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출신의 식객은 생각이 깊은 과묵한 남자였다. 어느 날 오후 친구들과 카페의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술 마시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돌발적이기는 하지만, 간결하게 구성된 이야기였는데, 남자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아이러니가 섞여 있었다. 어느 신사는 사업차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우연히 무언가를 얻게 되었지요. 브뤼셀의 어느 극장에서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종이쪽지 하나를 얻게 되었는데, 신사는 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지요. 바로 이때 건너편 자리에 멀찍이 앉아 있던 어느 여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미는 극장에 들어섰을 때 마주친 적이 있는데, 건너편의 칸막이 관람석에 다소곳한 차림으로 앉아 있었어요. 여인은 마치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처럼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신사를 바라보며, 쪽지 하나를 흔들면서, 자신에게 오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신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계단 위로 올라간 다음에, 아름다운 여인이 머물고 있는 칸막이 관람석으로 들어갔습니다. 숙녀는 신사를 잠깐 쳐다보더니, 그에게 이상한 종이쪽지를 건네주었지요. 다음에 그미는 관람석 문을 살그머니 닫으며 사라졌습니다. 신사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종이쪽지의 글을 읽으려고 했지요. 그러나 그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쪽지에는 낯선 언어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호가 그려져 있었으니까요. 신사는 어안이 벙벙한 채 그 자리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갑자기 극장 직원 한 사람이 그의 주위를 감쌌습니다. 그는 신사가 들고 있던 쪽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이 순간 직원은 “함께 갑시다.”하고 말했습니다. 낯선 신사는 완강히 저항했으나, 직원은 더욱 거칠게 몸을 당겼습니다. 신사는 일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을 때, 직원은 극장 대표를 데리러 갔습니다. 신사는 직원으로부터 더 이상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다시 한 번 비밀스러운 종이쪽지를 자세히 훑어보았습니다. 여러 부호들은 색 없는 잉크로 기록되어 있었지요. 글씨는 둥글고도 휘감긴 모양이었습니다. 신사는 어떠한 의미도 발견할 수 없었지요. 이 순간 극장 대표가 다가왔습니다. 쪽지를 들여다보더니, 놀란 듯이 난색을 표명했지요. 극장을 지키던 경찰을 불러서 신사를 가급적이면 빨리 극장에서 쫓아내라고 부탁했습니다. 신사는 완전히 힘이 빠져, 경찰이 요청하는 대로 계단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극장 앞의 매표소에 당도했습니다. 그곳은 넓고 조용한 장소에 위치하고 있었지요. 매표소 창구에는 신사가 제출한 입장료가 그대로 놓여 있었지요, 신사는 그곳에서 멍하니 머물렀지만, 모든 사태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그는 일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뒤이어 극장 책임자를 만나서, 자신이 겪은 기이한 사건의 전모를 들려주었습니다. 극장 책임자는 깨끗하게 차려입은 낯선 신사를 고위 인사로 간주하는 것 같았지요. 그는 극장에서 발생한 무례한 행위에 분개하며, 신사에게 정중히 사과했습니다. 간간이 브뤼셀에 위치한 극장들의 높은 예술적 수준에 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지요. 그렇지만 문제가 된 쪽지를 읽었을 때, 극장 책임자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온갖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지요. 한참 있다가 그는 현재의 상황은 신사에게 유리하지 않으니 호텔을 떠나기를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래도 호텔의 손님이니까, 하나의 팁을 전한다고 했지요. 오늘 저녁에 브뤼셀을 떠나, 운하를 통해서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신사는 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껴서 맑은 공기를 들이마셔야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뮌헨 출신의 식객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날 밤 그리고 그 이후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쉽사리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신사는 내성적인 사람이었고, 브뤼셀은 그에게 낯선 지역이었지요. 이곳에서 어떠한 작은 나쁜 짓도 저지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누가 이 지역에서 그에게 이유 없이 해코지하겠어요? 신사는 다만 아무런 감흥 없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며, 자신의 존재를 밖으로 드러내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평범한 삶에서 어떤 무엇을 기억해내려고 했을 뿐이었습니다. 며칠 지나면 모조리 망각할 수 있는 그런 하찮은 기억이겠지요. 그가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쪽지 하나를 건네받은 것은 모험심 때문도, 혹은 내면의 열광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신사는 비밀스러운 쪽지를 지닌 채. 영국으로 향했습니다. 종이쪽지와 신사에 관한 해프닝은 영국 사람들에게 이미 널리 퍼져 있었어요. 길거리에서 마주친 아는 사람들은 신사를 외면했습니다. 영국에는 신사의 거래처가 많았습니다. 사업의 거래마저 하나씩 끊겨지기 시작했지요.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게으른 자들과 미신을 신봉하는 자들이 많은 에스파냐에서도 그러했지요.
대부분 종이쪽지의 내용을 잘 모르거나, 정확히 파악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신사에게 그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신사는 낯선 사람들로부터 상당히 많은 편지를 받았는데, 편지에는 신사를 비난하거나 위협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신사는 북아메리카에 거주하는 사업 친구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지요. 편지에는 북아메리카 사람들이 그의 불행에 관해서 전혀 몰랐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신사는 일단 종이쪽지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이한 언어를 잘 아는, 낯선 지역의 전문가라면 분명히 그에게 쪽지의 암호를 해독해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배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신사는 브라우닝 자동 권총을 들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와 공증인을 찾아갔지요. 신사는 출입문을 닫으면서, 권총을 책상 위에 놓았습니다. “당신에게 제안할 게 있어요.”하고 신사는 말했습니다. “나는 어떠한 범행에도 연루되어 있지 않아요, 신사 양반, 당신은 나와 분명히 안면이 있지요? 지금 당신은 나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어요. 그러니 선택해주세요. 여기 비밀스러운 쪽지가 있습니다. 만약 쪽지의 내용을 해독하여 나에게 알려준다면, 가진 돈의 절반인 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당신 역시 쪽지를 읽은 뒤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를 경계하고 등을 돌린다면, 당신을 총으로 쏴죽이고, 그 다음에 자살하려고 합니다. 어떠한 선택을 해도 난 상관이 없어요.” 뉴욕의 변호사는 신사의 말을 들으면서, 수표 한 장과 권총 한 자루를 응시했습니다. 그는 평상시처럼 신사에게 여송연을 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당연히 당신이 바라는 것을 채워 드려야지요. 서류를 보여주세요.” 신사는 가방을 열고 종이쪽지를 찾았으나, 아무 것도 거머쥐지 못했어요. 가방은 비워 있었습니다. 신사는 쪽지를 어디서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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