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현실을 넘어서는 상상공간. 김광규의 시 「물오리」 (2)

필자 (匹子) 2021. 6. 22. 09:25

오리가 날아왔다가

되돌아가는 곳

그곳으로부터 나는 너무 멀어졌다

기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고

비행기로 바다를 건너

나는 아무래도 너무 멀리 와

이제는 아득한 지평을 넘어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무심하게 날개 치며 돌아가는

오리는 얼마나 행복하랴

 

너: 이 대목에서 시적 자아는 물오리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 오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곳저곳을 왕래할 수 있지만, 시적 자아는 고향으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왔습니다. 물오리는 먹을 음식과 물만 주어지면,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시적 자아는 생존을 위하여 “기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고/ 비행기로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로 향했습니다.

 

: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여권을 소지하고 다른 낯선 나라에서 3개월 이상을 체류한 사람은 일순간 자신이 모든 인연의 끈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되겠지요?

: 시구는 불현듯 오비디우스 Ovid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는 아우구스트 황제의 미움을 사서 흑해의 오지로 망명을 떠나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지요. 오비디우스는 연작시 『슬픔Tristia』을 읽으면, 그가 얼마나 고독을 떨치기 위해서 몸부림 쳤는지를 짐작할 수 있지요. 물론 인간은 자의에 의해서 그리고 강요에 의해서 고향을 떠날 수 있습니다. 시적 자아는 무언가 뜻을 이루기 위해서 “아득한 지평을 넘어”, 타국에 왔지만, 낯선 지역에서의 삶은 고달픔을 안겨줍니다. 이러한 고달픔 가운데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이지요.

 

: 특히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혼자 낯선 곳에서 연명해야 하는 외로움은 실제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가슴에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 그렇지요. 가고 싶어도 그냥 갈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정황 - 이것은 방랑자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그렇기에 이곳저곳을 자연스럽게 유영하는 물오리는 시적 자아의 눈에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비칠 수밖에 없어요.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애써 배운 모든 언어를

괴롭게 신음하며 잊어야 한다

얻을 때보다 훨씬 힘들게

모든 지식을 하나씩 잃어야 한다

일어서도 또 일어서고 싶고

누워도 또 눕고 싶은

안타까운 몸부림도 헛되이

마침내는 혼자서 떠나야 할 것이다

 

: 시적 자아가 살아오면서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은 “언어” 그리고 “지식”인 것 같습니다.

: 여기서 우리는 시인이 해외에서 체류하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낯선 언어를 비우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함이지요.

: 시적 자아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듯합니다.

나: 과연 그럴까요?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데요? 오히려 괴로움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원래 “향수”, 즉 “노스탤지어”란 “귀환 νόστος”의 “괴로움ἄλγος”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오디세우스도 그러했고, 기원전 600년경에 바빌로니아에 억류되었던 유대인들도 이를 뼈저리게 체험하였습니다.

 

: 놀라운 것은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언어와 지식을 버려야 한다는 표현입니다. 시인은 “괴롭게 신음하”며 “언어”를 잊어야 하고, “모든 지식”을 “힘들게” 저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요?

: 바로 이 대목이 시의 아포리아라고 여겨집니다. 시작품에서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는 것 같아요. 그 하나는 말 그대로 귀향을 가리키며. 다른 하나는 “다른 현실로 되돌아가는 행위”를 지칭합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죽음도 포함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