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유리 아래”는 1947년부터 1953년 6월 17일 베를린 노동자 데모의 시점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 2부의 단락은 거리 이름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전지적 관점은 자취를 감추고 모든 것은 등장인물의 3인칭의 관점에서 묘사됩니다. 구동독은 주지하다시피 1949년 독일 민주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사회주의의 재건을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제 2부의 이야기는 비르크하임이라는 가상적인 소도시를 배경으로 전개됩니다. (비르크하임에 대한 묘사를 고려한다면 이곳은 작가의 고향도시인 잘츠베델과 동일합니다.) 아나는 전쟁 동안에 심리적으로 극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적 학대에 관한 피해망상증을 유발하는 기억 때문에 자주 침울해졌으며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집에서 몇 개월 요양한 뒤에 아나는 비르크하임의 김나지움에 다니면서, 배우지 못한 것을 만회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1949년의 아비투어 시험에 합격할 것 같습니다. 학교의 여교장의 전제주의적인 언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하나는 딸이 기숙사에 머무는 서약서에 사인합니다.
하나는 처음에는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행히도 그미는 여동생과 마그데부르크의 철도청에서 비서직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요한나는 그 사이에 농장에 머뭅니다.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하나는 비르크하임에 자그마한 방을 하나 얻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김나지움의 기숙사에 머물고 있는 딸을 자주 방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집의 창문은 부셔졌고, 난로도 없는 관계로 무척 썰렁하지만, 그런대로 지낼만합니다. 주위 사람들은 동유럽에서 온 뜨내기라는 이유로 그들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철도청에는 하나와 함께 일하는 관리가 있습니다. 그는 아내를 잃은 홀아비로서 독감 걸린 하나의 병실을 찾아와서 병문안을 하곤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를 사랑하게 되어, 그미에게 자꾸 결혼하자고 요청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는 죽은 남편의 무덤 앞에서 두 번 다시 결혼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한 바 있습니다. 게다가 그미는 언젠가는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갈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두 번의 결혼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다짐합니다. (130쪽) 하나의 여동생 마리아는 김나지움 선생을 알게 되어, 그와 함께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냅니다.
소설 속의 도시 이름은 "비르크하임"이지만, 원래는 작가의 고향인 잘츠베델이다. 사진은 잘츠베델에 있는 구시가지로서 성탄 전야에 찍은 것이다.
어느 날 하나는 딸을 만나고 집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미의 마음은 몹시 착잡합니다. 왜냐하면 아나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의 계획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딸은 아비투어를 마친 다음에 어머니와 가족들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나는 자신의 어머니를 몹시 증오합니다. 전쟁 당시 자신을 버려두었기 때문에, 성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미의 쓰라린 경험은 이후의 사랑의 삶을 방해합니다. 아나에게는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좋은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란 학교 친구였는데, 두 사람끼리 약혼까지 맺었습니다. (137쪽) 왜냐하면 양가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현재의 가족을 데리고 고향인 코모타로 돌아가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만약 아나가 이곳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귀향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는 자신의 딸의 사랑의 삶에 깊이 개입하고 간섭합니다. 다른 한편 약혼자의 가족 역시 아나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체코 출신의 난민이라는 게 결격사유로 작용하였습니다. 어쨌든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약혼 소동으로 인하여 완전히 깨지고 맙니다.
아나는 라이프치히에 있는 통역 전문대학교에 진학합니다. 동독은 많은 통역사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경우 서방의 연합군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습니다. 아나는 일단 비르크하임 대학에서 통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당에 가담하여 열심히 활동하면, 자신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지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렇지만 아나는 사회주의 통일 당 SED이 아니라, 동독의 국가민주당 NDPD에 입회 원서를 제출합니다. 이렇게 선택하게 된 데에는 철도 관리의 조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동독의 국가 민주당은 1948년에 결성된 정당으로서 비교적 자유주의의 색채를 표방하는 정치 정당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국가 민주당은 사회주의 통일 당의 막강한 위세에 눌려서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어쨌든 아나는 여러 힘든 과정을 거쳐서 동베를린에 있는 외무부의 통역사의 정직원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정년을 보장 받은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미는 국가의 고위 관료들과 여러 가지의 경제 회담에 참석하기 위하여 자주 외국으로 떠나곤 합니다.
어느 날 아나는 놀라운 일을 겪게 됩니다. 에리히가 그미를 찾아온 것입니다. 에리히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 기계와 공구들을 판매하는 상인이 되었는데, 그동안 약간의 돈을 모은 것 같았습니다. 비르크하임에서 두 사람이 재회했을 때, 아나는 순간적으로 몹시 당황함을 느꼈습니다. 아나의 약혼남의 가족 역시 그 사이에 동베를린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러서 아나는 처음에는 약혼남과 에리히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그러다가 그미는 끝내 에리히를 선택합니다. 아나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래서 동베를린에 있는 외무부의 관리인 직을 알선해줍니다. 에리히와 아나는 베를린에서 함께 동거하며 지냅니다. 어느 날 어떤 사건이 발생합니다. 누군가 공동 샤워 실에서 에리히의 몸에 새겨진 문신을 목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탈영병임을 반증해주는 문신이었습니다. 에리히는 이 사건을 계기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만약 자신의 과거 행적이 발각되면, 감옥에서 수년을 썩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습니다. 에리히는 어쩔 수 없이 아나를 동베를린에 버려두고 서독의 뮌헨으로 떠납니다. 이로써 두 사람은 서로 헤어집니다.
사진은 잘츠베델의 유명한 먹거리, 잘츠베델의 바움케이크이다. 크림과 편도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문제는 아나가 그 사이에 임신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953년 초에 아나는 아들을 출산합니다. 난산이었습니다. 아나가 외무부에서 통역사로 일하는 동안, 아들은 보육원에서 머뭅니다. 바로 이 무렵에 하나는 여동생 마리아와 어머니와 함께 마그데부르크의 철도 관사에서 거주하게 되었으므로, 교통편이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손자가 보육원에서 독감에 걸렸는데, 하나는 병든 아기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해줍니다. 바로 그때는 동베를린 노동자 데모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세 여인은 아기를 도맡아서 키웁니다. 하나, 마리아 그리고 요한나는 고향의 도시 코모타를 그리워합니다. 마리아가 체코로 여행하여 그곳을 찾아갔으나, 많은 것이 변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여깁니다. 고향은 그들에게는 죽음보다도 더 먼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고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고향은 비르크하임의 철도 관사에 있는 몇 평짜리 집, 바로 그곳입니다.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48 최신독문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박: 라인하르트 이르글의 '미완성의 사람들' (4) (0) | 2021.06.03 |
---|---|
서로박: 라인하르트 이르글의 '미완성의 사람들' (3) (0) | 2021.06.03 |
서로박: 라인하르트 이르글의 '미완성의 사람들' (1) (0) | 2021.06.03 |
서로박: 실패가 우리를 가르친다. 서문 (2) (0) | 2020.10.18 |
서로박: 실패가 우리를 가르친다. 서문 (1) (0) | 2020.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