전쟁 영웅으로 간주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순간적으로 괴로워합니다. 진실을 털어놓을까, 아니면 모른 척하고 승리의 월계수를 그냥 상으로 받을까? 하고 오랫동안 망설이지요. 결국 그는 자신의 비겁함을 만천하에 공개하기로 결심합니다.

 

브레히트의 작품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줄까요? 어쩌면 브레히트는 “너의 죄, 혹은 비겁함을 숨기지 말라!”라는 명제를 강조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이에 비하면 “너의 무지를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제는 대수롭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발적인 자기비판이야 말로 앎 (Wissen)과 양심 (Gewissen)의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적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5.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제각기 다양한 피부 색깔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피는 한결같이 붉습니다. 어째서 사람들은 그다지도 피부껍질을 중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외모를 중시합니다. 그러나 외모는 실제의 삶에서 첫인상으로 작용할 뿐입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남편 혹은 아내의 외모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살아가면서 중요한 덕목으로 인지되는 것은 외모가 아니라 인간적 품성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동화에 의하면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세 개의 인간 모형을 흙으로 빚었습니다. 그리하여 세 가지 모형을 거대한 가마에 넣은 다음에 구웠습니다. 덜 구워진 모형은 백인으로 드러나고, 심하게 구워진 모형은 흑인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가장 알맞게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모형은 황인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열등의식을 느끼는 황인종 한 사람이 꾸며낸 가상적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상은 우리를 속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눈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잊지 마십시오, 인간의 피부색은 제각기 다양하나, 모든 인간의 피는 붉다는 사실을.

 

6.

정복자들의 눈에는 인디언들은 사람이 아니라, 동물로 보였습니다. 주한 미군 사령관, 위컴의 눈에는 어쩌면 1979년 12월 12일의 사태 당시의 한국 군인들은 “나그네쥐”로 보였는지 모릅니다. 이에 관해 밝혀진 것은 없고, 소문만이 무성하게 전해 내려올 뿐입니다. 이렇듯 무지와 경험 부족은 언제나 오해와 편견을 낳게 되는 법입니다.

 

난생 처음 외국인을 대하는 아이들은 오랫동안 그 외국인을 쳐다보곤 합니다. 16세기 초 인디언들은 난생 처음 백인을 만났을 때, 무척 놀랐습니다. 불그레한 뺨, 푸른 눈 그리고 노란 머리카락이 무척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백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들에 의해서 살해당하기 직전에야 비로소 그들은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즉 정복자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들은 천사들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사악한 악마들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