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bloch 대화

블로흐: 기독교 속에는 반란이 담겨 있다 (1)

필자 (匹子) 2021. 7. 25. 09:59

질문: 블로흐 교수님,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소외에 대한 당신의 비판을 접할 때, 사람들은 자본주의 및 시민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관련시켜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당신은 이에 대해 동의하시겠습니까?

서독에 대한 당신의 입장과 같은 비근한 예를 들어볼까 합니다. 당신은 이 국가의 정책 및 서독내의 제반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자주 비판을 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비판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요약될 수 있겠습니다. 무엇이 변화되어야 하는가?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물음이 더욱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 어떤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가? 노동자인가? 대학생인가? 지식을 지니지 않은 젊은이들인가? 하는 물음말입니다.

 

블로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지는군요. 그중 일부는 주어진 분위기에 상응하여, 혹은 우선 시청자를 고려하면서 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 과연 나의 비판을 청취하는가요? 잘못된 입장을 지닌 자들이 나에게 박수를 보내는가요, 아니면 그들은 나의 견해를 비판하는가요? 어쩌면 다른 문제일지 모릅니다. 특히 서독에서는 스스로 정당하다고 말할 권리를 전혀 지니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구를 진지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의 동기, 목적 내지는 ‘어째서 그렇게 비판하는가?’ 하는 의도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것들은 예컨대 기민당 (CDU), 기사당 (CSU) 혹은 독일 민족당 (NPD)의 동기. 목적 내지는 의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대답을 할 때 언제나 말하자면 수취인이 누군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아무런 장애가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모든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문장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로 인해 새로운 방식으로 입을 봉쇄하게 하거나, -흔히 거짓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생각을 뒤집어서 입 밖으로 꺼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혼동하지 않도록 발언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서구 자본주의를 비판하느냐, 아니면 서구 자본주의내의 기존하는 민주주의적인 요소를 강조하느냐? 하는 문제를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특히 후자는 어떤 시민주의 혁명으로 태어난 것으로서, 맨 처음 영국에서, 다음에는 프랑스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진행되었지요.) 또한 사람에 따라서는 후자를 상대적으로 애호하거나,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아니면 이에 대해 거리감을 취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문제는 동시에 스탈린 독재에 대한 비판, 혹은 동구의 사회주의의 이행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기본 노선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만약 동구 사회가 달리 전개된다면, 그에 대한 비판은 실제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필연적이겠지요. 어쨌든 우리는 이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동구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 ‘무엇이 더 나은가?’ 하는 비판을 절대로 단념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 자본주의에 대해 새삼스럽게 비판할 게 뭐가 있습니까? 자본주의는 오래 전부터 비판당해 왔으며, 오래 전부터 너무 낡은 채 온존하고 있지요. 그게 아니라면 자본주의는 -비록 지속적이지는 않으나- 회춘 (回春)한 셈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사전에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개별적인 사항에 관해서 말하기란 쉽지가 않으며, 커다란 공간을 허용할 수가 없지만 말입니다.

 

자본주의 국가가 체내에 지니고 있는 민주주의적 혁명은 최소한 서구의 국가들과 소련 사이의 어떤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는 이유입니다. 물론 독일은 민주주의적인 혁명을 직접 전유한 국가가 아니지요. 왜냐하면 1848년과 1918년의 혁명을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전제로 한다면, 이는 독일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독의 구체적 현실 상황만을 분석할 수 없으며, 서구 전체로 비판의 방향을 돌려야 합니다. 서구에 속하는 서독은 최근까지의 상황을 전제로 할 때 다른 서구의 국가, 특히 영국에 비할 때 어떤 봉건주의, 권위주의에 대한 맹신 등과 같은 잔재를 지니고 있지요.

 

누가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가? 이곳 뿐 아니라, 다른 서구의 국가에는 대부분의 잠자고 있는 프롤레타리아가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 상호간에 아무런 약속이 없었는데도 버클리와 도쿄 등지에서 갑자기 젊은이들의 학생 운동이 출현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서 베를린과 도쿄 사이에 위치한 거대한 동구 국가를 논외로 해야 하지만 말입니다. 요즈음 학생 운동이 논의 대상이라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 운동은 동시대인들에게 거대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고 말입니다. 만약 젊은 학생들이 갑자기 용기를 발휘한다면, 그리고 권위와 오래된 당국 내지는 새롭게 약간 변한 국가에 대항하여 궐기한다면, 이는 특기할 사항이며 신뢰감을 불어 일으키는 행위입니다. 만약 전혀 기대하지 않던 일이 이런 식으로 발생한다면, 프롤레타리아들로 인해 절망할 필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궐기한 것은 우발적으로 출현한 변칙적 사건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프롤레타리아들이 궐기하지 않는다는 게 그야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최소한 프랑스의 5월 폭동은 하나의 신호를 남긴 셈이지요. “모든 낮이 저녁이 아니며, 모든 저녁이 낮이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또 한 가지 지적할 게 있어요. 학생 운동은 순수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어떤 혁명적 요소들을 명확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혁명적 관심사는 단순한 노동조합의 운동으로 전락하여, 잘 알다시피 노동자들은 보다 높은 임금, 노동 시간의 변화 등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경제적인 문제에 집착하고 있을 뿐이지요. 물론 확고한 마르크스주의의 달콤한 포도나무에서, 다시 말하면 경제적 문제로부터 어떤 운동이 전개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적으로, 다시 말해 주로 자본과 노동 사이의 파기될 수 없는 기본적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모순 속에는 경제적 특성만 도사리고 있지는 않아요. 힘들게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프롤레타리아는 마르크스에 의하면 완전히 소외된 마지막 계급입니다. 이는 그야말로 영점 (零点)이며, 여기서부터 어떤 변혁이 도래해야 합니다.

 

프롤레타리아는 가장 중요하고도 파기될 수 없는 혁명의 기본적 요소입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의 혁명뿐만 아니라, 시민주의 혁명 그리고 16세기의 농민 전쟁, 어쩌면 20세기 초에 나타난 스파르타쿠스 운동에 해당되는 요소이지요. 그러나 경제적인 모순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힘들게 일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사람들이 잉여 가치를 생산하고, 휴식 시기에 그들의 생산력을 재생산해낼 정도만큼의 푼돈을 벌어들이는 노동자들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힘들게 일하고 무거운 짐을 지닌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오래된 표현을 사용해 본다면- 저열하게 취급당하고 모욕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종속 관계가 온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박한 임금의 문제로 귀결되는 소외 뿐 아니라, 사회적 해방을 주창했던, 그리고 주창하고 있는 소외도 존재하고 있어요. 물론 이러한 모순은 자본과 노동의 모순과 관련성을 맺고 있지만, 그것도 동일시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모순은 오로지 자본과 노동의 긴장 관계로써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학생 운동은 다음과 같은 모든 사항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감독이나 감시, 시험의 강요 및 정교수에게 허리 굽히는 짓, 모든 문제를 제멋대로 처리하는 행정 당국, 교수 초빙 문제, 교재의 선택 그리고 독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수업 방식 등이 바로 그 사항이지요. 특히 수업 방식의 경우 교재에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일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강의에 참석하면, 교수는 향상된 출판 기술에 대한 나열 이외에는 아무 것도 말할 게 없었지요.) 어린아이 취급하는 데에, 출판 기술 발명전의 중세의 잔재에 대항하는 대학생들의 저항은 폭발적 운동으로 출현하였습니다. 이 운동은 지금까지 열거한 목표만으로 전혀 약화되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올바른 걸음을 요구하는 한, 학생 운동은 이미 언급된 바 있듯이 올바른 걸음을 바로 잡는 대수술이었지요. 한마디로 이 운동 속에는 오래된 자연법의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는 18세기의 시민 혁명 당시에 알피에리 Alfieri의 꿈에서, 실러에게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허리 굽히지 않는 남성, 주인의 기분에 따라 아첨하지 않는 남자들의 상말입니다. 이는 오직 경제적인 상황과는 다르지요. 학생들은 이러한 혁명의 다른, 체제 파괴적 요소들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한 학생들은 혁명의 역사에 다가올 혁명의 구조를 위해 중요한 기여를 다한 셈입니다. 물론 학생 운동은 부정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긴 합니다. 이를테면 다양한 발언 때문에 가장 직접적인 (경제적인) 관심사로 작용할 프롤레타리아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지요. 단순 노동자들은 미성년으로 취급당한다고 느끼지 않으며, 오직 경제적으로 억압당하고 착취당한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는 상호 관련되지요. 착취 없이는 억압이 없고, 억압 없이는 착취가 없는 법입니다. 그렇기에 학생들이 서구 전역에서 이바지한 운동은 아주 중요성을 지니지요. 이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